[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지갑을 두둑하게 채우고 큰 마음 먹고 백화점으로 갔다. 답답한 웹브라우저를 벗어나 옷을 직접 피팅해보고 화장품을 직접 테스팅하다보니 진짜 ‘쇼핑’을 되찾은 기분. 하지만 상품의 달린 가격택을 보자마자 같은 생각이 반복돼 선뜻 물건을 살 수가 없다. “직구하면 이(가격) 반도 안하는데. (이러니 호갱소리 듣지. 집에 가서 직구나 해야겠다)”

‘이 것’에 대한민국 유통시장이 판도가 바뀌고 있다. 같은 품질, 혹은 좋은 품질의 상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매력에 너도 나도 ‘이 것’에 매달린다. 특히 ‘장기 저성장’의 길목에서 기웃거리고, 국내 기업(글로벌 기업의 한국지사도 마찬가지다)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해질 것으로 보이는 2015년 한국 소비사회는 ‘이 것’에 울 고 웃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잇달은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SNS(소셜 네트워크)로 한 바탕 신나게 놀 장(場)이 섰다는 애기다. 한 마디로 “직구의 대중화, 국내 유통시장의 위기”다.

하지만 위기를 거꾸로 뒤집어 보면 기회가 된다. 온라인 쇼핑 장벽이 낮아졌으니 한류열풍을 타고 역직구가 본격적으로 시장규모를 늘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직구와 역직구가 한국 사회를 몸통부터 흔들 수 있다는 애기다.

▶“더 이상 ‘유행’이 아니라 하나의 소비문화다”=올 한해 직구는 단박에 2조원을 훌쩍 넘길 전망이다. 블랙프라이데이가 채 오기전인 지난 10월까지 이미 해외직구 액은 1조3500억원에 육박했다. 여세를 몰아 올해 ‘블프’는 유래없는 흥행에 성공했다. 배송대행 신청건수도 폭주했다. 해외배송대행업체 몰테일에 따르면 블프기간인 지난 11월 28일부터 29일까지 배송대행건수는 약 3만3000건으로 전년 대비 50% 증가했다. 사상최고 기록이다. 유통업계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직구는) 예전부터 존재해왔지만 올해 만큼 구체화, 실체화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직구가 아직은 ‘꼬리’에 불과하다고 한다. 아는 사람만 알고, 해본 사람들만 하던 직구가 올해엔 모두가 한 번쯤은 (직구)에 솔깃하기는 했지만 언감생심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들도 많았다는 애기다. 그런데 2015년엔? ‘꼬리’가 ‘몸통’이 돼서 한국사회를 통째로 흔들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직구가 대중화되고, 하나의 소비문화로 자리잡는 한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처분소득 감소→합리적인 가격에 대한 욕구’의 알고리즘은 직구의 대중화에 불을 지필 전망이다. 유통 장벽이 사라진 온라인 시대에 국내가격 보다 저렴한 해외 온라인 사이트에 소비자들이 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게다가 다양한 할인 정보, 국내 미입고 브랜드에 대한 정보들도 SNS를 통해 순식간에 번지고 있고, 결제시스템도 한 층 진화하고 있다. 온라인ㆍ모바일 이용에 대한 익숙함으로 직구가 연령과 성별을 막론한 또 하나의 ‘유통채널’로 안착해나가는 과정에 있는 셈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가격 메리트를 (직구가) 갖고 있다”며 “내수경제에 영향력이 큰 만큼 그 영향력 측면에서 중요도가 높다고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2015 헤럴드 트렌드 리포트 ①)직구, 유행 넘어 4세대 유통채널로 우뚝

▶호갱님에서 똑똑한 감시자로=해외 유명 브랜드들 상품은 국내에만 들어오면 비싸진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보니 ‘호갱’인줄 알면서도 비싸게 사서 써왔다. 하지만 사정이 180도 바뀌었다. 국내외 유통장벽이 사라지면서 ‘뻔뻔하게’ 국내서 고가 정책을 써왔던 브랜드들의 까만 속내가 낱낱이 밝혀졌다.

백화점을 가도, 온라인에서 물건을 사도 이제 가격비교 대상은 온라인 최저가가 아닌 ‘직구 가격’이다. 온라인 캐시백 웹사이트 이베이츠(EBATES)가 진행한 설문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85%가 ‘국내 온라인 상품을 구매하기 전 동일 상품의 해외직구 가격과 비교한다’ 고 답했다.

결국 직구열풍에 더욱 불을 지핀 것은 ’호갱님이라 불리는 국내 업체들의 마케팅‘이었던 셈이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의 조사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해외직구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국내 동일상품보다 싼 가격(67%)’ 때문이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기업에 대한 불신이 늘어났고, 이제 직구를 통해 똑똑한 소비자들이 국내 기업의 이윤을 파악하며 감시가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국내 업체들은 가격인하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해외직구, 병행수입에 타격을 입은 해외브랜드들이 국내에서 ’노(no)세일‘ 정책을 접는 사례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가격인하 움직임은 올해 ’블프‘를 앞두고 눈에 띄게 나타났다. 유통업체들은 해외직구로 빠지는 수요를 잡기 위해 대대적인 병행수입 행사를 열었다. 일각에서는 해외직구→병행수입 판매가 인하 의 다음 수순으로 해외 및 국내 브랜드들이 실제 가격 인하를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역직구, 또 다른 기회?=온라인 쇼핑장벽이 낮아졌다. 해외로 눈을 돌리는 국내 소비자가 있다면, 국내로 넘어오는 해외 소비자들도 있다. 해외 직구가 국내 유통 및 제조업체들의 생존에 위협이라면 역직구는 기회다. 특히 지난 11월 한ㆍ중 FTA 타결로 13억 잠재적 소비자를 가진 중국발 역직구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나현준 롯데백화점 메니저는 “내년에는 직구 보다는 역직구가 더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직구, 역직구가 번갈아 가며 국내 소비재 시장의 재편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미 중국 내 해외직구는 국내 못잖게 활발하다. 전자상거래 결제기업 페이팔(paypal)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해외직구족은 1800만 명으로 규모는 352억 달러로 추산된다.

실제 중국 소비자의 국내 쇼핑몰을 통한 역직구는 한류열풍으로 본격화 된 후 꾸준히 증가세다. G마켓에 따르면 G마켓 글로벌샵(영문, 중문)에서 중국(홍콩, 마카오 포함)인 구매는 2011년 전년동기대비 111% 증가한 데 이어 2012년에는 72%, 2013년에는 121% 성장했다. 올해 들어(1~10월) 지난해 동기대비 80% 증가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지난 10월 보고서를 통해 “경쟁 심화로 포화상태에 이른 국내 물류업계가 성장 정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1조원 시대를 연 해외직구 시장을 새로운 성장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화장품ㆍ유아식품 등에 대한 중국인들의 선호도가 높고 지리적으로도 가까워 중국 중심의 역직구 시장이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