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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거계획서 150쪽 중 안전 4쪽 불과…‘부실 작업계획서’가 부른 참사[촉!]
120㎏ 중량물 하역하다 머리를 맞고 사망한 20대 작업자
안전모 미지급·작업 순서와 방법 등을 담은 계획서 없어
현장 관리자와 작업자만 처벌해서는 되풀이…관리감독 철저해야

17명의 사상자를 낸 철거 건물 붕괴사고와 관련, 지난 1일 철거 업체가 해체계획서를 준수하지 않고 철거를 진행했음을 증명하는 사진이 나왔다. 사진 속에는 굴착기가 건물의 저층을 일부 부수고 있는 모습이 찍혔다. [연합]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17명의 사상자를 낸 광주 철거 건물 붕괴 사고에서 철거계획서가 부실했고 이마저 잘 지켜지지 않은 등 안전수칙이 무시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사망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건설 현장에선 이 같은 작업계획서 부실이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해 5월 30일 27세 남성 A씨가 서울 도봉구 하수도 보수보강 공사 작업 중 숨졌다. 리프트가 장착된 3.5t 화물차에 실려 있던 120㎏짜리 몰탈 배합기(시멘트 와 모래 등을 섞는 건설 장비)를 하역하던 중 함께 작업하던 B(28) 씨가 리프트 수평을 유지하지 못하면서 몰탈 배합기가 붙잡고 있던 A씨를 향해 기울어졌다. 몰탈 배합기가 머리 부위를 가격하고 몸통 위로 떨어지면서 A씨는 중추신경계 손상 등으로 사망에 이르렀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형사5단독 홍순욱 부장판사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된 현장관리소장 C(48) 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작업 중 화물차 리프트 조작을 잘못한 근로자 B씨는 과실치사 혐의로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건설업체는 벌금 500만원을 선고 받았다.

A씨의 사망 사고는 현장에서 기초적인 안전 수칙조차 지켜지지 않은 탓에 발생했다. A씨는 사망 당시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았다. 또한 위험한 작업을 하기 전에 사전에 작성했어야 할 작업계획서도 없었다.

산업안전보건법과 고용부령 시행규칙에 따르면 100㎏이 넘는 화물을 싣고 내릴 때는 사업주나 지휘자가 사전 조사를 해 작업 순서와 방법을 사전에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전도·협착 등의 위험 예방 대책 등을 담은 작업계획서를 작성하고 그 계획대로 작업하도록 지휘해야 한다.

재판부도 이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작업내용에 대한 사전조사 없이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아니하여 피해자에게 작업 순서나 방법을 정해주지 않았다”며 “피해자에게 안전모를 지급하지 아니하고, 몰탈 배합기가 떨어질 위험을 방지할 수 있는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채 작업을 하게 했다”고 판시했다.

광주 철거 건물 붕괴 사고도 철거계획서대로 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한 정황이 포착됐다. 광주 동구청 등에 따르면 학동 4구역 재개발 사업자 철거 업체는 구청에 3~5층은 성토체를 쌓아 중장비로 철거하고 1~2층은 성토체를 제거한 뒤 철거하겠다는 내용의 해체계획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사고 이후 해당 건물의 4~5층은 그대로 둔 채 굴착기가 3층 이하 저층부터 부수는 모습들을 목격했다는 시민들이 나왔다.

애초에 철거 계획 자체가 부실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광주 학동 4구역 철거 계획서는 150쪽 분량이나 안전 관리에 대한 내용은 4쪽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장 작업자들도 해체계획서를 본 적도 없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사고 난 현장 관리자와 작업자만 처벌해서는 이 같은 사고는 되풀이될 수 있는 만큼 안전 수칙을 건설 현장에서 준수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 홍보와 감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정진우 서울과학기술대 안전공학과 교수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명시적으로 규정돼 있는데 작업계획서의 중요성을 사업장에서 인식 못하고 있다”며 “관리감독 기관인 고용노동부에서도 중요성 제대로 인식 못하다 보니 제대로 지도·감독이 안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작업계획서 부실이 사고 발생의 주된 원인”이라며 “규정을 사업장에서 준수할 수 있도록 홍보와 지도·감독이 필요하다”고 했다.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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