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포용적 국제협력’의 중심돼야” 강조
강대국 갈등 속 중견국 입지 강화 전략 풀이
정작 美中은 ‘코로나19 책임 공방’ 설전 계속
[헤럴드경제=유오상 기자] 경제 분야를 넘어 안보 분야에서까지 갈등을 심화하고 있는 미중 정상이 유엔 총회장에서도 설전을 이어갔다. 코로나19 확산 책임을 두고 공개적으로 “중국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미국과 “정치화 말라”는 중국이 맞붙는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다자주의를 통한 해법’을 제시했지만, 한국의 외교적 입지는 더 좁아지는 모양새다.
22일(현지시간) 제75차 유엔 총회 일반 토의 기조연설에 나선 문 대통령은 미중 갈등 상황을 의식한 듯 “전 지구적 난제 해결을 위해 ‘인류 보편의 가치’를 더 넓게 확산시켜야 한다”며 “유엔이 오늘 이 순간부터 새로운 시대, ‘포용적 국제협력’의 중심이 되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미중 갈등 심화로 축소된 유엔의 역할 강화를 강조 한 문 대통령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유엔의 새로운 역할로서, 함께 잘 살기 위한 다자주의, ‘포용성이 강화된 국제협력’을 강조한다”며 “75년 전 유엔을 창설한 선각자들처럼 대변혁의 시대에 우리가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다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반(反)중국 동맹 참여를 요구하는 미국과 중립을 요구하는 중국 사이에서의 해법으로 ‘다자주의’를 강조해왔다. 아세안 국가들과 협력 관계를 넓히고 중견국 협의체인 ‘믹타(MIKTA)’ 의장국을 수행하며 다자무대에서의 외교적 입지를 강화하겠다는 구상이다.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중국과의 협력 관계를 확대한다”는 자체 구상도 밝혔다.
그러나 취임 직후부터 미국과 중국, 대륙과 해양을 잇는 ‘교량 국가’가 되겠다는 외교 전략을 강조했던 문 대통령의 ‘다자주의를 통한 해법’은 이날 미국과 중국이 UN 총회장에서 화상으로 공개 설전을 벌이며 의미가 무색해졌다.
이날 먼저 연설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을 향해 직접 포문을 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188개국에서 무수한 생명을 앗아간 보이지 않는 적인 중국 바이러스와 치열하게 전투하고 있다. 유엔은 그들의 행동에 대해 중국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중국은) 무증상 사람들은 질병을 퍼뜨리지 않는다는 거짓말도 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연설의 대부분을 중국 비난에 집중했다. 무역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는 중국의 수십 년간의 무역 유린에 맞서 싸웠다”고 했고, 환경 보호 문제에 대해서도 “중국은 매년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과 쓰레기를 바다에 버리고, 다른 나라 수역에서 남획하고, 거대한 산호초를 파괴하고, 어느 나라보다 독성이 강한 수은을 대기로 방출한다”고 언급했다.
뒤이어 연설에 나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미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으면서도 미중 갈등 상황을 의식한 듯 “국가 간에 차이점이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어 시 주석은 미국과의 남중국해 갈등을 의식한 듯 “(중국은) 패권이나 세력확장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른 나라와 냉전이나 전면전을 벌일 생각이 없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풀이된다. 다만, 미국이 주장하고 있는 ‘코로나19 책임론’에 대해서는 “정치화하지 말라”며 반박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