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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산四色] 생일 유감

빚을 많이 지고 사는 인생이어서 그런지 주고받는 일에 익숙지 않은 자신을 마주할 때가 종종 있다.

쑥스러워하다 인사할 기회를 놓치기 일쑤고, 주는 사람 생각해서 좋다는 표현을 풍부하게 하리라 마음먹어도 잘 안 된다. 필요한 것 있냐고 물으면 늘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줄 때는 이거다 싶게, 주고받을 때도 당당하고 우아하게 즐길 수 없을까? 반면에 식구들 생일이 있는 달이면 선물 고민이 상당하다. 특히 어른들 생신엔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고민이 커진다.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친정어머니 그리고 나까지 우리 집 모녀 3대의 생일은 모두 음력 6월 하순에 닷새 간격으로 몰려 있다. 그냥 숨쉬기도 더운 절정의 여름에 며칠 사이로 몰려 있는 어른들 생신에 ‘어떻게’를 많이 고민한 것 같다. 당신들 탓도, 내 탓도 아니지만 하필 이렇게 더울 때가 생일이냐며 푸념하기 일쑤다.

할머니 생신을 맞아 두메산골 할머니댁으로 모이는 날엔 그야말로 악 소리가 절로 났다. 몇 안 되는 동네 사람들이지만 평소에 살뜰히 챙겨 주었던 빚을 일 년에 한 번이라도 갚아야 한다며 도시로 나가 생신하는 걸 싫어하시던 할머니. 그래서 더워도 불 피워 음식을 만들고 동네분들을 대접해야 했다. 그래도 그 시절엔 참아가며 생신을 준비했고 나름대로 운치도 있었던 것 같다.

한 대가 지나 어머니는 딱히 걸릴 게 없어 자식들 집에서 생일을 지내시거나 콘도를 잡아 휴가 겸해서 지내곤 했는데 코로나19가 앞을 가로막는다. 지난해에는 자식들 걱정해서 오지도, 가지도 말자고 하시는 바람에 못 이기는 척 선물과 용돈만 보내고 넘어갔다.

그래서 올해는 꼭 모여야 할 것 같아 더 마음이 편치 않다. 주는 일에는 익숙하지만 뭐가 필요하시냐는 물음에는 늘 “다 있다”며 손사래 치는 분.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으시고 오직 자식들과 시간 보내고 싶어한다는 사실이 나를 더 고민하게 한다.

가장 큰 선물인 만남이 이렇게 멈춰서 버리니 길을 잃은 느낌이다. 당신은 백신을 맞으셨지만 자식들, 손자녀들은 아직 멀었고 돌파 감염도 걱정되고 거리두기도 더 강화된 마당이니....

3대째인 나의 여름 생일은 어떤 모습일까? 나이가 나이인지라 평소에 외식하듯 적당한 식당에서 밥 한 끼, 그리고 이런저런 선물들을 받는다. 뭘 할까 고민했음 직한 선물을 받아들면 더위에 민폐다 싶어서 마음 편치 않다. 쾌적한 계절에 생일이 있다면 마음 편했을까 생각해본다.

당사자인 나의 선택이 중요할 것 같다. 애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적당한 선물 목록을 알려주어 마음의 짐을 덜어주고 폭염에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지 않도록 상황을 정리해줘야겠다. 그들 일이겠지만 내 일이기도 한 나의 생일. 더 나이 들면 앞뒤로 여행 스케줄을 잡아야겠다. 누군가 꼭 찾아와 축하해주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행복하게 여행 중이라 바쁘다고 말해주리라. 내 존재의 시작이었던 부모님 생각도 해보고 내 삶의 마지막을 함께해줄 자식들 생각도 해보며 호젓한 곳에서 여유롭게 사색과 경치를 즐기고 싶다.

사실 생일엔 먼지 나는 일상에서 조금 벗어나는 게 좋다. 거창하게 존재의 의미 따위를 헤아리자는 게 아니다. 그렇게 해서 너무 더운 여름에 태어난 벌을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할 뿐이다.

sunny0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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