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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협치 거목' 이한동 前총리 숙환으로 별세
6선에 원내대표·부의장·장관까지…'DJP 공조' 총리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8일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 2015년 'JP화보집 〈운정 김종필〉 출판 기념회' 축사 모습. [연합]

[헤럴드경제] 한국 현대정치사의 대표적 정치 거물로 꼽혀온 이한동 전 국무총리가 8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7세.

이 전 총리는 내무부 장관과 한나라당 대표, 자유민주연합 총재 등을 지낸 정치 거물로, 여야와 보혁 간 소통과 통합을 내세웠던 대표적 정치 원로 중 한 명으로 통한다.

검사 출신 정치인인 이 전 총리는 정계 입문하기 전 법무부 법무실 검사, 서울지검 검사를 거쳐 서울지검 특수1부장·형사1부장을 지냈다. 이후 검사장 진급을 눈앞에 두고 고향인 포천에서 11대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입성, 16대까지 내리 6선에 성공했다.

그는 당 내에서도 원내총무(현 원내대표)·사무총장·정책위의장 등 당 3역을 두루 지냈고,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8년 12월부터 1989년 7월까지 내무장관을 지냈다.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 정부에서도 민자당 원내총무와 국회부의장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 때는 김종필·박태준 전 총리에 이어 3번째로 총리직을 맡았다. 이 전 총리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인사청문회를 통해 임명된 총리기도 하다.

이 전 총리는 지난 2018년 발간한 회고록 '정치는 중업이다'에서 타협과 대화의 정치를 강조했다. 정치인 시절에도 협상과 대화를 통한 타협을 중시해 여야 의원들로부터 '이한동 총무학'이라 불렸다. 평생의 좌우명이 통합을 강조하는 '해불양수'(海不讓水·바다는 어떤 물도 사양하지 않는다)인 그는 "정치는 국사를 조직하고 이끄는 최고의 업"이라고 정의했다. 이 전 총리는 세상을 떠나기 정에도 조언을 구하러 찾아온 후배 정치인들에게 '대화'를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대권 운은 없었다.

이 전 총리는 1997년 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른바 '9룡'(龍)의 한 명으로 이회창 이인제 후보 등과 맞붙었다. 하지만 이회창 대세론을 넘어서지 못했다. 대선 후 탈당해 김종필(JP) 전 총리 중심의 자민련 총재로 변신했지만, 이내 2002년 탈당 후 하나로 국민연합 소속으로 16대 대선에 도전했다. 하지만 낙선하며 '평생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이 전 총리는 이후 한나라당에 복당한 뒤 정계를 은퇴했다.

onlinenew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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