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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당아래 지옥’…아마겟돈 ‘성남시청’
예결위 6대6 여야동수
의장·부의장은 국힘 다 가져가고, 예결위원장은 민주당 줘…준예산 사태 예측 가능
수십차례 파란박스(압수수색 박스) 보고 사는 성남시 공무원

성남시청.

[헤럴드경제(성남)=박정규 기자]국민에게 전국에서 가장 시끄러운 도시 한곳을 고르라고 하면 망설힘 없이 성남시를 꼽는다. 이재명 전 시장은 박근혜 정부와 맞서 치열한 싸움을 했고, 은수미 성남시장은 검찰이나 경찰서에서 재임기간 내내 조사를 받는 인물로 각인됐다. 이재명 당대표는 검찰소환을 앞두고 있고, 은수미 시장은 감옥에 갇혔다. 모두 성남이다. 각종 사법리스크로 이재명, 은수미 전 시장 일로 신상진 현 시장 초기에도 성남시는 수십차례에 걸친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공직자들들은 ‘오늘도 무사히’가 좌우명이 됐다. 공직생활은 피곤하고 두렵기만 하다. 공무원도 직장인인데 좀처럼 신나지 않는다. 며칠전 신상진 시장은 806명의 대규모 인사를 단행했다. 이 중 인사이동된지 5개월 밖에 안된 공무원도 포함돼있다. 공보실에도 2명이나 있다. 한 공무원은 “정리정돈이 안된 아마겟돈 시대의 성남을 보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신상진 성남시장 시대가 열렸다. 그는 이재명을 적으로 분류하고 초기에 맹공을 펼쳤다. 4선 국회의원출신인 그는 무게감 있는 정치인이라는 기대와 함께 지방 행정을 모르는 초짜 행정인이라는 수식어가 동시에 붙었다. 김동연 경기지사가 추진하는 정책에도 빠르게 협조하지않아 경기도에서 낙인이 찍혔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2022년 11월 김동연 경기지사는 ‘1기 신도시 시민협치위원회 위촉식을 가졌다. 시민협치위는 모두 100명(1곳당 20명)을 모집하기로 계획됐으나 이중 분당이 속한 신상진 성남시장만 추천 의사를 밝히지 않아 80명으로 시작해야했다. 경기도는 지속적인 협의를 통해 추후 위원을 선정‧위촉할 계획이라고 했지만, 신상진 성남시장의 마이웨이을 경계하는 분위기도 동시에 일어났다. 남경필 전 경기지사 시절에는 이재명 전 성남시장이 회의에 불참하는 등 마이웨이를 걸었다. 결국 그들은 경기지사 선거전에서 맞붙어 이재명 시장이 경기지사가 됐다.

지자체장이 가장 무서워하거나 겁나는 일은 준예산 사태다. 경기도에서 성남시와 고양시가 준예산사태에 돌입했다. 준예산 사태가 벌어지면 지자체가 멈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자치법 제146조(예산이 성립하지 아니할 때의 예산 집행)는 지방의회에서 새로운 회계연도가 시작될 때까지 예산안이 의결되지 못하면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지방의회에서 예산안이 의결될 때까지 다음 각 호의 목적을 위한 경비를 전년도 예산에 준하여 집행할 수 있다. ▷법령이나 조례에 따라 설치된 기관이나 시설의 유지·운영 ▷법령상 또는 조례상 지출의무의 이행 ▷이미 예산으로 승인된 사업의 계속이다. 한마디로 공약사업은 커녕 새로운 일은 못한다.

과거 제1공화국 시절에는 헌법에 가예산이라는 것이 있었다. 현재의 준예산과 다른 점은, 가예산은 연말까지 예산이 의결되지 않을 것으로 보일 때 정부가 1월에 대해 사용할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국회에서 의결하는 방식이다. 2월 이후의 예산에 대해서는 국회에 본예산안을 제출하고 의결받아야 집행할 수 있다. 가예산은 헌정 수립(1948년) 이후 제1공화국이 붕괴되는 1960년까지 6차례 시행된 적이 있다. 이 제도는 가예산을 집행할 수 있는 1월이 끝나고도 본예산안이 의결되지 못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헌법으로 명문화되어있지 않다는 결점이 존재했다. 1960년에 헌법을 개정하면서 가예산제도는 폐지되고 준예산이 도입됐다. 다만 이 시기에 제2공화국은 대통령제가 아닌 의원내각제를 도입해 다른 의원내각제 국가처럼 연말까지 예산안이 의결되지 않아 준예산이 집행되는 경우 이를 내각불신임결의로 간주하며 내각이 총사퇴하거나 민의원 해산을 단행해야만 했다. 그러나 제2공화국 체제가 5.16 군사정변으로 무너지고 1963년에 개정된 헌법에 따라 다시 대통령제로 회귀한 제3공화국 체제에서 내각불신임 규정이 삭제되어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됐다. 준예산이 헌법에 명시된 이후로는 단 한번도 국가단위에서 준예산이 집행된 적은 없다. 2013년 예산안과 2014년 예산안이 해를 넘겨 1월 1일 새벽에 통과되었으나 1월 1일은 휴일이라 은행이 문을 닫으니 당장 지불해야 할 돈은 없었고, 그날 국무회의에서 아침에 예산안을 심의해 차질없이 예산이 집행됐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는 준예산이 집행된 사례가 역사상 네 차례 있다. 이중 성남이 절반을 차지한다. 2013년 성남시에서는 성남시의회 내 정당 간의 갈등으로 7일간 준예산이 집행된 적이 있다. 2016년 경기도(남경필 전 지사)에서도 누리과정 예산문제로 경기도의회 공성전 끝에 예산안 통과가 불발, 28일간 준예산이 집행됐다. 7년여동안 조용하다 경기도 지자체 2곳에서 준예산 사태가 벌어졌다. 올해 고양시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측에서 이태원 압사 사고 애도기간 도중 이동환 시장의 해외출장을 문제삼아 등원을 거부하면서 고양시의회가 멈추는 바람에 준예산이 집행되는 것이 확정됐다. 또 성남시에서는 청년기본소득을 폐지하려는 신상진 시장 및 국민의힘과 청년기본소득을 유지하려는 더불어민주당의 갈등으로 성남시의회가 멈추는 바람에 준예산이 집행되는 것이 확정됐다.

사실 여야동수(더민주 78: 국힘 78)인 경기도의회가 출범부터 잡음이 발생해 본예산 통과를 모두 우려했다. 하지만 김동연 지사와 여야가 힘을 합쳤다. 의외였다. 본예산이 통과됐다. 경기도지사 공관인 도담소는 매일 손님을 맞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동연 지사는 경기도의원과 국회의원을 초청해 ‘로비’ 아닌 ‘로비’를 펼쳤다. 초짜 정치인이지만 기성 정치인보다 일을 깔끔하게 더 잘 처리했다. 이 일로 그는 초짜 정치인이란 낙인을 뗐다. 준예산 사태를 예상하고 선제적으로 움직였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누구도 준예산을 원하는 도민은 없고 김동연 지사 리더쉽에 박수를 쳤다. 여야 국회의원·경기도의원들도 협력하도록 배려한 ‘묘안’이 성공을 거뒀다. 주연은 김동연 지사였다.

신상진 성남시장.

신상진 성남시장은 3일 오전 10시 준예산에 따른 선결처분 긴급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기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이미 준예산 공방으로 성남시의회 더민주와 국힘이 보도자료를 배포하면서 ‘네탓’ 공방을 펼쳤기 때문에 새로운 내용은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신상진 시장은 “오직 시민 여러분의 복리증진을 위한 2023년도 예산안 3조 4406억 1700만원을 편성해 지난달 성남시의회에 제출한 바 있으나 성남시의회에서 청년기본소득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파행을 거듭해 준예산 상황을 맞게됐다”고 했다. 새로운 내용도 아니다. 그는 “30억원에 불과한 청년기본소득 예산을 볼모로 3조 4406억 1700만원 규모의 2023년 예산안 전체를 발목 잡는 것은 정치적 이익만을 관철시키고자 92만 성남시민의 민생을 포기하는 명백한 직무유기 행위”라고 직격탄을 쐈다. 성남시의회 민주당은 '청년기본소득 지원 조례'가 존재하는 만큼 추경에라도 관련 예산 30억 원을 편성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시의회 국민의힘과 성남시는 내년 예산안에 청년기본소득 항목이 없고 '청년취업 올패스'를 청년지원사업으로 도입하는 만큼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신 시장은 준예산이 발생하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보도자료를 통해 2일 알렸다. “성남시는 부득이하게 2023년도 예산안 의결 시까지 전년도 예산에 준하여 법령이나 조례에 의하여 설치된 기관 또는 시설의 유지·운영과 법령 또는 조례상 지출의무의 이행, 이미 예산으로 승인된 사업의 계속 등에 한해서만 집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법령에 기록된 수준에서 벗어나지않는다. 준예산사태가 벌어지면 신규 투자사업과 주요 현안사업이 모두 중단된다. 당장 연초부터 지급되어야 할 노인일자리 사업, 공공근로사업, 보훈명예수당, 민간단체보조금, 학교무상급식 등 각종교육경비, 공동주택보조금 등을 제때 집행하지 못하게 된다고 밝혔다. 성남시의회에는 총 34명의 시의원이 있다. 이 중 신상진 시장(국힘)이 속한 국힘 시의원은 18명, 더민주가 16명이다. 국힘이 2명 더 많다. 겉으로보면 신상진 시장이 국힘이어서 쉽게 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성남시의회는 초창기부터 쉽지않았다. 성남시의장·부의장 자리 모두를 국힘에서 가져갔다. 하지만 미안한지(?) 정작 예결위원장자리는 민주를 줬다. 민주에서 예결위원장을 차지하면서 준예산 사태 서막은 시작됐다. 예결위는 경기도의회 전체처럼 6대6 여야동수다. 예산 만큼은 예결위를 통과해야만 한다. 건너 뛸 수가 없다. 정치는 협치이자 협상이고 생물이다. 이 부분을 간과했기 때문에 준예산 사태는 물밑에서 떠올랐다.

신상진 성남시장은 김동연 경기지사에게 배워야할 점이 있다. 여야동수로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싸웠던 경기도의회는 가장 중요한 본회의를 무사히 통과시켰다. 영화처럼, 기적같은 순간엔 김동연의 연기력(?)이 뛰어났다. 그는 10월부터 이런 문제가 일어날 수 있음을 간파했다. 신상진 성남시장은 이런 사태를 예견했을까. 예결위원장이 민주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미리 준비를 해야한다는 지적이 높다. 누구나 예측가능한 일이다. 성남시는 올해 불가피하게 준예산으로로 시작한다. 신상진 성남시는 “빨리 성남시의회를 설득해 이번 준예산 사태가 조기에 해소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고 했다.

성남시 공무원들은 기진맥진( 氣盡脈盡)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수십차례 압수수색을 받고 인사발령된지 5개월만에 딴 부서로 배치되는 흔치않는 일도 겪는다. 성남시의료원 갈등, 서현동 101번지 갈등 등으로 수많은 시민단체와 시민들이 갈등을 겪고있다. 갈등의 도시다. 이번 인사등으로 ‘아마겟돈 (Harmagedon)시청’ 이라고 부르는 공무원도 적지않다. 이미 이재명-은수미 전 시장을 거치면서 수많은 고초를 겪었던 성남시청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다니는 직장을 ‘지옥시청’이란 말로 표현한다. 준예산 사태까지 겹치면 공무원들도 그만큼 힘들다. 몇 수를 내다보는 지자체장이 필요한 곳이 성남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5급 공무원이 퇴직을 몇년 앞두고 은수미 시장 시절 사표를 냈다. 그는 지금 속초에 산다. “이처럼 행복한 순간은 없다”고 했다. 지금 성남시는 신바람나는 조직문화가 실종됐다.

fob14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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