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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T과학칼럼] 노화연구 거점을 구축하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연구진이 노화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제공]

질 보정 수명(QALY·Quality Adjusted Life Years)은 죽음을 0, 완전히 건강한 삶을 1로 나타낸다. 포브스에 따르면 한 명의 외과 의사가 30년 동안 매년 400번의 수술을 한다면 환자당 평균 2년의 QALY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주 1회 복용하면 수년의 수명연장 효과가 있는 약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1인당 1QALY를 제공할 수 있다면 전 세계 인구가 80억명이므로 총 80억 QALY를 제공할 수 있다. 나아가 신약을 개발하여 노화를 늦춰 10년의 추가적인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면 800억 QALY가 만들어진다. 이는 전 세계 110만명의 외과 의사가 생성할 수 있는 QALY보다 3배나 많은 것이다. 노화는 오랫동안 고혈압, 암, 치매, 심혈관 질환 등 만성질환의 공통 위험 요소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 노화를 진단하고 늦추거나, 더 나아가 되돌리는 것이 가능하다는 연구결과들이 지속해서 보고되고 있다.

젊은 사람의 혈액에 존재하는 노화를 되돌릴 수 있는 역노화인자를 발견하여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연구를 하고 있고, 노화된 신체 장기 내의 노화 세포를 선택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약물을 이용하여 만성질환을 치료하는 임상연구도 진행 중이다. 분화가 끝난 세포를 줄기세포를 이용하여 분화과정을 되돌리는 세포 리프로그래밍 기술을 동물에 적용하여 늙은 생쥐의 시력을 되돌릴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최근 보고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항노화 임상시험인 TAME을 허가받아 2019년 65세 이상 노인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세계 최초의 항노화 임상시험도 진행되고 있다. 이렇듯 노화가 질병으로 인식되어, 노화에 대한 진단, 예방, 치료기술 개발을 통해 노화를 늦추거나 치료할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사이언스, 네이처 등의 세계적인 과학 잡지들도 항노화 기술을 미래 유망 혁신기술로 선정하였다. 황금알을 낳을 수 있는 미래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되고 있다.

현재 항노화 기술 개발은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미국 국립노화연구소(NIA)의 예산은 최근 6년간 두 배 이상 증가하였으며, 민간 부문에서는 구글이 2013년 노화방지 전문회사를 설립하고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미국의 한 바이오기업은 나이가 들면서 축적되는 노화 세포를 제거할 수 있는 세놀리틱스(Senolytics)의 효능을 임상시험 중에 있고, 또 다른 기업에서는 젊은 사람의 혈액에서 발견되는 항노화 인자를 노인성 뇌 질환 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는 세포 리프로그래밍 기술을 이용한 항노화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가 노화를 막고 건강수명을 연장하는 연구에 매년 1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주목받고 있다. 올해 미국의 유력 매체들의 보도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는 2018년 설립한 헤볼루션 재단에 수년 내에 연간 10억달러를 노화 연구에 투자하기로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생활 수준이 높아지고 의료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생물학적 기대수명은 늘어가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노인성 질환의 유병률 증가로 인해 건강수명은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2022년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한 의료비 지출은 45조8000억원으로 전체 의료비의 43.2%를 차지하는 등 개인 삶의 질 저하와 국가경쟁력 감소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항노화 시장에서 경쟁력을 보유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원천기술개발 기반의 마련과 함께 노화의 공통적이고 표준적인 마커 발굴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 필자는 인구 고령화 관련 대응에 노인성 질환 관리 및 복지 정책의 비중을 조금 줄이고 항노화 기술 개발을 위한 체계적이고 전략적인 R&D 투자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노화 관련 R&D는 노인성 질환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원천기술 개발 확보를 위한 기반은 매우 취약하다.

다행히 2022년 국가과학기술연구회가 고령 인구의 생물학적 나이를 진단하고, 노화를 지연 및 치료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위해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을 중심으로 총 14개 산·학·연·병 연구 주체들이 참여하는 ‘노화치료 융합연구단’을 착수하여 노화 연구역량을 결집할 수 있는 기반은 만들어졌다. 하지만 글로벌 제약사를 가진 선진국과는 다르게, 국내 바이오산업 생태계는 매우 취약하다. 이런 상황에서 노화 연구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거점 연구기관을 만들 필요가 있다. 이를 중심으로 기초연구-산업화로 이어지는 산·학·연·병 파이프라인을 연결하면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한쪽으로만 흐르지만, 노화 시계는 양방향 전환이 가능해지고 있다. 국민의 건강수명 연장과 미래시장 선점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기대한다.

김장성 한국생명공학연구원장

nbgko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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