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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강 대학생’ 현장에 나타난 할머니…“수사반장을 좋아했다” [현장에서]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내 수상택시 승강장 앞에 시민들이 손정민 씨를 추모하는 꽃과 선물을 가져다 놓았다. 김지헌 기자/raw@heraldcorp.com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지난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반포한강공원. 고(故) 손정민 씨 실종 관련 목격자 3명에 대한 현장검증이 끝났는데도 아담한 체구에 머리가 하얗게 센 한 할머니는 사건 장소를 떠나지 못했다. 강가에 홀로 내려가 흙을 밟아 보고 유심히 땅을 살피는 할머니에게 “이곳에 어떤 일로 오셨느냐. 혹시 실종 관련 가족 분이시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멋적은 표정으로 “그렇지 않다. 자식 잃은 부부가 너무 안 돼서, 사건의 단서가 될 만한 것을 찾고자 이곳에 왔다”고 했다.

할머니는 1970~1980년대 방영된 드라마 ‘수사반장’을 좋아한다고 했다. 지난 7일 새벽에도 손씨 관련 뉴스와 댓글을 읽으며 사건을 이해하느라 잠을 못 이뤘다고 했다. 할머니는 기자와 함께 멀찍이 지켜봤던 목격자들의 현장 시연 모습을 이야기하며, 할머니 머릿속에 그린 사건 경위를 말해 줬다. “확실하지 않은 정보라, 어디 가서 얘기하기 너무 조심스럽다”면서도 할머니는 구체적이고 꼼꼼하게 자신의 추론 과정을 얘기했다.

비단 할머니뿐만이 아니다. 사고 주변 강가에는 유독 중년 부부들이 현장을 찾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지난 5일이었던 어린이날, 젊은 커플들과 20대 학생들의 돗자리로 사고 현장 주변이 가득 찼을 때도 사고 추정 지점을 둘러보는 부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다들 “사건을 이해하고자 이곳에 왔다”고 했다.

이번 사건은 기존의 사망 사건과 다른 점이 있다. 사고 현장이 개방돼 있다는 것이다. 과거 살인, 아동학대, 군대 의문사 등 하나같이 끔찍했던 사건 현장은 경찰에 의해 가려졌고 대중에겐 언제나 ‘폐쇄된 공간’이었다. 뉴스나 검색 엔진을 통해 ‘제한된 말과 사진’만 접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조사하는 대중은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멸칭(蔑稱) 그대로, ‘방구석 코난’(사건의 진상을 잘 모르면서 웹에서 이를 논하는 사람들을 이르는 표현)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말과 사진이 아니라 현장으로 접할 수 있다. 깊은 산속이나 먼바다도 아니고, 무려 서울 한복판 한강 인근이다. 누구나 와서 유가족, 경찰, 주변인들의 말을 나름의 방식으로 현장에서 검증할 수 있게 됐다. 개방된 현장 덕에 많은 사람이 의견을 나누고 공감하고 참여하면서 관심은 더욱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모양새다.

경찰에게는 부담이 될 것이다. 수사 결과가 나와도 많은 사람이 현장을 찾아 경찰의 발표를 검증하려 할 것이다. 유튜버, 블로거 등이 자신의 수익을 위해 사건과 관련 없는 허위 사실을 퍼뜨려 오히려 경찰 수사를 방해한다는 점도 충분히 이해할 만한 얘기다. 그러나 이런 경찰의 불편함이 이번 사태의 본질은 아니다.

폐쇄회로(CC)TV가 없어 사건 진상규명에 어려움은 있지만 ‘수사반장’을 좋아하는 대중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 관심이 유가족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순기능이 되기를 바란다.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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