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윤현종 기자] 27일 오후 4시 46분, 대림산업 홍보실에 전화가 한 통 걸려왔습니다.

“오늘 뉴스타파에서 발표한 조세피난처 페이퍼 컴퍼니 명단에 김명진 전 회장이랑 배전갑 전 대림코퍼레이션 사장이 있던데, 어찌된건가요?, 별도 대응 안하는건가요??” 뉴스타파 측이 이날 공개한 자료를 본 기자 한 명이 질문을 쏟아냅니다.

후텁지근한 여름 오후, 일상 업무에 지쳐가던 대림 홍보실에 갑자기 비상이 걸렸습니다. 이 전화 이후 미주알 고주알 캐묻는 언론사 문의만 수십 건에 달했습니다. 첫 전화의 주인공은 기자였다고 하더군요.

당초 대림 측은 공식대응을 자제했습니다. ‘퇴직한 인사들과 우리는 관계 없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김병진 전 회장은 1999년 8월 31일에 퇴사했고 2000년 5월까지 고문직에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대림 코퍼레이션에 따로 언론대응팀이 없어 자세히는 모르지만 배전갑 전 사장도 2000년 11월에 사임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습니다. 아시다시피 김 전 회장과 배 전 사장이 세운 서류상 회사 ‘CHEMBUILT INTERNATIONAL, INC.’이 만들어진 건 2003년 9월 30일입니다. 퇴사 3년도 더 지난 때죠.

[취재 X파일] 13년 전 경영진이?…40분이 4년 같았던 대림산업 홍보실

하지만 단순히 ‘퇴직한 인사들이 3년이 지나 세운 회사기 때문에 관계가 없다’고 했다면 기자는 의혹을 지우지 못했을 것입니다. 기자는 한 가지를 더 물어봤습니다. “거긴 고위직들 전관예우 같은 건 없나요?”

보통 대기업 임원들은 퇴사한 뒤 일정기간 동안 기사가 딸린 차량과 개인사무실 등을 지원받습니다. 물론 몇 년 전 이야기입니다. 최근 상황이 어떤지 알아본 적은 없습니다. 거기에 회삿돈을 쓰는지 어떤 돈을 쓰는지도 천차만별일 겁니다. 전관예우 자체가없는 회사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김 전 회장이나 배 전사장이 퇴직하던 당시 대림산업이나 대림 코퍼레이션에 이런 형태의 예우가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회삿돈이 서류상 법인 설립에 이용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었겠죠.

그런데 질문을 받은 대림 관계자는 ”저희는 전관예우 전혀 없습니다. 퇴직하면 끝이죠“라고 말합니다. 한치의 망설임도 없습니다. 기자의 ‘의혹 섞인 오해’는 그렇게 풀렸습니다.

하지만 대림산업 측은 당혹스러웠던 모양입니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회사이름이 거론됐기 때문입니다. 애초 입장을 바꿔 공식대응을 준비했고, 오후 5시20분께 기자들에게 입장을 밝힌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더이상 기자들의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습니다. 발빠르게 응대한 덕이었을까요. 상황은 종료됐습니다. 더운 날씨에 전화 받으랴, 자료 만드랴 대림 홍보실 직원들은 그 40분이 4년 같았을 겁니다.

뉴스타파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공개한 자료에 건설회사 이름이 언급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요즘 건설사들 안그래도 죽을 맛입니다. 회사 규모를 막론하고 비상경영 중입니다. 한 대형 건설사는 한달 치 급여를 밀려서 지급했다는 흉흉한 소문도 나돕니다. 대림산업도 험난한 상반기를 겪었습니다. 연초엔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대림산업 합성수지 공장 시설 폭발 사고가 일어나 최근 임직원 몇 명이 구속기소되기도 했습니다. ‘4대강 공사 담합‘ 건도 수사중에 있어 이래저래 힘든 여름을 나고 있습니다.

여론은 이번에 거론된 ‘대림산업‘이란 이름만 갖고 회사와 현 직원을 싸잡아 비난하는 분위깁니다. 하지만, 정확히 봐야 합니다. 김 전 회장과 배 전 사장은 이미 13년 전에 회사와의 관계가 완전히 정리된 이들입니다. 개인사업을 위해 개인 돈을 써서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이들이 세운 유령법인과 대림산업의 관계가 팩트(fact)로 밝혀진다면 그 때 마땅히 따질 일입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선 아닙니다. 이들의 전 직장까지 따져물을 이유나 논리는 부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