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스포츠팀=남화영 기자] 골프계에서 시대마다 항상 영웅은 탄생한다. 처음 우승을 따낸 이는 앳되고 들떠 있는 모습이다. 한두 개의 우승이 세월의 더깨로 쌓여간다. 영웅은 역사가 되었다가 세월이 지나 전설이 된다. 골프계의 영웅이 여성이라면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전 시대에는 성차별의 한계와 편견의 벽을 뚫고 역사에 자취를 남겼기 때문이다. 전설의 여성 골퍼 10인을 골라봤다. 물론 현역은 제외한다. 그들이 아직 이루고 싶은 꿈과 목표들이 전설로 남기에는 부족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도로시 캠벨(Dorothy Campbell) 1883.3.24~1945.3.20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최고의 근대 여성 골퍼로 평가받는 이는 도로시 캠벨이다. 27살 되던 1909년 한 해에 브리티시여자오픈과 US여자오픈을 석권했다. 나중엔 캐나다여자오픈 타이틀까지 따내면서 최초의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했다. 일생동안 타낸 750여개의 우승 트로피가 삶의 궤적과 일치한다. 초기에는 스코티시 여자챔피언십에서 세 번(1905, 06, 08년)을 우승했고 영국으로 무대를 넓혀 브리티시여자오픈에서 1909, 11년 타이틀을 거머쥔다. 결혼과 함께 3년간 살던 캐나다에서 여성 골프계를 평정했고, 1924년 세 번째로 US챔피언십을 석권하기까지 도로시 캠벨은 골프의 대명사였다.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은 비참했다. 63살이 되던 1945년 어느 봄날, 기차 플랫폼을 헛디뎌 들어오는 기차에 치어 사망했다. 1978년 캐나다 및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베이브 자하리아스(Babe Zaharias) 1914.6.26~1956.9.27 미국 텍사스 포트아투어 20세기 최고의 여성 스포츠인으로 베이브 자하리아스를 꼽아도 될 것이다. 어릴 때 이름은 밀드레드 엘라 디드릭슨이었으나, 어렸을 때부터 남자 아이들과 야구를 즐겼다. 야구경기에서 혼자 홈런 다섯을 뽑아내자 홈런왕 베이브 루스에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932년 LA올림픽에서는 80m 허들과 투창에서 금메달을, 높이뛰기에서 은메달을 따낸다. 골프선수 생활은 35년부터 생계를 위해서 시작했다. 새벽 5시반부터 세 시간 운동하고 직장에 출근했다 저녁에 연습하는 생활이 계속됐다. 타고난 기량에 연습이 붙으면 막을 자 없다. 46, 47년 2년 동안 17개 아마추어 대회를 연속 우승한다. 그녀는 여성 골프의 스윙 유형을 창조하기도 했다. 20~30년대 여성골퍼라면 조이스 웨더드가 구사하는 형식의 우아한 스윙이 주였으나, 자하리아스는 보다 힘 있고 파워를 중시하는 그루브(Groove)스윙을 만들어낸다. 남자에게 보이기 위한 예쁜 스윙에서 벗어나 여성이 주체적으로 게임을 즐기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변화였다. 애석하게도 41살 젊은 나이에 암으로 생을 마감한다. LPGA메이저 우승 10승에 일반 우승은 41승으로 카리 웹과 함께 공동 10위다. 패티 버그(Patty Berg) 1918.2.13~2006.9.10 미국 미네아폴리스패티 버그는 아마추어 40여개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최고의 선수였다. 하지만 세계 2차 대전 후에 여성 아마추어가 경기를 치르는 환경은 열악했다. 결국 1948년 베이브 자하리아스, 베티 제임슨 등 13명이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를 결성한다. 이들이 바로 13명의 LPGA 설립자 즉 파운더스다. 50년대 여성 골프계를 뒤돌아보면 그녀의 족적을 비껴갈 수 없다. 53~55년, 57년 우승하면서 상금액 10만 달러를 넘은 최초의 여성골퍼가 된다. 여성도 골프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가능성이 이후 여자아이를 둔 부모에게 골프교육을 향한 열정으로 이어졌다. 그녀는 또한 52년 한 라운드 64타로, 12년 뒤 미키 라이트까지 가서야 깨지는 최저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41년 프로 토너먼트에서부터 22년간의 투어 기간동안 LPGA투어 60승(역대 5위)에, 메이저로는 가장 많은 15승을 달성했다.
루이즈 슈그스(Louise Suggs) 1923.9.7~2015.8.7 미국 조지아 애틀랜타 루이즈 슈그스는 어릴 때부터 화려한 아마추어 전적을 자랑했다. 1948년 브리티시 여자오픈에서 우승하고 프로로 데뷔하면서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설립자 13인의 한사람으로 참여한다. US여자오픈에서는 49, 52년 우승을, 57년에는 LPGA챔피언십에서 우승한다. 하지만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프로 첫해에 페티 버그와 베이브 자하리아스를 제치고 우승 트로피를 따낼 때였다. 50살이 되던 1962년을 마지막 우승으로 필드를 떠난다. 그동안 메이저 우승은 11승, LPGA투어 우승은 61승으로 통산 4위에 해당한다. 벳시 라울스(Betsy Rawls) 1928.5.4~. 미국 남캘리포니아 스파탄버그라울스는 10대 후반까지 골프가 뭔지도 몰랐다. 하지만 일단 골프 클럽을 잡고나서는 인생이 바뀌었다. 아마추어로 US여자오픈을 두 번 출전했고, 1951년 프로로 전향하고부터는 소리 없이 강한 실력을 발휘했다. LPGA에서 총 55승을 거두었고 그중에 메이저에서는 8승을 거두었다. 70년대 후반부터는 토너먼트 책임자를 맡아 LPGA를 오늘날처럼 성장시켰다. 1960년에 이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미키 라이트(Mickey Wright) 1935.2.14~.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여성 골퍼중 역대 최고의 스윙으로 미키 라이트가 꼽힌다. 자하리아스와 같은 파워풀한 티샷에 롱아이언을 가장 잘 다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1950년대부터 두각을 보여 58년 한해에만 US여자오픈, LPGA챔피언십을 포함해 5승을 싹쓸이하더니 1960년대 초반은 라이트의 이름이 모든 대회를 도배한다. 61, 62년에 10승씩, 63년 13승, 64년엔 11승을 거두었다. 이로써 그녀의 LPGA투어 역대 승수는 82승으로 역대 2위, 메이저 우승도 13승으로 역대 2위다. 캐시 휘트워스(Kathy Whitworth) 1939.9.27~. 미국 텍사스 모나한스캐시 휘트워스는 1959년부터 91년까지 LPGA 투어 생활을 하면서 총 88승으로 역대 최고의 승수를 쌓았다. LPGA투어에서 8년간 상금왕을 지냈고, 7년간 ‘올해의 선수’ 기록을 쌓았다. 다만 메이저 우승은 6번에 그쳤다. 1975년에는 골프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낸시 로페즈(Nancy Lopez) 1957.1.6~ 미국 캘리포니아 토랜스 오늘날 선수들로부터 가장 많은 존경을 받고 있는 프로가 낸시 로페즈다. 프로 골퍼로 또한 세 딸을 가진 주부로 둘 다 성공한 흔치않은 사례다. 신인 돌풍을 일으켰던 77년에서 80년대 초반까지가 황금기였고, 그중 전성기인 78년에는 파죽지세로 5연승을 따내자 US여자오픈 입장료도 3배나 올랐다. LPGA의 번성을 이끈 선수였다. 로페즈는 시즌을 마칠 때까지 9승을 거둔 뒤, 이듬해인 79년에도 8승을 따냈고 총 48승을 기록했다. 메이저는 3승에 그치는 게 아쉽다. 안니카 소렌스탐(Annika Sorenstam) 1970.10.9~. 스웨덴 브로두 말이 필요없는 원조 ‘골프여제’가 안니카 소렌스탐이다. 스웨덴 브로에서 자랐고 미국으로 건너와 LPGA투어 통산 72승으로 역대 3위이며 메이저는 총 10승을 달성했다. 컴퓨터처럼 정확한 샷이 일품이었고, 2004년엔 남자 PGA투어 콜로니얼토너먼트 대회에도 출전했을 정도의 노력파이기도 했다. 8년 동안 LPGA 투어 ‘올해의 선수’였고, 여자로는 유일하게 한 라운드 59타 최소타 기록을 세웠으며 2008년에 은퇴했다.
박세리(Seri Pak) 1977.9.28~. 한국 대전 한국 선수들이 현재 미국LPGA투어에서 활약하는 촉매가 된 선수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는 14승을 올렸고, LPGA투어에서는 25승에 메이저에서 5승을 거두었다. 1998년 루키로 US여자오픈에서 드라마틱하게 우승하면서 무수한 한국의 어린 후배들에게 꿈을 안겨주었다. 2016년에 은퇴했으며 국내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프로 골프대회가 매년 열리고 있다. 골프 명예의 전당에는 2007년에 헌액되었다. LPGA에서의 승수를 보면 31승에 메이저 7승의 줄리 잉스터도 있고, 베시 킹, 팻 브래들리 등도 메이저 6승에 LPGA 30승씩이 넘는다. 보비 존스조차 격찬한 최고의 스윙어로 잉글랜드의 조이스 웨더드도 있다. 영국의 로라 데이비스도 생애 통산 90승을 달성했다. 멕시코의 로레나 오초아는 당대에는 압도적이었지만 메이저 승수가 없다. 선수가 끼친 영향력에서 박세리를 10명의 전설에 넣어도 될 듯하다. 아직도 당당히 프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카리 웹이 은퇴하면 10명에 들어갈 수도 있다. 향후의 일이겠으나 박인비나 박성현 역시 이들 속에 당당히 들어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돌아오는 주에는 초대 대회 오거스타내셔널여자아마추어가 열린다. 거기에 낸시 로페즈, 안니카 소렌스탐, 박세리, 로레나 오초아가 여자 선수들의 멘토이자 전설로서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오거스타내셔널에서 개최하는 첫 번째 여자대회라는 점도 상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