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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속으로] 담합사건, 핵심은 ‘가격 시나리오’...공정위 속 경제분석

기업 간 담합은 ‘계획수립·합의·실행·결과 발생’ 순으로 이뤄진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는 ‘합의’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도 기업들이 서로 비슷한 전략을 짜거나 유사한 행동을 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문제는 경쟁 과정에서 우연히 비슷한 행동을 하는 게 아니라 경쟁을 안 하려고 합의해서 비슷한 행동을 할 때 발생한다.

따라서 담합 규율을 담당하는 공정위는 합의를 입증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 기업들의 담합 실력은 그리 간단치 않다. 합의 증거 같은 것을 쉽게 남길 리 없다. 외형상 가격 인상이 유사해 담합의 가능성이 의심되더라도 이를 입증하기는 매우 어렵다. 담합 관련 경제 분석의 목적은 시장 상황을 살펴보고 시장 결과가 우연히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합의에 의한 것인지 구별해내는 데 있다.

과거 배합사료 담합 사건에서 공정위는 기업들이 가격변동폭이 정상적인 시장 작동의 결과라고 보기에는 너무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해당 사건은 여전히 법원에서 다양한 경제 분석 쟁점을 다투고 있지만 담합 입증에서 경제 분석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사례다.

담합 관련 경제 분석은 담합 적발이나 담합 입증 및 담합 피해액 산정 등 세 단계에서 모두 활용되고 있다. 이 중 민사소송에서 주로 활용되는 담합 피해액 산정 경제 분석 사례는 이미 많이 축적돼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군납유 담합 사건 이후 다수의 경제 분석이 이뤄졌다.

국제적으로 알려진 담합 적발 사건은 ‘런던은행 간 금리 담합 사건(리보금리 담합 사건)’이 있다. 경제학자들이 영국 런던의 주요 은행 사이의 단기 대여금리를 살펴보던 중 기묘한 금리 변화 양상을 발견했다. 곧 담합이 의심된다는 의견이 각국 경쟁 당국과 금융 당국에 제출됐고, 그 후 여러 나라에서 금리 조작 등으로 규율된 바 있다. 담합 입증과 관련해서도 다양한 시도가 있다. 앞에서 말한 배합사료 말고도 자동차 딜러, 고철, 강판, 공공입찰 등 국내외에 많은 사례가 있다.

위 세 단계 중 어느 경우든, 담합 관련 경제 분석의 핵심은 담합이 의심되는 상황에서의 가격과 담합이 없었을 경우 관찰됐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격을 비교하는 것이다.

먼저 담합이 의심되는 기업들(또는 지역)과 담합에 가담하지 않은 기업들(또는 지역)의 가격을 비교하는 방법이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휘발유 담합을 조사하면서, 이탈리아의 휘발유 가격과 EU 다른 나라들의 휘발유 가격을 비교한 적이 있다. 자동차로 유럽 전역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특수한 사정 때문에 이런 비교가 가능했다. 이탈리아 약국 담합 사건에서는 약국과 슈퍼마켓에서 함께 팔리는 상품들을 선정해 약국 판매가격과 슈퍼마켓 판매가격을 비교한 바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담합 의심 기간과 비담합 기간을 나눠 가격을 비교하는 방법이 있다. 배합사료 사건에서 공정위가 활용한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가상의 상황을 만들어 경쟁시장의 가격과 담합시장의 가격을 각각 도출한 후 실제 가격이 어느 쪽에 더 잘 맞는지 보는 방법도 있다. 사후 분석이지만 미국 자동차 담합 분석에서 적용된 바 있다.

어떤 방법이든 중요한 것은 경쟁 상황에서의 결과와 합의에 의한 결과를 적절히 비교할 수 있는지다. 그러한 비교가 충분히 합리적이고 합의 이외의 가능성을 생각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법원에서도 경제 분석 결과를 중요한 정황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충분히 합리적인 비교를 위해서는 풍부한 양질의 자료 확보가 필요하다. 공정위 조사 과정에서 자료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고병희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구조개선정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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