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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덤벼라, 쓰레기”…당당한 ‘지지배’가 지구를 사랑하는 법 [지구, 뭐래?]
지난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헤럴드 사옥에서 만난 환경운동 동아리 ‘지지배’의 홍다경(26) 대표. 홍 대표는 지난 2019년 경북 의성 쓰레기산을 직접 목격한 뒤,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전국에 불법으로 방치·폐기된 쓰레기 문제를 알리고 있다. [사진=안경찬PD·이건욱PD, 시너지영상팀]
[영상=안경찬PD·이건욱PD, 시너지영상팀]

[헤럴드경제=최준선 기자] 불법으로 방치된 쓰레기를 찾아 전국을 누비는 청년들이 있다. 산처럼 쌓여있는 쓰레기를 배경으로 춤을 추고, 이를 영상에 담아 세상에 알린다. 우리 주변의 쓰레기산 위치를 알 수 있도록 지도를 만들고, 한발 더 나아가 가상공간 속에도 ‘쓰레기 세상’을 만들고 나섰다.

이들의 정체는 환경운동단체인 지구시민연합의 청년 동아리 ‘지지배(지구를 지키는 배움터)’ 회원들이다. 이들은 모두 10~20대 학생들이다. 전업 시민단체 활동가도 아니고, 정부 기관 등의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다. 단지, 쓰레기 문제를 알리는 것이 앞으로 살아갈 이 나라와 지구에 필요하다고 생각해 자발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최근 헤럴드경제는 지지배를 이끌고 있는 홍다경 대표를 만났다. 홍 대표는 고등학생 시절 넘쳐나는 교내 잔반을 마주한 뒤부터 꾸준히 환경 문제를 고민해왔다. 그는 인터뷰 내내 유쾌한 에너지를 발산했다. 하지만 문제의 해결법에 대해 얘기할 때에는, 그 고민의 무게가 여느 전문가 못지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쓰레기…“뭐라도 해야”

홍 대표가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반 학교를 자퇴하고 대안학교로 옮기려던 18살, 마지막으로 학교에 공헌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던 홍 대표 눈에 들어왔던 것은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였다.

“스마일 모양 감자튀김 수천개가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지더라고요. 굳이 버려야 했을까, 감자튀김이 먹고픈 다른 친구들을 찾아 나눠줄 방법은 없을까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교육감에게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메일 30여통을 보냈고요, 결국 학교엔 ‘잔반 쿠폰제’가 생겨났습니다. 잔반을 남기지 않은 학생에겐 해외 기아 친구들을 도울 수 있는 기부 쿠폰을 주는 거예요.”

한국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대안학교로 옮긴 뒤 뉴질랜드에 봉사활동을 갔을 때, 홍 대표는 음식물 쓰레기가 일반 쓰레기와 같이 버려지는 것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학교의 리더십 프로그램으로 미국에 갔을 때에도, 온갖 쓰레기가 분리배출 없이 한 데 버려지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이렇게 쓰레기가 전지구적으로 버려지고 있는데.. 말이 통하는 한국에서라도 뭔가 해봐야 하지 않겠나 생각이 들어서 환경 운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초대형 쓰레기산 보고 난 뒤…“어머니 몸엔 두드러기”

홍 대표가 여러 쓰레기 문제 중에서도 쓰레기산에 주목한 것은, 지난 2019년 3월 CNN 방송에 경북 의성 쓰레기산이 등장한 이후다. 집에서 1시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고, 홍 대표는 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당시 의성 쓰레기산에는 20만8000t의 쓰레기가 방치돼 있었다. 20t 대형트럭으로 매일 쓰레기를 옮겨도 28년이 넘게 걸리는 양이다.

“당시는 아직 쓰레기 처리 작업이 시작되기 전이라, 저는 의성 쓰레기산의 원본을 그대로 목격했어요. 아파트 8층 높이의 쓰레기 더미에서 유해물질이 나오고 있었고요, 저희 어머니는 그날 밤에 두드러기가 나셨어요. 심지어 공장 내부도 아니었고, 완전히 자연에 개방돼 있는 곳이었는데도요.”

의성 쓰레기산과 같은 불법 방치 쓰레기 현장이 전국에 200곳이 넘는다는 것을 알게 된 홍 대표는 본격적으로 행동에 나섰다.

그 중 2020년 초 쓰레기산을 배경으로 만들었던 뮤직비디오는 전업 환경 운동가들 사이에서도 회자된다. 카카오의 온라인 펀딩 플랫폼인 ‘같이가치’를 통해 1000만원을 모아 스태프들을 모으고, 장비와 의상을 준비했다. 특히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무용가, 배우, 가수와 20여명의 스탭을 모두 청년으로 꾸렸다. 이들 중에는 초등학생도 있었다.

“이 시대를 바꿔나갈 주역이 청소년, 청년들이잖아요. 이들에게 쓰레기산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촬영을 마친 뒤에 환경에 관심 없던 몇몇 스태프들이 분리배출을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며 연락을 해왔는데요, 그렇게 작은 변화가 시작된 것에 감동을 많이 받았죠.”

지난해 9월부터는 ‘댄스 챌린지’도 시작했다. ‘쓰레기를 함께 치우자’는 뜻의 수화를 유쾌한 안무로 개발해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곡 ‘퍼미션 투 댄스’에 맞춰 춘다. 이 곡은 수화를 활용한 안무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선한 영향력’을 입증했던 곡이다.

환경운동 동아리 ‘지지배’의 홍다경(26) 대표(가운데)와 동아리 팀원인 성규빈 씨(왼쪽), 김승도 군. 전국에 불법으로 방치·폐기된 쓰레기 문제를 알리기 위해, 이들은 쓰레기 방치 현장에서 ‘댄스 챌린지’를 이어가고 있다. [사진=안경찬PD·이건욱PD, 시너지영상팀]

물론 쓰레기산을 배경으로 캠페인을 벌이는 과정은 유쾌하기만 할 수 없었다. 매번 더 큰 규모로 등장하는 쓰레기산을 보며 무력감을 느꼈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시체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현장 분위기는 매번 홍 대표를 위축시켰다. 몰래 들어갔던 쓰레기 투기 창고에 갇히고, 사유지 무단 침입으로 법적 분쟁을 겪었으며, 최근에는 쓰레기산 주변을 배회하던 들개에게 물릴 뻔하기도 했다.

그래도 홍 대표는 ‘우리가 춤이라도 춰야 더 많은 사람들이 쓰레기산을 본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특히 쓰레기로 가득했던 현장이 지지배의 동영상이 게재된 이후 깨끗이 정리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의 뿌듯함을 잊지 못한다.

쓰레기산 사냥, ‘선수’들과 힘을 합쳤다

지지배의 ‘쓰레기산 사냥’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처음에는 뉴스 보도에 등장한 곳을 찾아가거나, 지도앱 항공뷰를 뒤지는 식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선수’들과 협력하기 시작했다. 환경운동가 서봉태 씨가 대표적이다. 쓰레기 불법 투기 현장을 코앞에서 목격하고 분노했던 서 씨는 현재 한국환경공단이 임명한 불법 폐기물 순찰 감시단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너희들이 가서 춤을 추고, 더 많은 세상에 알려달라”며 아직 덜 알려진 쓰레기산 현장을 지지배와 공유하고 있다.

쓰레기산을 치워달라는 시민의 목소리를 더 많이 모으기 위해, 지지배는 전국 쓰레기산 위치를 표기한 디지털 지도도 만들고 있다. 일명 ‘K-트래쉬맵’이다. 스타트업에서 앱을 개발했던 또 다른 청년 활동가를 찾아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6개월의 개발 기간을 거쳐 만든 지도를 무료로 배포했다. 현재는 가상공간에서도 쓰레기산을 가볼 수 있도록, K-트래시맵을 메타버스 공간에 구현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전국의 주요 쓰레기 방치 현장을 지도 위에 표기한 ‘K-트래쉬맵’
전국의 주요 쓰레기 방치 현장을 가상공간에서도 가볼 수 있도록 개발 중인 ‘K-트래쉬맵 시즌2’.
“우리는 계속 알릴 테니, 해결책은 찾아주세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변화가 있으려면 결국 ‘힘 있는 사람들’이 나서줘야 한다고 홍 대표는 목소리를 높였다. 자원순환 고리에서 탈락돼 방치되는 쓰레기가 줄어들 수 있도록, 정부는 재활용 목표치를 더 세세하고 명확하게 설정하고, 기업은 제품 생산 단계에서부터 이를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실 우리는 쓰레기 봉투를 살 때 이미 쓰레기 처리 비용을 내는 거거든요. 근데 쓰레기산을 처리할 때에도 세금이 들어가니, 결국 우리는 돈을 두 배로 쓰고 있는 셈이에요. 그 돈을 친환경 스타트업에 투자하거나,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나라에서 재활용에 대한 목표 기준을 보다 잘 세운다면 문제가 조금은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진=안경찬PD·이건욱PD, 시너지영상팀]

쓰레기산이 더 생겨나지 않을 때까지 홍 대표는 계속 챌린지를 이어나갈 생각이다. 사유지 무단 침입으로 곤혹스런 일을 겪기도 했지만, 오히려 홍 대표는 “우리도 불법 쓰레기 투기범들을 당당히 잡으러 다닐 수 있도록 한국환경공단같은 곳에서 우리를 청년 감시단으로 임명해주면 좋겠다”며 ‘전투 의지’를 드러냈다.

쓰레기산 문제 해결을 향한 홍 대표의 의지는 분노보다는 희망에 가까웠다.

“답답한 것은 맞지만, 그래도 기업과 정부가 비난받기보다는 소비자들과 협업해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젊은 인플루언서로서, 또 환경운동가로서 그 중간 역할을 잘 해내고 싶어요.”

hum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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