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 거론할 위치 아냐… 태영호가 전화해서 사과 하더라” 설명
태영호, 최고위원 된 뒤 ‘尹 대통령, 토익 960점’ 엄호 과잉 칭찬 多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홍석희·신현주 기자] ‘태영호 녹취록’ 보도가 국민의힘 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검사 50명’ 공천설로 가뜩이나 내부 분위기가 뒤숭숭하던 차에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국민의힘 최고위원을 만나 ‘대통령실을 엄호하면 공천을 주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던 것으로 간접 확인되면서다. 태영호 최고위원의 최근 유난스러운 ‘대통령 찬양’ 발언도 도마에 올랐다. 태 최고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을 지칭 ‘토익 960점’이라 발언 했고, 독도가 일본땅이라 규정한 일본의 ‘외교청서’에 대해서도 긍정적 메시지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2일 오전 ‘국민의힘 태영호 최고위원에게 공천 문제를 거론하며 한일 관계에 대해 옹호 발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그런 얘기를 전혀 나눈 적이 없다”고 했다. 이 수석은 이어 “공천 문제는 당에서 하는 것이지 여기(대통령실)서 하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관련 보도가 방송을 탄지 불과 12시간여만에 이뤄진 비교적 신속한 대응이었다.
이 수석은 이어 “제가 관여하지 말아야 할 일은 안 한다. 저한테 의견을 물어서 답을 할 수는 있겠지만, 누구에게 공천을 주고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고 말했다. 태 최고위원과의 대화 내용에 대해선 “4·3을 얘기할 때 먼저 선의의 피해자에 대한 멘트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하니까 태 최고위원이 ‘자기가 얘기를 했는데 언론이 안 받아줘서 보도가 안 됐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를 종합하면 이 수석과 태 최고위원이 만난 것은 지난 3월 9일이다. 직전 날인 3월 8일에는 태 최고위원이 국민의힘 최고위원으로 당선됐다. 당시 정국 상황을 되새겨보면 당시 대통령실은 일본과의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두고 야당의 거센 비판에 직면해 있던 상황이었다. 태 최고위원의 3월 9일 ‘의원실 회의’에서도 관련 내용은 언급된다. 앞뒤 정황을 종합하면 태 최고위원은 이 수석을 만나고 돌아온 뒤 의원실 내부 회의를 소집한 것으로 해석된다.
MBC 1일 뉴스테스크 보도 화면 캡처 [MBC] |
태 최고위원은 의원실 회의에서 “(이진복) 정무수석이 나한테 ‘오늘 발언을 왜 그렇게 하냐. 민주당이 한일관계 가지고 대통령 공격하는 것을 최고위원회 쪽에서 한 마디 말하는 사람이 없냐. 그런 식으로 최고위원 하면 안 돼’라고 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한일관계 문제 때문에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로부터 ‘친일 정권’이라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태 최고위원은 또 녹취 발언에서 “(이진복 정부수석이) 당신(태영호)이 공천 문제 때문에 신경 쓴다고 하는데 당신이 최고위원 기간에 마이크를 잘 활용해서 매번 대통령한테 보고할 때 ‘오늘 이렇게 (발언) 했습니다’라고 정상적으로 (보고가) 들어가면, 공천 문제 그거 신경 쓸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 말했다.
일단 태 최고위원은 관련 발언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태 최고위원은 논란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진복 정무수석은 한일관계 문제나 공천 문제를 언급한 사실이 전혀 없다”며 “공천을 걱정하는 보좌진을 안심시키고 독려하는 차원에서 나온 과장이 섞인 내용”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덧붙여 이 수석 역시 공천은 자신이 정할 위치에 있지 않다면서 의혹 사실을 부인했다. 태 최고위원은 논란 직후인 2일 국회 의원회관 출근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 |
대통령실이 논란이 불거진지 불과 12시간여만에 수석이 직접 기자회견을 열고 관련 해명에 나선 것은 녹취록 파문의 여파가 집권당 내를 흔들 수 있는 휘방성이 큰 이슈기 때문이다. 특히 의석수에서 야당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현재의 여당은 자칫 이번 일로 인해 당내 ‘공천 분란’으로 번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일단 최근 국민의힘 내에선 공천 분위기가 험악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공천 논란의 진원은 역시 검사공천설이다. 여의도 안팎에선 전직과 현직 검사들 수십명이 공천을 기대하면서 물밑 작업을 진행중이라는 관측이 몇달 째 돌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지난 4월 10일 검사 공천설이 정치권 안팎에서 확산되자 “특정 직업 출신이 수십명씩 대거 공천 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 대표인 제가 용인하지도 않겠다”고도 강조했다. 김 대표는 또 “검사 공천은 괴담이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고도 강조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안팎에선 위기감이 여전히 적지 않다. 김 대표가 전당대회 과정에서 대통령실로부터 어떤 직간접적인 도움을 받았는지를 분명히 아는 상황이기에 이같은 위기감은 배가 된다. 김 대표가 대통령실의 ‘공천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느냐 여부도 의원들 사이에선 물음표로 남아있다. 강대식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지난 4월 27일 언론 인터뷰에서 “검사 낙하산이 가급적 우리 대구에는 안왔으면 좋겠다”고 발언했다.
태 최고위원과 이 수석 사이에 어떤 대화가 있었는지는 정확히 파악 되지는 않고 있다. 드러난 녹취록 역시 태 최고위원이 이 수석의 발언을 ‘전언’ 형태로 전하는 것이 전부여서 이 수석이 실제로 ‘공천’이라는 단어를 꺼냈는지, 일본관계에 대해서 대통령실 엄호를 요청 했는지 역시도 아직은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태 최고위원이 최근 윤 대통령에 대해 과하다 싶을 정도의 ‘엄호 발언’을 꺼내놓았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수석이 모종의 ‘대통령실 엄호’ 요청을 했을 개연성이 있다는 분석 역시 태 최고위원의 수위 높은 최근 발언들이 배경이다. 태 최고위원은 전날 윤 대통령의 방미를 언급하면서는 “당연히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이 하이라이트였다. (윤 대통령이) 토플(토익)으로 한 960점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기술적인 측면을 완전히 소화하시더라”고 말했다.
태 최고위원은 지난 4월 13일에는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표기한 일본의 외교청서에 대해서도 “일본 외교청서 공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에 대한 일본의 화답징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수석이 요청한 ‘한일관계’에 대해서는 지난 3월 13일 “일제 강제징용 해법과 한일 관계 문제와 관련해 민주당이 국익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정치공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방어에 나섰다.
또 태 최고위원은 윤 대통령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구상권 포기를 결정하자 지난 3월 16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구상권 포기 결정은 대국적, 대승적 결단이다. 빈손 외교, 굴욕 외교라는 단어 자체가 나오는 것이 비정상적”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태 최고위원은 ▷제주 4·3은 북한 김일성의 지시 ▷백범 김구 선생은 김일성 전략에 당했다는 등의 발언으로 여론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태 최고위원은 4·3 발언 등으로 인해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에 회부 돼 징계 가능성이 열려있다. 오는 8일 열리는 윤리위 회의에서 태 최고위원의 징계 여부의 방향성이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내에선 태 최고위원이 당 또는 대통령실을 음해한 것이고 따라서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27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한미정상회담 관련 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