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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무지’ 그 후…“우리를 우리로서 존재하게 하는 곳, 무대는 삶이자 역사”
‘우무지’ 그 후…라이브 공연장 살리기 프로젝트
지난 3월 ‘우무지’ 티켓 판매 5716만원
앨범ㆍ다큐 제작…팬덤 활성화ㆍ대관료 지원
인디신 진입 장벽 낮춘 ‘우무지’
“무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연대 확인”

전통에 기반한 실험과 재해석으로 새로운 음악세계를 열고 있는 잠비나이는 패데믹 이후 50여건의 해외 공연이 취소됐다. 국내외로 누비던 무대의 상실 앞에서 잠비나이 멤버들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대 위에서 우리의 소리를 내는 것이라 생각”으로 ‘우무지’ 페스티벌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사단법인 코드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우리를 우리로서 존재하게 하는 곳, 무대는 우리에게 역사입니다.” (잠비나이 최재혁, 블루파프리카 이원영)

전염병의 습격에 무대가 사라졌다. 공연을 열지 못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 1년 6개월, 음악계의 뿌리이자 터전이었던 공간들이 하나 둘 문을 닫았다. 뮤지션에게 무대는 “실재하는 ‘나’를 확인하는 장소”(잠비나이 김보미)이자 “돌아가야 할 집”(블루파프리카 성기훈)이며, “삼시세끼”(블루파프리카 강민규)와도 같았다. 무대가 사라지는 것은 이들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안겼다. “무대는 터전”이기에 공연장의 부재는 시련이자 두려움이었으며, 상심이자 공포이기도 했다.

잠비나이 최재혁은 “음악인으로서 추억을 만들어간 공연장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반드시 상황이 나아질 것이고 그때가 되면 일상의 많은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겠지만, 우리가 설 무대는 더이상 없을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며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대 위에서 우리의 소리를 내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 페스티벌 [사단법인 코드 제공]

▶ ‘우무지’…무대를 지키기 위해 모인 사람들=더 많은 무대가 사라지기 전에 대중음악 공연계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모였다. 인디 라이브 공연장을 살리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지난 3월 열린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이하 우무지) 페스티벌이다. ‘우무지’의 시작은 미미했다. 사단법인 코드의 이사장인 윤종수 변호사와 밴드 해리빅버튼의 이성수, 온라인 공연 플랫폼인 프레젠티드 라이브의 백명현 대표가 ‘뭔가 해보자’며 시작했던 일이다. 일주일간 이어진 온라인 페스티벌은 67팀의 뮤지션과 68명의 봉사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잠비나이 김보미는 “뮤지션과 공연을 만드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대는 잉여로운 것이 아닌 삶의 현장이라는 점에서 뜻을 같이 했다”고 했고, 블루파프리카 멤버들은 “무대가 있어야 우리도 존재한다. 무언가 할 말이 있어도, 전 세계적 재앙 앞에서 우리는 너무나 미약한 존재라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참여하게 됐다”(성기훈·강민규)고 말했다.

관객들의 적극적인 지지로 티켓 판매는 목표 금액(5000만원)을 훌쩍 뛰어넘은 5716만원을 달성했다. 4개월이 지난 현재 ‘우무지’의 성과가 나비효과가 돼 더 많은 프로젝트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 페스티벌을 추진한 윤종수 사단법인 코드 이사장은 “ ‘우무지’를 계기로 위축됐던 업계가 고무되고 자신감을 가진 효과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반가웠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코드 제공]

윤종수 사단법인 코드 이사장은 “우리는 바람잡이일 뿐, 거창하게 누군가를 돕자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며 ”그동안 뮤지션들은 죄 지은 사람들도 아닌데 눈치를 보고, 위축돼 있었다. ‘우무지’를 계기로 위축됐던 업계가 고무되고 자신감을 가진 효과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가장 반가웠다”고 돌아봤다.

코로나19 동안 음악인들은 저마다 인고의 시간을 보냈다. 공연은 줄줄이 취소됐다. 해외 공연이 왕성했던 잠비나이는 지난해 3월 기준으로 예정된 50회의 공연이 취소됐다. 곳곳에선 레슨, 개인 활동, 아르바이트 등 투잡을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블루파프리카의 성기훈은 “공연 자체가 경제활동이기도 했지만, 자아성찰의 시간이기도 했는데 코로나19 이후 공허함이 몰려왔다”며 “심폐소생 하듯이 지쳐가는 상황이 반복됐다”고 했다. 음악인으로서 존재를 증명하는 무대가 사라지니 상실감과 불안감도 커졌다. 강민규(블루파프리카)는 “사회에서 뮤지션을 바라보는 시선이 냉정해져 자존감도 떨어지고,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조차 무서워졌다”고 했다. 이원영(블루파프리카)은 “음악을 들려줄 기회가 많이 줄어드니 우리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것 같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우무지’를 온라인으로 진행하며 관객과 채팅창을 통해 소통하는 등 여러 통로를 통해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에게도 희망이이었다. “고민 없이 음악을 해도 괜찮겠다”(블루파프리카)는 자신감도 심어줬다.

블루파프리카의 ‘천천히’ 스튜디오 라이브 녹음 [사단법인 코드 제공]

▶ ‘우무지’의 나비효과와 연대=‘우무지’ 이후 인디 음악계가 기지개를 켤 수 있었던 것은 이 공연을 통해 라이브 공연장과 인디신이 우리 대중음악의 근간이자, 지켜야 할 문화라는 공감대가 나오면서다.

그간 음악인들의 아쉬움은 컸다. 잠비나이 이일우는 “‘K-컬처, K-팝이 대세’라며 문화 강국이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정작 다양한 뮤지션과 예술가들이 설 무대가 점점 사라진다면 결국 속 빈 강정 같은 음악 생태계, 예술계가 되지 않겠냐”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다양한 음악과 예술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이 있는 진짜 문화강국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음악인들의 바람에 지지가 쌓였다. ‘우무지’ 이후 경기콘텐츠진흥원의 ‘아무 공연’ 등 지자체 지원 프로그램이 생겼고, 방역 지침으로 중단된 라이브 공연장이 우여곡절 끝에 다시 운영하게 됐다.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이룬 협업이 곳곳에 씨앗으로 뿌리내려 열매를 맺어가는 때다.

‘우리의 무대를 지켜주세요’ 페스티벌 [사단법인 코드 제공]

‘우무지’에서 준비 중인 후속 프로젝트도 의미도 깊다. 한 번의 축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난 공연의 과정과 결과를 자료로 남겨 기록했다. ‘우무지 백서’를 통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활동상이 기록 중이고, 스튜디오 라이브 녹음을 통해 컴필레이션 앨범을 제작한다. 영상은 라이브 뮤직비디오로 만들고, 앨범 제작을 위해 텀블벅을 통해 크라우드 펀딩이 진행 중이다. 다큐멘터리를 촬영해 지난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도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우무지 페스티벌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 프로젝트의 시작”이었다면 “최종 목표는 소외됐던 인디 음악계에 대한 정책 측면에서의 변화를 끌어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연장 대관료, 뮤지션 사례비를 비롯해 각종 공연 제작비용을 제외하고 남은 티켓 수익은 다시 새로운 활동에 쓰인다. 대관료 지원 프로젝트인 ‘우무지 쇼 머스트 고 온(SHOW MUST GO ON)’을 통해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만들어간다. 또 인디 음악계의 팬덤 활성화를 위한 ‘우무지 빠심전’을 기획, 후원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도 특별한 프로젝트다.

잠비나이 김보미 ['우무지' 제공]

‘우무지’가 남긴 흔적들에 음악업계도 고무됐다. 무엇보다 문화적 다양성의 가치를 중시하게 된 점, 인디신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윤 이사장은 “좋은 음악이 너무나 많은데, 지금의 음악계는 거대 자본에 의해 소수를 키워내는 시스템이다”라며 “중요한 것은 문화적 다양성이 공존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무지’는 제 몫을 톡톡히 했다. 일주일의 공연 동안 해외에서까지 관객이 유입, 더 많은 사람들이 존재조차 몰랐던 음악인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인디신의 진입장벽을 낮춘 기회였다. 윤 이사장은 “전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관심을 보이고 협업이 지속된다는 점을 확인한 데에서 인디신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됐다”고 의미를 보탰다.

뮤지션에게도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잠비나이 김보미는 “우무지 앨범과 뮤직비디오 프로젝트가 단지 무대를 제공하는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뮤지션들과 무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계속 연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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