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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이에나는 죄가 없다 [정치쫌!]
이준석 “권력욕 부추기는 하이에나”
조국·홍준표·조승래, 정치권 ‘최애’ 짐승
이슬람에선 악령쫓는 선한 이미지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말로 굴러가는 정치권에 유달리 자주 등장하는 한 종류의 동물이 있다. 바로 하이에나다. 하이에나는 떼로 뭉쳐 다니며 상대를 비난하고 물어뜯고, 대체로는 탐욕의 화신으로, 때로는 악마에 가까운 짐승으로도 그려진다. 그러나 하이에나는 사람과 꽤 친숙한 동물이다. 집에서 사육이 가능한 몇 안되는 맹수 중 하나가 하이에나다. 지능도 매우 높다. 썩은고기를 먹는 것은 사바나에서의 생존 필살기다. 하이에나가 ‘나쁜 짐승’으로 몰리게 된 이유 국내에선 조용필이, 해외에선 라이온킹 탓이 크다.

'나쁜 사람=하이에나' 용법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10일 오후 경북 구미시(갑) 당원협의회를 방문해 당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

가장 최근에 다시 하이에나를 국회로 호출한 인사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다. 비유를 즐겨 사용하는 이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SNS에 “우리 후보들 곁에 권력욕을 부추기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밝고 긍정적인 멧돼지와 미어캣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하쿠나 마타타’ 노래라도 같이 부르면서 좋은 사람들의 조력을 받으면 사자왕 된다. 초원의 평화는 덤”이라고 썼다. 국민의힘 내 친윤석열(친윤)계 의원들을 하이에나에 빗댄 것이다.

하이에나가 국회로 다시 불려나온 것은 당내 행사에 윤석열 후보가 잇따라 불참한 것이 원인이 됐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이 “멸치, 고등어, 돌고래는 생장 조건이 다르다. 우리 당 후보 가운데 돌고래로 몸집을 키운 분들이 있는데 체급이 다른 후보들을 한데 모아 식상한 그림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며 윤 후보 엄호에 나서자, 이에 대한 반박 차원에서 이 대표의 하이에나 언급이 나온 것이다.

상대를 비난할 때 ‘하이에나’가 호출되는 사례는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 6월 미디어혁신법 논의 과정에서도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래로 TBS 광고가 많이 늘었다’고 주장하자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도를 넘은 정쟁이다. 심지어 ‘문트코인’이란 말도 썼는데, 말 그대로 정쟁거리를 찾기 위해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라고 비판했다. 여야가 TBS 감사 여부를 두고 여야 의원들의 감정이 격해지면서 나온 발언 중 하나가 바로 하이에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13일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자녀 입시비리' 관련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

조국 전 장관 역시 ‘하이에나’를 상대 비판 용으로 썼다. 조 전 장관은 지난 3월 검찰을 비판하며 “죽은 권력만을 물어뜯던 하이에나가 스스로 싸움을 포기한 사자에게 몰려들어 ‘우리도 살아있는 권력을 공격할 수 있다’고 으스대는 꼴”이라며 “비루한 외모의 하이에나가 초원의 무법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강약약강’의 비굴한 처세에 있다”고 썼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홍준표 의원이 12일 서울 여의도 한 빌딩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

‘화술의 달인’ 홍준표 국민의힘 의원 역시 지난 3월 “문 대통령은 검찰 조직이 하이에나와 같은 속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니들(검찰)은 수술 당하고 있는 것이다. 자업자득”이라며 “진정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거라. 그것만이 니들이 살길”이라 쓰기도 했다.

각 정치인들의 발언에 하이에나가 사용된 맥락은 제각각이지만 용법은 대동소이 하다. 상대가 좋지 못한 행동이나 습속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때 그 상대를 하이에나에 빗댄다. 상대에 대한 칭찬과 공경의 의미로 사용되는 동물은 최소한 아니다. 안타깝지만 앞으로도 ‘하이에나’를 상대에 대한 비판용으로 사용하는 정치인들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조용필·라이온 킹' 때문
[사진=라이온킹 장면 중 일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조용필이 불렀던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 중 일부다. 하이에나가 썩은 고기만을 먹는다는 인식의 상당 부분은 바로 이 가사에서 영향을 받은 바 큰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하이에나는 먹이의 상당 부분을 직접 사냥해서 먹는다. 다른 맹수가 잡은 먹이를 빼앗아 먹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먹이 서열이 높은 맹수의 당연한 권한이다. 치타나 표범이 잡은 먹이는 하이에나가 뺏고, 하이에나가 잡은 먹이는 사자가 뺏는 식이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썩은 고기’를 먹는 것은 비난 받을 행동이 아니라 생존에 유리한 ‘필살기’에 해당한다. 사자의 경우 썩어 냄새가 나는 고기에 대해선 먹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하이에나는 이를 먹는다. 원인은 하이에나의 위산이 매우 강력해 오염된 음식이 몸속에 들어오더라도 이를 병에 걸리지 않고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이에나의 위는 매우 강한 산성을 띄는 위산도 견딜 수 있을만큼 튼튼하다.

하이에나가 정치권에서 오늘도 또다시 소환돼 괴롭힘 당하는 원인은 디즈니가 만든 애니메이션 ‘라이온킹’ 탓이 크다. 라이온킹에 등장하는 하이에나는 어린 주인공 심바를 위험에 빠뜨리고, 현재의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악역이다. 부리부리한 눈과 흉물스러운 외모, 아무렇게나 난 듯한 점박이 무늬는 악당의 전형이다.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을 주 테마로 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답게 라이온킹 말미엔 악행을 일삼던 하이에나 무리들은 죽음을 맞는다.

하이에나가 미움을 받는 또다른 이유를 찾자면 외모 탓도 있다. 하이에나는 앞다리가 길고 뒷다리가 짧다. 점박이 문양 역시 흉하기 쉽다. ‘끼이끼이’ 소리를 내는 독특한 울음도 비웃는 ‘낄낄’ 소리로 들린다. 가짜 성기를 달고다니는 암컷 때문에 암컷·수컷 구분도 쉽지 않다. 그러나 모든 문명권에서 하이에나가 미움을 받는 존재는 아니다. 한국과는 달리 이슬람 문화권 내에서는 하이에나는 주로 악령을 퇴치해주는 선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문화권에 따라 평가가 크게 갈리는 셈이다.

하이에나는 죄가 없다
[사진=서울대공원]

하이에나는 사실 매우 독특한 동물이다. 사바나에 서식하는 맹수 대부분은 고양이과(사자·표범·치타)에 속하지만 하이에나는 자체로 하나의 과로 분류가 된다. 하이에나는 하이에나과(科)다. 수컷이 우두머리가 되는 사자나 단독 생활을 주로 하는 표범, 짝짓기 때 간혹 암수가 만나는 치타와는 다르다. 하이에나의 가장 큰 특징은 세습 모계사회라는 점이다. 새끼를 낳는 암컷이 무리의 우두머리가 된다.

더 놀라운 것은 우두머리 암컷이 낳은 하이에나의 새끼 가운데 암컷이 우두머리 지위를 이어 받는다는 점이다. 싸워서 얻어지는 우두머리 지위가 아니라 혈통으로 이미 차기 우두머리가 정해지는 것은 동물계 내에서 보기 드문 현상이다. 소위 지위의 세습이 이뤄지는 것이다.

하이에나는 지능 역시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진다. 사회적 행동과 관련 있는 전두엽 피질이 발달한 것이 높은 지능을 가진 이유다. 협동적인 문제 해결 능력은 침팬지를 앞선다는 연구도 있다. 먹이를 얻기 위해 두 마리가 함께 밧줄을 끌어야 하는 실험에서 훈련 없이도 과제를 풀었고, 다른 동료에게 가르쳐 주는 고등지능 실험도 하이에나는 통과했다. 어떤 먹잇감이냐에 따라 각기 다른 사냥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사냥 성공율 역시 사자보다 하이에나가 높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편 서울대공원이 운영하는 공식 블로그는 하이에나에 대해 소개하며 ‘나쁜 동물이 아니다’고 쓰고 있다. 워낙 하이에나에 대한 이미지가 ‘나쁜 동물’로 인식되다 보니 특정 동물에 대한 소개에 ‘나쁜 동물’이 아니라는 것이 하이에나에 대한 소개 첫문장이 됐을까.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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