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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주스님 입적, “고고하게 산중에 살면 안돼잖여”…세상 속의 불교 실천
스물넷에 출가해 금산사에 입적

“조실은 법상에 올려놓고 대중과 함께 살아야죠. 고고한 산중에 살면 안 되잖여.”

불교계 큰 어른, 송월주 스님은 한국 현대 종단사의 분깃점을 이룬다. 월주 스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할 정도로 불교계 개혁의 중심에 월주 스님이 있다. 1980년과 1994년 두 차례의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내고 활발한 대사회 활동을 해온 스님은 늘 세상 속 불교를 강조해왔다.

22일 금산사에서 입적한 월주스님은 한국 불교의 산증인이다. 1980년 ‘10·27 법난’, ‘육비구 할복 사건’ 등 격동의 현대사의 한가운데를 통과해왔다.

1980년 총무원장 시절, 전두환 지지 성명 요구를 거부한 건 유명하다. 그는 민주와 평화를 외치는 곳곳마다 불교계 대표로 참여했으며, 1992년 일찍이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쉼터 ‘나눔의 집’을 꾸리기도 했다. IMF 위기 속에선 김수환 추기경, 강원용 목사와 함께 ‘종교 지도자 삼총사’로 불리며, 종교가 사회의 소금의 역할을 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종교가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게 되면 국민으로부터 비판받고 신뢰를 잃는다”며, “계속 참회하고 종교인의 사명을 돌아봐야 한다”고 평소 강조했다.

그는 금산사로 돌아와 뒷방으로 물러난 뒤에도 길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빈곤국가에서 우물을 파고 학교 짓는 일을 하는 지구촌 공생회, 위안부 나눔의집, 사회적기업인 함께일하는재단 등 세상의 소외된 곳을 오가는데 바빴다. “진리는 세간 속에서 실천해야 한다”는 그의 신념대로였다.

그가 입적한 금산사는 스물넷에 출가해 3년 만에 첫 주지가 된 사찰이기도 하다. 오랜 길의 여정에서 비로소 고향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스님은 말년에 행복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 하는 일에서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부족하더라도 비교하지 않고, 이 정도하면 낫지 않여. 만족하면 행복한 거여.”

이윤미 기자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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