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4000억, 작년 5000억 돌파
AI 연구로 전기 사용 더욱 높아져
“전기료 부담하느라 AI 경쟁 뒤쳐질 판”
[헤럴드경제=박혜원·안효정 기자] 지난해 전국 대학이 부담한 전기료가 5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대학가 인공지능(AI) 연구 수요가 커진 가운데 전기료 상승이 겹친 결과다. 연구자들 사이에선 대학이 연구 비용을 떠안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적인 AI 기술 개발 경쟁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호소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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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사단법인 한국그린캠퍼스협의회가 한국전력에 정보공개청구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고등교육기관(대학)이 부담한 전기료는 5236억원에 달했다. 대학교 전기료는 코로나19 확산 이전까지만 해도 3000억대 후반을 유지했으나, 일상 회복 후인 2022년부터 4172억원으로 4000억대를 돌파했다. 대면 수업 재개로 전기 사용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전기료 인상까지 겹친 결과다. 한국그린캠퍼스협의회는 국내 대학 50곳 등이 소속된 단체로, 대학의 탄소절감을 도모한다.
연도별로 보면 일상 회복 이후 전기 사용량과 함께 전기 요금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추세가 보인다. 전국 대학 전기 요금은 ▷2017년 3812억원 ▷2018년 3906억원 ▷2019년 3819억원이었다. 이후 코로나19 확산 기간인 ▷2020년 3481억원 ▷2021년 3566억원으로 떨어졌다. 그러다 ▷2022년 4172억원 ▷2023년 5236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7%, 25% 폭증했다.
같은 기간 전기 사용량도 비슷한 흐름이다. 연도별 전국 대학 전기 사용량은 ▷2017년 388만MWh ▷2018년 395만MWh ▷2019년 389만MWh ▷2020년 347만MWh ▷2021년 368만MWh ▷2022년 393만MWh ▷2023년 408만MWh로 나타났다. 전기 사용량 역시 지난해 처음으로 400만MWh대를 돌파했다.
성균관대 슈퍼컴퓨팅센터는 최근 사용률이 낮은 AI 위탁 장비를 반납해달라는 공지를 올렸다. [성균관대 홈페이지 캡쳐] |
대학가에선 특히 최근 AI 연구 수요가 높아지면서 전기 사용량 역시 늘어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과거 IT 업계에서만 주로 쓰였던 AI 기술 활용 영역은 매년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 주목 받는 생성형AI 기술은 일반 컴퓨터보다 복잡한 연산을 처리해야 해 일반 검색보다 전기 소비량이 높다.
실제로 연구개발이 활발한 대학일수록 전기료 부담도 높았다. 지난해 서울대가 쓴 전기는 22만6836MWh였으며 전기료는 328억원을 부담했다. 카이스트는 12만756MWh를 쓰고 170억원을 부담했다.
이 때문에 대학에선 AI 연구에 앞서 비용부터 우려하는 게 현실이다. 지난달 그래픽처리장치(GPU) 클러스터 가동을 시작한 서울대에선 GPU 클러스터 구축을 논의할 당시 평의원회에서 전기료 부담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2022년 서울대 제17기 평의원회 12차 회의 당시, 이현숙 연구처장이 GPU 클러스터 구축 계획을 발표하자 의원들 사이에선 GPU 클러스터 구입비에 상응하는 운영비, 막대한 전기 소비량에 대한 지적이 나왔다.
AI 활용 분야가 다양해지면서 대학들의 연구개발도 매년 그 규모가 커지고 있다. 김성재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은 “반도체 분야로도 AI 기술 수요가 생겨, 최근에는 휴대폰에 소형 AI 모델을 탑재해 생성형 AI서비스를 구현하는 온디바이스AI가 차세대 기술로 주목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균관대 슈퍼컴퓨팅센터는 최근 사용률이 낮은 AI 위탁 장비를 반납해달라는 공지를 올렸다. 이 센터는 교수들이 사용하는 AI 서버를 500대 규모로 관리하고 있는데, 전기 사용량이 매년 25%씩 폭증하면서다. AI 서버를 이용하는 단과대도 소프트웨어융합대학, 정보통신대학, 공과대학, 자연과학대학, 생명공학대학 등으로 다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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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자들 사이에선 AI 연구를 위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기료 외에 드는 서버 등 각종 장비 비용도 AI를 연구하는 대학들 입장에서는 부담이다. 매년 급등하는 GPU 가격, 서버 유지 비용, 연구 장비 발열에 따른 냉방비 등이 여기 해당된다.
전기료를 포함한 비용 부담으로 AI 개발도 국제적으로 뒤처지고 있다는 게 대학들의 호소다. 최영준 아주대 인공지능융합혁신대학원 사업단장은 “인공지능 연구가 워낙 빠르게 바뀌고, 최신 기술도 몇 개월 간격으로 업데이트 되고 있다”며 “국제적 연구 속도를 따라가려면 최신 장비가 필요한데 전기료 부담부터 크니 대학 입장에선 투자에 소극적인 것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최 단장은 “국내 인공지능 관련 대학원 19곳 중 제대로 인프라를 갖춘 곳은 극소수일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대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하고 있는 교수 A씨는 “대학 연구는 학교 전체 예산으로 하는 것이니, AI 연구로 학교 예산 부담이 늘면 장비 투자가 어려운 것은 물론 연구 과제를 2개에서 1개로 줄인다든지 학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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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용 전기를 농사용 수준으로 낮춰달라는 요구도 있다. 서울 소재 한 대학 예산 관리 관계자는 “작년 전기료가 재작년 대비 30% 이상 급등했다”며 “교육용 전기료를 농사용 수준으로 맞춰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난해 기준 전기요금 판매단가는 kWh당 일반용 169.5원, 가로등 152.7원, 주택용 149.8원, 산업용 153.7원, 교육용 138.8원, 농사용 75.1원이다. 교육용 전기는 일반용보다는 저렴하지만 농사용보다는 2배가량 비싸다.
서울대는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공공요금 지원 확대를 요구했다. AI 연산에 필요한 GPU 클러스터 가동을 지난달 시작하면서 전기 사용량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다. 강병철 서울대 연구처장은 “전기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려고는 하지만 정부 예산만으로도 감당이 되지 않는 상태”라며 “전기료를 낮춰달라고는 할 수 없으니 공공요금 중 간접비를 늘려달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간접비란 대학이 정부로부터 받는 연구개발 지원금 중 사용처가 명확하지 않은 항목을 따로 뺀 것이다. 김창환 한국그린캠퍼스협의회 선임연구원 역시 “대학에 연구개발 인센티브 비용을 확대해서 전기료 부담을 덜어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외의 경우 AI 연구 지원이 한국보다 활발하다. 미국 대학은 정부 지원과 함께 기업 지원 규모도 크다. 텍사스대는 지난 1월 미국국립과학재단(NSF)에서 자금을 지원 받아 엔비디아의 최신 GPU를 탑재한 생성형 AI 센터를 구축했다. 플로리다대학도 2020년 엔비디아 등 기업 기부를 받아 AI 슈퍼컴퓨터를 구축했다.
독일은 내년까지 AI 연구에 대한 정부 지원금을 10억 유로(약 1조4340억원)로, 2배가량 확대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독일은 대학연구소 150곳을 신설하고 공공 데이터셋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1700억원을 들여 GPU 구매에 직접 나섰다.
김 연구원은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하고, 대학은 그만큼 전기 사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이 지점을 국가에서 혜택을 줘야 하는데 지금은 오롯이 학교가 부담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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