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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군의 은폐·무마 시도는 성폭력보다 더한 중대 범죄

선임 부사관에게 강제 성추행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여성부사관 사건 파장이 연일 확산되고 있다. 군 내부에 성범죄가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는 사실만 해도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더 충격적인 것은 후속 처리 과정이다. 상관들은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집요한 회유와 압박을 가했다. 더욱이 공정하고 신속한 조사로 관련자를 처벌해야 할 공군 수사기관의 수사는 그야말로 엉터리였다. 성폭력은 두 말이 필요 없는 최악의 범죄이다. 하지만 이를 무마 은폐하려는 시도는 죄질이 더 나쁘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어쩌면 성폭력이 아니라 사건을 무마하려는 2차 피해다. 김부겸 국무총리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지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은 군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넘어 자괴감마저 든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건의 경위만 보더라도 군이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던 정황이 너무도 뚜렷하다. 피해를 신고받은 상관은 오히려 합의를 종용하며 사건 덮기에 급급했다. 초동수사 진행도 부실투성이였다. 사건이 일어난 지 2주일이나 지나서야 가해자에 대한 첫 조사가 이뤄졌다. 성범죄 피해자를 가해자와 분리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사이 피해자가 입었을 정신적 고초가 어떠했겠는가. 당시 수사기관은 수사의 기본이라 할 가해자 휴대전화조차 확보하지 않았다. 그러다 피해자가 사망하고 언론에 사건이 보도된 뒤에야 부랴부랴 확보했다고 한다. 이런 정도라면 애초 수사를 할 의지가 없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공군 수사기관은 피해자의 사망도 ‘단순 변사’로 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된다는 의견을 붙이기는 했으나 성폭력 피해자로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은 아예 보고에서 빼버렸다. 이러니 군이 조직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피해자에 대한 보호와 치료 프로그램도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 공군은 22차례에 걸쳐 심리상담을 제공했다지만 피해자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피해자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지만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군 수사 당국은 사건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특히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는지 여부는 한치 의혹 없이 밝혀야 한다. 만에 하나 의혹이 조금이라도 사실로 확인되면 관련자는 엄하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병영 내 괴롭힘이나 성범죄, 군기 사고 등 군 내부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덮으려는 우리 군의 고질적 관행도 뿌리 뽑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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