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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년만에 중량급 銀 ‘캡틴 조구함’…실력과 품격으로 한국유도를 구함 [피플앤데이터]
결승전 9분35초 혈투끝 패배
곧장 승자의 팔 번쩍 들어올려
유도 노골드에도 ‘부활의 동력’

매트에 오를 때마다 만나는 상대는 키 190㎝ 이상의 거구들이다. 한국 유도 중량급 간판이지만 178㎝ 신장의 그는 상대적으로 늘 왜소해 보였다. 기술이 화려한 것도 아니었다. 연골이 다 닳은 무릎도 제대로 힘을 받쳐주지 못했다. 하지만 훈련량 만큼은 달랐다. 전세계 누구보다 많다고 자부한 지독한 훈련량은 결국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한국 유도 대표팀 주장 조구함(29·KH그룹)이 2020 도쿄올림픽에서 위기에 빠진 한국 유도를 구하며 자신의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세계랭킹 6위 조구함은 29일 도쿄 일본무도관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유도 남자 100㎏급 결승에서 일본 혼혈선수 에런 울프(5위)와 골든스코어(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안다리 후리기를 허용해 한판패,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대회서 동메달 2개(안바울·안창림)를 기록한 한국 유도가 처음으로 수확한 은메달이다. 유도 중량급에서 은메달을 딴 건 2004년 아테네 대회 장성호 이후 17년 만이다.

‘일본 유도의 심장’ 무도관에서 펼쳐진 한일전 결승. 9분35초간의 혈투 끝에 패한 조구함으로선 통탄스러울 법도 했다. 하지만 곧바로 울프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번쩍 들어주며 패자의 품격을 보여줬다. 그는 “국가대표 10년 동안 가장 강한 상대를 만난 것 같다”며 “울프가 나를 잘 연구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보다 준비를 더 많이 한 것 같더라. (패배를) 인정한다”고 말했다.

후회없이 모든 걸 쏟아부은 경기였다. 5년 전 리우올림픽의 아쉬움을 시원하게 날린 은메달이다. 당시 조구함은 리우올림픽을 불과 3개월 앞두고 왼쪽 무릎 전방십자인대를 크게 다쳐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였다. 의료진은 이 상태로 올림픽에 나갈 경우 선수생명이 위험하다며 수술을 권유했지만, 조구함은 이를 뿌리치고 리우행 비행기에 올랐고 결국 16강서 패퇴했다. 올림픽 이후 수술과 힘겨운 재활을 거친 그는 지독한 훈련과 부족한 기술 보강으로 한단계 진화했다. 씨름 선수 출신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힘과 유연함도 한몫했다.

조구함의 이름은 나라 조(趙)에 한글 ‘구함’을 붙인 것이다. 교회 목사님이 ‘나라를 구하라’는 뜻으로 지어줬다. 그는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내 이름의 뜻처럼 위기에 빠진 한국 유도를 구하겠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리우올림픽 ‘노골드’에 이어 도쿄에서도 계속되는 부진에 흔들린 한국 유도는 제대로 이름값 한 캡틴의 실력과 품격 덕에 다시 한번 부활의 날개를 폈다.

조범자 기자

anju1015@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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