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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경비원 취직한 ‘뉴요커’ 직원
상실의 끝에서 새로운 삶을 찾은 시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모습. [123rf]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세계 3대 미술관 중의 하나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7만여 평의 공간에 300만 점의 예술 작품이 전시돼 있다. 연 관람객 수만 700만 명. 이 곳엔 큐레이터, 보존 연구가, 페인트공, 운반 전문가 등 2000여 명의 직원들이 상주한다. 스스로를 ‘보안 예술가’라고 부르는 600여 명의 경비원들도 있다. 이들은 큐레이터나 보존 전문가들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작품 곁을 지킨다.

패트릭 브링리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한때 미국 유명 잡지 ‘뉴요커’에서 일하던 브링리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돌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취직했다. 화려한 커리어를 쌓으며 치열하게 살던 뉴요커의 삶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행보였다.

이러한 배경엔 형의 죽음이 있었다. 그의 형은 지난 2005년 결혼하자 마자 암 선고를 받았다. 방사선 치료와 화학 요법을 병행했지만 암은 결국 전이됐고, 3년 뒤인 2008년 가족들의 곁을 떠났다.

브링리는 당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무기력감에 빠졌다. 깊은 상실감 속에서 그는 끝없는 어둠의 터널과 사투를 벌였다.

그때 그를 구원해준 것은 바로 미술관이었다. 그는 어머니와 함께 미술관을 갔다가 뜻하지 않게 내적 슬픔과 달콤함을 동시에 느끼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다.

미술관의 경험은 그의 인생이 전환점이 됐다. 미술관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며 슬픔에서 도망치자고 마음 먹었다. 그렇게 그는 2008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일하게 됐다.

하루 최소 8시간씩 원 없이 예술 작품들을 지켜보는 특권을 누리게 된 브링리는 거장들의 혼이 담긴 회화부터 고대 이집트 건축물까지 인류의 위대한 걸작들과 오롯이 교감했다. 그러면서 ‘입자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는 순간’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미술관 경비원의 삶이 예술 걸작과의 교감만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각양각색의 배경과 사연을 가진 경비원 동료들과 소통하면서 그는 조금씩 마음 속에 있는 커다란 구멍을 채우기 시작했다.

경비원 동료들은 엘리트 코스만 밟은 ‘뉴요커’ 동료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암살 위협을 겪고 미국으로 망명한 이민자부터 보험 회사에서 20년 간 근무하다 잊고 있었던 꿈을 이루기 위해 경비원이 된 동료까지 가지각색이었다. 이들은 각자의 사연으로 서로의 마음을 어루어 만져주며 삶에 에너지를 더해줬다.

[웅진 지식하우스 제공]

브링리는 신간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을 통해 그가 10년간 메트로폴리탄 경비원으로서 살았던 시간들을 차분하게 들려준다. 그는 예술 작품과 주변 동료들과 소통하면서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기 보단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삶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방향키는 스스로가 쥐고 있음을 자각한다. 그렇게 그는 미술관에게 작별을 고하고 작가로서 새 삶을 시작한다.

“때때로 삶은 단순함과 정적만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도 있다. 빛을 발하는 예술품들 사이에서 방심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살피는 경비원의 삶처럼 말이다. 그러나 삶은 군말 없이 살아가면서 고군분투하고, 성장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경비원입니다/패트릭 브링리 지음·김희정·조현주 옮김/웅진 지식하우스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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