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용 기자의 화식열전> 충무공 · 교황의 대도무문과 기업가정신

장경오훼(長頸烏喙)라는 말이 있다. 춘추시대 말기 월(越) 재상이던 범려(范)가 왕인 구천(句踐)을 도와 오(吳)를 꺾고 패권을 이룬 후 나라를 떠나면서 한 말이다. 구천의 관상이 목이 길고 입이 까마귀 부리처럼 뾰족해 어려운 시기는 끈기와 참을성으로 이겨내지만, 옹졸하고 의심이 많아 안락한 때에는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평이다.

중동변협(重瞳騈脅)이라는 말도 있다. 춘추시대 초기 진(晉)을 최강국으로 만든 문공(文公)은 눈동자가 두 겹이고 늑골이 하나로 붙은 기이한 체형이었다. 이후 어질고 귀한 이의 상징으로 알려졌다.

두 말 모두 과학적 근거는 희박하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삶을 되짚어 보면 리더십의 차이가 꽤 분명하다. 구천은 독단과 사치에 빠져 충신을 멀리했고, 그의 사후 월은 그저그런 나라로 전락한다. 반면 문종은 몸소 검소함을 실천하며 인재를 등용하는 어진 정치를 펼쳐 그 사후에도 진은 오랜기간 중원의 강자로 군림한다. 구천은 오로지 복수의 일념으로 와신상담(臥身嘗膽) 했지만, 문종은 19년의 방랑생활을 부국애민(富國愛民) 통치이념의 밑거름으로 삼았다.

최근 대한민국이 충무공과 프란치스코1세 교황 덕분에 뜨겁다. 리더십의 부재, 철학의 부재 시대에 이들이 던진 화두가 묵직하다.

정치 뿐 아니라 경영에서도 철학과 이상이 뒷받침 된 리더십은 중요하다. 특정한 환경에서 구체적인 경영성과를 내는 업무능력 뿐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비전과 철학이다. 성공한 기업가 대부분은 뚜렷한 비전과 철학을 가졌다.

미국은 청교도 정신이, 독일은 장인정신이 기업정신의 바탕이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정주영 현대 창업주는 “나라가 잘 돼야 우리가 잘 될 수 있다”는 경영철학이 굳건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도 “한 국가가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부(富)와 강(强)만 갖고는 안되며, 그 사회를 지탱하는 지도적 원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업 본연의 목적은 이윤추구다. 하지만 이렇게 번 돈을 사회와 국가, 나아가 인류를 위해 어떻게 쓸 것인지도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장수 국가, 장수 기업은 늘 대의와 명분으로 재원을 조달했고, 이를 통해 오랜 기간 발전을 이뤄냈다. 40~50대인 3세 경영인들도 얕은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不惑), 큰 뜻을 이해하며(知天命) 비전과 철학을 확립할 때다. 큰 길, 바른 길을 가야 거칠 것이 없는 법이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