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아이를 키워 본 부모들은 장난감의 생명력이 얼마나 짧은지 안다. 발달 단계에 따라 자연스레 아이 손에서 멀어지기도 하고, 유행을 따라 지인들이 선물해 준 장난감이 아이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비교적 멀쩡해 보이는 장난감이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무더기로 등장하는 이유다.
이 모습을 비극으로 여긴 이가 있으니, 장난감 순환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셜벤처 ‘코끼리공장’의 창업자 이채진 대표다. 아동학을 전공하고 어린이집 선생님으로 일하던 이 대표 눈에는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구입한 장난감이 쉽게 버려지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단순히 돈이 아까운 게 아니었다. 취약 계층 어린이들의 장난감 부족 문제가 심각한 중에도 수많은 장난감이 버려지고 있는 상황은 아무리 봐도 비정상적이었다.
심지어 환경도 해친다. 장난감은 플라스틱, 나사, 전선, 모터 등 다양한 부품으로 이뤄져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해마다 240만t에 이르는 장난감이 버려지는데, 이 중 대부분은 소각되거나 매립되면서 이산화탄소를 내뿜고 미세 플라스틱을 흘려보낸다.
그래서 이 대표는 ‘고장 난 장난감은 고치고, 버려질 장난감은 나누자’는 사업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간단한 구상처럼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봉사가 아닌, 수익을 내야 할 비즈니스로 접근하기엔 쉽지 않은 문제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전국 어린이집과 아이 키우는 분들이 우리 플랫폼을 이용해 장난감을 순화해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한다. 그를 직접 만나 자신감의 배경을 물었다.
-코끼리공장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합니다.
“장난감을 수리하고, 순환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장난감은 수리와 소독 과정을 거쳐 취약아동이나 아동복지기관에게 나누고요. 나아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장난감을 재생소재로 만들어 다시 아이들을 도울 수 있는 제품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기업과 협업 중이에요.”
-수리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10년 전쯤, 울산의 한 어린이집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어요. 당시 전국적으로 ‘장난감 대여관’이라는 사업이 진행됐는데, 제가 있는 구에서는 우연히 제가 사업을 맡았습니다. 복지부랑 구청에서 예산을 배정하고, 그 돈으로 장난감을 구입해 아이 키우는 분들이 빌려 갈 수 있도록 하는 거였죠. 저희 사업은 히트를 쳤습니다. 보통 구 단위 대여관에서 20~30개 정도 순환이 됐다는데, 저희 구에선 하루에 600개 넘게 대여됐어요. 30평 방을 가득 채운 장난감이 3일 만에 사라질 정도였죠.
문제는, 너무 쉽게 고장이 났다는 점이에요. 2~3달 지나니까 20% 정도가 고장 나더라고요. 저희한테 배정된 예산이 4억원이었으니, 8000만원어치가 망가진 거죠. 저는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세금이 들어간 장난감이 망가져 놀고 있는 것도 그렇고, 금방 고장 나버릴 장난감 때문에 다른 복지 사업의 기회가 뺏긴 것도 그렇고..”
그래서 이 대표는 당시 봉사활동 나와 있던 10여명의 아동학과 학생들과 함께 국내 장난감 제조·유통사들의 연락처를 전부 뒤졌다. 고장난 장난감을 그대로 두지 않고 반드시 애프터서비스(AS)를 받아내 사업을 정상화 시키겠다는 각오였다. 하지만 연락이 닿은 업체는 10곳 중 2곳도 채 안 됐다.
“대기업 몇 곳만 전화를 받았어요. 최종적으로, AS를 해준다는 곳은 5%밖에 안됐습니다. 그런데 더 참담한 건, 장난감을 고쳐달라고 택배를 보내면 연락이 안 온다는 거예요. 제가 먼저 연락해서 언제 다 되느냐고 꼬치꼬치 따져야 진행 상황을 알려주죠. 아이들 복지 사업 때문에 그러니 잘 좀 부탁한다, 이거 다 국민 세금이다 하고 집요하게 요구하면, 결국 새 제품이 와요. 수리 시스템 자체가 없단 얘기죠. 법 때문에 수리를 해준다고 적어는 놓지만, 수리 시스템을 돌리기엔 인건비도 안 나오니까 무시하거나 아예 새 제품을 보내버리는 겁니다.”
제조·유통사에 기대서는 대여 사업을 정상화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 대표는 2011년부터 지역의 손재주 있다는 사람 10여명을 모아 장난감 수리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수리 서비스가 입소문을 타고 찾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단순히 봉사의 형식으로는 서비스를 지속하기가 어려웠다. 약 3년간의 고생 끝에 서비스 중단을 고민할 때쯤, 이 대표 눈에 운명처럼 들어온 것이 ‘사회적 기업을 육성합니다’라는 내용의 버스 광고였다.
-‘코끼리공장’이 출범한 순간이군요.
“‘2000만원 드립니다’고 적혀 있었어요. 고용노동부가 사회적기업진흥원 및 대학교들과 진행한 사회적 기업가 육성 사업이었는데, 처음엔 뽑아먹어야겠다고만 생각했죠. 쉽지 않더라고요. 탈락했다가 추가 모집으로 붙었거든요. 그런데 지원을 받은 전국 400여개 법인에 대한 1년 뒤 평가에서 저희가 대상을 받았습니다. 이듬해인 2015년에는, 정몽구재단에서 진행했던 ‘H-온드림’이라는 소셜벤처 지원 사업에서 수위권을 차지해 1억원을 지원받았고요.
사실 다시 복지시설로 돌아갈 궁리만 하고 있었습니다. 근데 돈을 받고 나니 책임을 져야겠더라고요.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복지시설로 돌아갔을 때보다 이 사업을 성공시키는 게 우리 사회에 더 많은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7년 동안 코끼리공장을 운영하고 있어요.”
-전국 규모 지원 사업에서 수위권에 들었다면, 코끼리공장의 비즈니스모델이 기존에 없는 것이거나 새로웠기 때문일 듯합니다. 어떤 점이 높게 평가됐을까요?
“아예 없던 서비스는 아니었지만, 기존 업체들은 대부분 실패했어요. 저희는 아동전문성을 기반으로 지역 내 신뢰를 쌓고 이를 통해 아동복지기관들과의 협력 체계를 만들어냈는데, 그게 기존 업체들과의 큰 차이였던 것 같습니다.”
어린이집 운영 규정이나 교육 과정 등을 관할하는 복지부 산하 공공기관 한국보육진흥원은 오는 2024년까지 약 4만여개 어린이집이 코끼리공장과 장난감 순환 체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현재 코끼리공장은 약 3000개 시설과 거래하고 있는데, 이르면 2년 내 그 수가 10배 이상으로 불어나게 되는 셈이다. 어린이집을 포함한 국내 아동복지시설이 약 4만5000개인 것을 감안하면, 국내 시설 대부분이 코끼리공장 네트워크 안에 포함되게 된다.
-아동전문성이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걸 의미하나요?
“장난감 순환 시장을 파고든 곳이 저희뿐만은 아니에요. 특히 재활용 사업자들이 이 시장을 눈여겨 봤죠. 하지만 기왕이면 소통이 잘 되는 업체에게 주고 싶지 않을까요? 저희는 아이들과 아이 키우는 부모님들, 아동복지시설의 운영 방식과 행동 패턴, 소통 방식까지 잘 알고 있어요. 이게 저희의 핵심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회사가 더 커지면 아동전문성도 다소 희석될 수 있겠죠. 코끼리공장은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돕는 곳이라는 인식을 계속 지켜나가는 게 제 과제입니다.”
코끼리공장의 브랜드 가치를 알아 본 일부 사업자들은 이 대표에게 프랜차이즈 방식을 통해 사업을 확장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해 오기도 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방식은 코끼리공장 브랜드에 대한 고객의 신뢰를 지키기 적합한 방식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더군다나, 그렇게 무리해서 규모를 키운다 해도 ‘장난감 순환’만으로는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이 대표는 체감하고 있었다.
-코끼리공장은 수익을 어떻게 내고 있나요?
“우선은 아동시설에서 사용하던 장난감을 수리하거나 대신 폐기해주는 계약을 월 단위로 맺습니다. 사실 장난감을 수리, 수거해주는 것만으로는 계약을 맺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아동 기관 관리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공간 소독과 방역 서비스를 같이 제공하죠. 그렇게 저희 고객이 된 곳이 한 500곳이 되고, 그렇게 월 매출이 7000만원 정도 나옵니다.
수리 및 순환 서비스를 계속 이어가려면, 이걸론 부족해요. 그래서 소재 사업을 통해 수익을 뒷받침하려고 합니다. 장난감을 최대한 많이 수거하고, 그걸 자원으로 만들어서 활용하는거죠. 만약 저희가 4만개의 아동복지시설과 연결되면 1년에 1만t가량을 수거할 수 있을 텐데요. 그중에 70%는 수리해서 다시 순환시킬 수 있고, 나머지 30%는 폐기될 겁니다. 폐기하면서 나오는 재생 소재는 1㎏당 2000원 정도 하는데, 3000t이라고 하면 60억 매출을 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와요.”
코끼리공장은 이 과정에서 환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장난감은 고부가합성수지(ABS), 폴리프로필렌(PP), 폴리스티렌(PS) 등 다양한 종류의 플라스틱뿐 아니라 나사, 전선, 모터 등 다양한 부품으로 구성돼 있어 대부분 재활용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매립되거나 소각되고, 이산화탄소와 다양한 환경오염물질을 배출하죠. 아이들의 친구로 만든 장난감이 환경을 오염시켜 아이들의 미래 환경을 해치고 있는 상황인 거예요. 수리하고 재사용하는 문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환경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겁니다.”
-소재 사업은 장난감 수리와는 달리 기술적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일 텐데요. 어떻게 사업을 준비하고 계신가요?
“롯데케미칼과 함께 ‘프로젝트 루프’라는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확보한 재생소재가 정확히 어떤 소재인지, 그래서 어떤 산업군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 검사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루프 사업 외에도, 고분자 분야 전문가를 직접 고용하거나 울산과학기술원(UNIST)와 함께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자체적인 연구개발 노력도 하고 있어요.
또 저희가 확보한 재생소재를 가지고 공업 재료로 사용되는 플라스틱, 이른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만들어내는 사업도 준비 중입니다. 2년 전 산업통상자원부 연구 사업으로 시작했는데, 조명 방열판에 절연과 방열 기능을 위해 들어가는 알루미늄 소재를 플라스틱으로 대체하는 겁니다. 최근에 재생 소재를 생산하는 공장을 한 동 구축했고, 그 공장 옆에 조명 생산 공장도 함께 만들었어요. 진출할 시장의 크기가 울산과 부산만 따져도 500억 규모라 수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코끼리공장이 개발한 조명은 에너지 효율이 높은 LED 조명으로, 장난감을 기부한 아동복지시설이나 취약계층 가정에 기부하는 방식 등으로 폭넓게 활용될 예정이다. 또한 조명 공장 역시 장애인 작업장으로 운영된다. 모든 사업 절차에 사회적 기여가 고려되고 있는 셈이다.
-다시 장난감 순환 사업 얘기로 돌아오죠. 4만여개 아동복지시설과 거래하려면 전국 규모의 기동력과 거점을 갖춰야 할 텐데요. 현재 코끼리공장의 상황은?
“저희 임직원이 36명인데, 기본적으로는 이 분들이 울산을 거점으로 중부 지역 수요에 대응하고 있고요. 추가로 현대차그룹과 함께 설립한 비영리법인 ‘그린무브 공작소’를 통해 경기 안양에서 수도권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은 그린무브 공작소를 통해 저희에게 수도권 내 사무 공간과 차량, 홍보, 법인 운영비용 등을 지원해주고 있어요. 덕분에 수도권 진출이 가능했고, 보육진흥원과도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죠. 앞으로 도 단위든 인구 100만 단위든, 지역 거점은 계속 확장해 나가려고 합니다.”
이 대표는 지역 거점을 구축하기 위한 자본력을 확보하기 위해 올해 중 시리즈A 라운드 투자 유치에 돌입한다. 앞서 코끼리공장은 임팩트 엑셀러레이터인 임팩트스퀘어로부터 초기자금 5억원을 투자받아 재생소재 공장 인허가 및 공장 설립에 활용했다.
-자금이 많이 필요할 듯합니다. 장난감 순환 서비스 자체는 돈이 안 된다고 했는데.. 소재나 조명 사업이 제 때 수익을 내주지 못하면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는 건가요?
“장난감 순환 규모가 아무리 커져도 수익 가능성은 많지 않은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최근에는 시장 상황이 바뀌고 있는 걸 보고 있습니다. 저희 입장에서 아동복지시설은 혜택을 제공해야 하는 대상일 뿐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역으로 저희에게 수익 기회를 제안하더라고요. 어떤 시설은 ‘너희들이 장난감을 수거할 때 아이들에게 환경 교육도 시켜줘’ 요청했고요. ‘너희가 어차피 우리 장난감을 수리해주니까 중간에서 납품까지 같이 해볼래?’하고 제안하기도 했어요. 물론 합당한 비용을 지불하겠다면서요.
사실 고객이 먼저 수익 기회를 제안해오는 것은 기적같은 일입니다. 우리가 정말 좋은 일을 하고 있나 보다, 하는 자신감과 뿌듯함이 들기도 해요. 물론 이런 사례는 일부이지만, 향후 저희가 순환 체계를 제대로 갖춰내면 장난감 공급과 전체 관리까지 아우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장난감 시장의 쿠팡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요.”
-기존 장난감 제조·유통사들의 견제를 받을 수 있는 부분 아닌가요?
“시장 충돌이 일어날 법도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저희는 새 장난감 시장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장난감 중고 거래 시장을 더 공정하고 혁신적으로 바꾸는 것에 주목합니다. 오히려 영실업 등 대형 제조사들과의 협업 사례도 있어요. 일부 대형마트 점포에 ‘또봇’ 장난감을 가져오면 코끼리공장을 통해 순환시키고, 장난감을 기부한 사람들에게는 30% 할인 혜택을 제공한 사례였죠. 오히려 신규 시장이 저희를 새로운 사업 기회로 보고 있는 듯합니다.”
이 대표에게 개인적인 목표가 무엇이냐 묻자 “돈 많은 아동재단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사업가로서의 포부는 점점 더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그 중심에는 아동 복지가 자리한 모습이다.
“장난감을 사주고 싶어도 너무 비싸서 못 사주는 어려운 가정들이 많아요. 장난감을 기부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만, 그 과정이 일방적이어서 받는 어린이가 기분이 나빠선 안 되잖아요. 누구나 장난감을 기부하러 올 수 있고, 또 누구나 장난감을 갖고 갈 수 있는.. 그런 오프라인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처리 곤란한 장난감이 많은 아이는 10개를 기부하면서 하나만 가져갈 수도 있고, 반대로 장난감이 부족한 아이는 하나만 기부하고 10개를 가져갈 수도 있겠죠.
하고 싶은 게 많아요. 투자자들이 얼마 필요하냐고 물어보면 대뜸 100억원이 필요하다고 말하거든요. 그럼 표정에서 ‘뭐하는 놈인가’하는 시선이 읽히지만.. 어쩌겠어요, 아이들에게 집중하려면 실제 그만한 돈이 필요하거든요. 많은 분들의 도움을 빌어, 장난감 빈부격차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게 저희의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