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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팀장시각] 권력자에 대한 연민

기자생활을 하면서 김경수 전 도지사와 인연을 가진 분들을 여럿 만났는데, 한 번도 나쁜 평을 들어본 적이 없다. 세평이 모든 게 아니지만, 그래도 유명인 중에 이 정도 호평을 듣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아마도 나 같은 사람보다 훨씬 부지런히, 훌륭한 일도 많이 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판사는 염라대왕이 아니다. 평소 이 사람이 호인인가, 악인인가를 따지는 건 신의 영역이고, 사람이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판사에게 전지전능을 요구하는 게 아닌 이상, 재심사유가 없다면 판결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나쁜 사람도 억울한 누명을 쓸 수도 있고, 세상 선한 사람도 때론 나쁜 짓을 할 수 있다. 부모도 모르는 게 사람 마음이다. 법원은 인간 김경수의 인생을 부정한 게 아니라, 그가 한 행동을 평가한 것이다.

김 전 지사 상고심 변호인단을 보자.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능한 법률가들 14명이 변호를 맡았다. ‘대형로펌이 다수 변호인단을 맡았다’거나 ‘호화 변호인단을 꾸렸다’는 걸 부정적으로 보자는 게 아니다. 국가 권력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일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전 지사는 장삼이사가 아니다. 그 유명한 이상훈 전 대법관과 부장판사 출신의 이광범 변호사 형제가 변호를 맡았다. 법원에서도 가장 능력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변호사들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인맥이 없어서 이런 변호인단을 꾸릴 엄두도 못낸다.

여권에서는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진실이 돌아온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고민정 의원은 ‘밥이 넘어가지 않는다’고 했다. 동료의 수감 소식에 마음이 아플 수 있다. 하지만 그토록 강한 연민에 대중이 공감하긴 어려울 듯 하다. 일반인들은 전과자가 되면 당장 먹고사는 문제부터 고심해야 한다. 그걸로 인생을 망친다. 반면 박연차 회장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고 실형을 살았던 이광재 의원은 총선 직전 사면을 받고, 결국 국회의원이 됐다.

선거 대가로 공직을 주고받는 것은 국가 시스템을 해치는 매우 질이 나쁜 범죄다. 드루킹 일당은 일본 대사와 오사카 총영사직을 요구했다. 실제 김 전 지사는 청와대 조현옥 인사수석과 이 문제를 상의하고, 센다이 총영사직을 대신 제안했다. 아마도 이 문제로 드루킹 김동원과 김 전 지사 사이가 틀어지지 않았다면 이 범죄는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김 전 지사처럼 대법원 확정 판결을 받고도 힘있는 사람들이 나서서 억울함을 대신 호소해주지 못한다. 고 의원 외에도 정세균 전 국무총리,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처럼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들까지 일제히 법원을 공격한다. 대통령이 되겠다면, 3권 분립을 외면하는 발언을 쉽게 올려서는 안 된다.

이른바 ‘적폐청산’ 수사 과정에서 어느 검사는 위증 교사 혐의로 실형을 살았는데, 막상 위증을 한 당사자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억울한 일이다. ‘사법농단’을 수사 과정에선 가장 모호한 범죄인 직권남용 혐의가 남발돼 재판이 열렸고, 대부분 무죄 판결을 받았다. 김 전 지사 지지자들에게 ‘양승태 키즈’라는 모욕적인 말을 들었던 1심 재판장 성창호 부장판사 역시 그 중 한 명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억울하다는 말 한마디 못한다. 현직 공직자라는 신분 때문이다.

jyg9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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