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업계 지원책 잇달아 발표했지만

생계지원금 받는데도 3개월 넘게 걸려

현장선 “당장 급하다” 규모·속도 불만

美, 대공황때 공공미술프로젝트 시행

작품 매입 등 적극 구호로 위기 탈출

“신속하고 직접적인 대규모 지원 절실”

예술계 ‘집단실업’ 위기…지원 속도가 생명인데
코로나19의 여파로 문화예술계는 아사 직전이다. 정부의 대규모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당장 다음달이 급한데, 심사과정을 거쳐 지원을 받으려면 2~3개월은 족히 걸린다. 조건없는 대규모 지원이 지금 필요하다. 사진은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토탈미술관을 방문, 사립미술관의 고충을 청취하고 있는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맨 왼쪽). [연합]
예술계 ‘집단실업’ 위기…지원 속도가 생명인데

1934년 대공황시기, 미국을 다시 일으킨 건 ‘뉴 딜’정책이었다. 실업률이 25%까지 치솟는 등 사태가 악화하자 연방긴급구제국(FERA·Federal Emergency Relief Administration)은 노동자들에게 일거리를 직접 제공해 임금을 지급했다. 문제는 이 ‘노동자’들에 예술가가 포함되느냐 하는 것. 규정상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리 홉킨스 연방긴급구제국 국장은 “그들도 다른 이들과 똑같이 먹어야 살 것 아니냐”라며 예술가 구호를 결정했다.

이에 미국정부는 3749명의 예술가를 고용하고, 전국의 정부건물을 위한 1만 5000점이 넘는 그림, 벽화, 판화, 공예, 조형물을 제작하는 공공미술프로젝트(PWAP·Public Works of Art Project)를 시행했다. 이 프로젝트의 예산은 118만 4000달러, 한 작품당 평균 매입가는 75.59달러다. 덕분에 예술가들도 대공황시기를 견뎌낼 수 있었다.

이 프로젝트의 수혜자에는 당시 무명이었던 잭슨 폴록도 있다. 역사에 ‘만약에’는 없다지만, 이러한 적극적인 구호가 시행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잭슨 폴록을 혹은 추상미술을 만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

“당장 2~3개월이 급합니다. 빚을 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게 이번 달이 마지막입니다” 한 독립 기획자의 호소에 가장 먼저 떠 오른건 대공황시기 미국의 적극적인 구호정책이었다.

코로나19(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가 할퀴고 간 예술계는 아사직전이다.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연극인, 무용수, 제작진은 모두 ‘집단 실업’에 처했다. 운영비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전시장은 문을 닫았다. 프리랜서들은 직업을 잃었고, 작가들은 작품 한 점 판매가 어렵다.

바이러스는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겠지만, 사회 안전망 밖으로 밀려난 예술인들의 복귀는 시간이 지난다고 자연스레 해결되지 않는다. 실물경기의 타격은 경제활동의 가장 끝에 위치한 예술계에 가장 파괴적으로 나타난다.

정부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추경으로 11조원을 편성했다. 문화체육관광부(장관 박양우)도 대응책을 거의 매일 발표하고 있다.

예술인복지재단과 예술경영지원센터 등 산하기관을 통해 사례를 모집하고 지원금을 제공하는데, 특히 예술인복지재단은 기관이 아닌 예술가 개인을 지원한다. 코로나19 기간동안 국내외 행사와 공연의 취소 및 연기로 소득이 감소한 예술인들을 대상으로 저금리(1.2%)로 대출을 해주는 ‘긴급 생활안정자금’과 신청 창작을 준비하는 예술인들에게 1인당 300만원씩 지급하는 ‘창작디딤돌’ 등이 있다.

이렇듯 문체부가 예술인들을 긴급지원하겠다고 나섰지만 정작 예술인들 사이에선 불만이 터져나온다. 속도와 규모가 낙제점이라는 것이다. 지난 10일 신청을 마감한 긴급 생활안정자금은 신청금액이 예산(30억원)을 훌쩍 초과했다.

창작디딤돌은 20일 마감때까지 1만4800명이 신청했다. 올해 재단이 마련한 지원금규모는 1만 2000명(360 억 원)분이다. 이중 6000명만 상반기 중에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나머지 6000명은 하반기에 예정돼 있다. 지난해 5500명 지원한 것에 이어 두 배 넘는 규모를 마련했지만, 코로나19로 턱도 없는 상황이 돼 버렸다. 더구나 2019년에 지원을 받은 사람은 올해는 신청 할 수 없다.

이외에도 중소기업·소상공인 지원방안과 고용유지지원금, 일자리안정자금, 국세 지방세 신고 및 납부기안 연장 등도 예술계에 적용되는 지원책이지만 이들 대부분은 ‘융자’다. 결국 갚아야 할 돈이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시간’이다. 생계지원금 격인 창작디딤돌도 받는데 3개월은 족히 걸리고, 나머지 지원방안들도 마찬가지다. 벼랑끝으로 밀리기 전에 잡아줘야한다. 떨어지는 사람에게 밧줄을 던져준 들, 이것을 잡고 올라올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결국, 모든 것은 타이밍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