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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원증 모양 녹음기 있나요?”…‘괴롭힘’에 ‘녹음’ 찾는 직장인들 [촉!]
괴롭힘당하는 직장인들, ‘녹음방법 문의’ 줄이어
‘직장 내 괴롭힘’ 금지 시행 후 관련신고 꾸준히 증가
티 나지 않는 녹음방법 등 직장인끼리 정보 공유
“피해자가 괴롭힘당한 것 입증해야…녹음 수요 지속”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이미지. [123rf]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 서울에 근무하는 30대 직장인 A씨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어떤 녹음기를 사는 것이 좋은지 추천을 부탁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상사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회사에 신고했더니 회사가 오히려 자신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하는 상황이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A씨는 “회사 관계자와 여럿이 대화할 때 증거를 수집해놔야 한다는 생각에 녹음기를 찾고 있다”며 “티 나지 않게 녹음하는 방법 좀 조언해달라”고 SNS 지인들에게 요청했다.

# 경기도의 한 중소기업 공장에서 경리업무를 하는 20대 B씨는 40대 물류담당 과장이 자신을 거치지 않고 거래명세서를 넘겼다는 이유로, 단둘이 있을 때 폭언을 일삼기 시작했다. 이에 놀란 B씨는 “언제 어떻게 폭언을 할지 몰라 항상 켜둘 수 있는 녹음기를 구한다”며 주변에 조언을 구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녹음’ 등 대처 방안을 강구하는 직장인들의 문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괴롭힘을 입증할 실질적인 증거 수집방법이 녹음·녹취 외에는 없다는 것이 피해를 당하는 직장인 사이에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다.

서울 용산구에서 녹음기판매업을 하는 김모 씨는 3일 오전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외양과 말투를 보면 젊은 직장인들의 수요가 점차 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과거보다 여성 고객들이 녹음기를 문의하는 빈도가 더 늘어난 경향이 있고, 사원증 등 특이한 모양의 녹음기를 찾는 이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에 거주하는 30대 여성 조모 씨는 “남성 상사들과 함께 일하는 소규모 기업의 여성일수록 폭언에 시달리거나 당황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굳이 직장 내 괴롭힘이 아니어도, 일종의 호신 수단처럼 녹음기를 갖고다닐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지인들끼리 한다”고 했다.

직장 내 괴롭힘(직장 내 폭언, 부당한 인사, 따돌림, 험담 등) 건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2019년 7월 16일) 이후 2년간 접수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는 총 1만934건에 달했으며, 올해 상반기에만 2981건으로 전년도 상반기 건수(2931건)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2019년 355건이었던 월평균 신고 건수는 2020년 485건, 2021년 6월 기준 497건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직장인들은 괴롭힘에 대응하기 위한 녹음 팁을 공유하고 있다. ‘볼펜형은 녹음기인 게 티가 난다’ ‘볼펜형 녹음기는 주머니에 넣어둘 경우 소리가 잘 녹음되지 않아 말썽을 일으킨다’ ‘스마트폰 녹음은 전화기 배터리가 적게 남으면 할 수 없으니 녹음기를 따로 사라’ ‘녹음할 때에는 본인의 목소리가 같이 들어가게 해서 불법 가능성을 피하라’ 등이다.

외부에 티가 나지 않는 녹음기로 ‘사원증 모양의 녹음기’ ‘목걸이나 시계 모양의 녹음기’를 추천하기도 했다. 스마트폰을 흔들면 바로 녹음되는 애플리케이션을 공유하고, 하루 내내 틀어도 될 만큼 큰 용량의 녹음기를 찾는 문의도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처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증거 수집 수단이 현재로선 녹음인 것은 맞다”며 “사람 수와 상관없이 피해 당사자가 들어간 대화를 녹음한 것이라면, 녹음 여부를 주변인에게 고지 안 해도 불법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나라는 피해자가 자신이 괴롭힘을 당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데, 이 점 때문에 녹음이 피해를 당한 직장인 사이에서도 중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프랑스 등 해외처럼 회사 측이 ‘괴롭히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방식을 도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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