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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행시대의 종말④] 다들 어려운데 은행권은 역대 최대이익…누구를 위한 금융인가
제도적 지원 가장 많이 받아
코로나19 극복 위한 정책에
자산가격 자극…자금 수요↑
대출 규제도 이자율만 높여
양극화 심화에 치명적 역할
쏠림·불평등 완화기여 숙제

[헤럴드경제=서경원 기자] 1899년 일본 식민자본에 맞서 당시 황실 자금으로 탄생된 대한천일은행의 설립청원서에는 ‘화폐융통(貨幣融通)은 상무흥왕(商務興旺)의 본(本)’을 창립이념으로 한다고 쓰여있다. 은행은 돈을 원활히 돌게 만들어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대한천일은행은 훗날 국채보상운동에 참여, 모금액을 관리하는 중추 역할을 맡는다.

120여년이 지난 현재 우리나라는 코로나19란 새로운 차원의 국가적 위기에 봉착해 있다. 바이러스가 할퀴고 간 경기 충격의 상흔이 여전히 깊은 상태이며, 특히 자영업자 등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대유행 장기화에 따른 고통이 한계에 다다른 모습이다.

▶다들 어렵다는데…은행은 역대 최대 이익=국내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NH)의 올 상반기 합산 순이익은 6조1800억원으로 작년 상반기(4조8600억원)보다 27% 증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들 은행이 속한 5대 금융 지주의 합산 순이익은 9조3700억원으로 10조원에 육박, 이 역시 역대급이다. 5대 지주의 순이자이익은 20조5000억원으로 사상 첫 20조원을 돌파했다. 작년 상반기(18조4300억원)보다 11% 가량 많은 수치다. 5대 은행의 상반기 순이자이익은 15조46000억원을 기록, 전년동기대비 약 9% 상승했다.

국내 은행들의 이같은 역대 최대 실적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결과적으로 은행들은 1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제로’ 수준의 기준금리의 혜택을 보고 있다. 이자가 거의 없는 저원가성(요구불·수시입출금) 예금을 주된 수신 기반으로 대출 행위를 벌여 이자 마진에 따른 큰 폭의 수익을 거뒀다. 대출 금리 수준은 과거보다 낮아졌지만, 조달 비용인 예금 이자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긴급 생활자금 용도와 빚투(빚내서 투자)·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등으로 대출 총량이 급증했다.

▶정부 보호 아래 성장…취약차주 금융지원(?)도 실체는 대출=재정정책과 달리 통화정책은 금융기관들을 대상을 이뤄진다. 돈이 풀리는 곳이 은행이다. 아무리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도 은행들이 이에 맞춰 싼 값에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지 않으면 일반 국민들이나 자금 융통이 절실한 기업들이 느끼는 효과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은행들은 코로나19에 따른 취약차주에 대한 ‘금융지원’ 실적을 자랑하지만, 사실 ‘영리대출’이다. 공짜로 돈을 대주는 게 아니라 이자를 받고 빌려주는 것이다. 이자와 원금 상환 유예일 뿐 면제나 탕감은 아니다. 상당 부분 공적기관의 보증이 수반돼 은행들이 손실을 입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은행은 영리 추구 기관이다. 뻔히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수는 없다. 은행은 정부의 인허가 울타리 속에서 시장을 보장받아 왔다. 유사시 정부가 지원한다는 점 때문에 자체 재무건전성 보다 더 높은 신용등급을 인정받는다. 은행이 다른 금융회사 보다 더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이유다. 은행이 시중에 자금이 잘 돌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대출규제에 이자만 더 비싸져=현실과 동떨어진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가 되레 은행들의 ‘배’를 더 불려줬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은행이 연내 기준금리 인상을 예고하면서 은행채 등 지표금리가 상승했고, 정부 규제로 우대금리까지 축소되면서 대출금리는 꽤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지난 6월 예금은행의 전체 가계대출 금리(가중평균·신규취급액 기준)은 연 2.92%로 작년 1월 이후 1년 5개월래 최고다. 이중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2.74%로 한달 새 0.05%포인트 상승, 2019년 6월 이후 2년만에 가장 높았다.

그런데 정부 규제에도 대출 증가세는 여전해 결과적으로 은행들은 더 비싼 값에 더 많은상품을 팔 수 있게 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全)금융권에서 가계대출은 총 63조3000억원 늘었다. 작년 같은 기간 증가 규모(36조4000억원)의 두 배에 달한다. 작년 상반기 전년대비 줄었던(-4조2000억원)를 2금융권에서 21조7000억원 늘어난 이유가 컸다. 하지만 은행에서의 증가분(41조6000억원)도 전년(40조7000억원)보다 줄지 않았다.

은행권의 기업대출 잔액도 6월말 현재 1022조1000억원으로 올 상반기에만 45조8000억원 상승했다. 이로써 상반 은행권의 가계·기업 대출 잔액은 2052조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77조원(9.4%) 증가했다. 은행 총수신에서 저원가성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46.9%로 역대 최대이며, 작년 상반기(42.6%)와 비교했을 때 가파른 상승세다.

▶은행의 자산시장 자금공급…양극화만 더 키웠다=최근 수년 간 이어진 자산가격 상승과 이에 따른 ‘영끌’ 자금마련에 은행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양극화의 골은 더 깊어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6월 ‘금융, 성장, 그리고 불평등(Finance, Growth and Inequality)’란 제목의 보고서를 내놨다. 보고서는 “금융이 발전한 경제일수록 유동성 위험 관리 및 외부자금조달 제약 완화를 통해 효율적 자원배분과 기술혁신을 촉진돼 성장률이 제고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이론적으론 계층별로 금융접근성이 달라 불평등이 개선되거나 확대될 수 있으나 실증적으론 경제적 기회 확대 및 효율적 자원배분으로 불평등이 개선된다는 연구 결과가 다수”라고 설명했다.

정상적인 금융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경제성장과 함께 불평등의 완화를 가져온다는 분석도 나왔다. 자산시장의 팽창으로 우리 경제에서 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은 역대 최대로 팽창했다. 사상 최대 이익을 낸 우리 금융이 발전하는 것이라면 경제는 완연한 성장세를 보여야 하고, 부의 쏠림도 점차 완화되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뭔가 금융의 역할과 기능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

gi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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