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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주하고 춤 추고 노래하고…하루 12시간씩 불가능에 도전”…‘그레이트 코멧’ 삼인방
연기하는 연주자ㆍ연주하는 연기자
로빙 뮤지션 김지유 고예일ㆍ배우 이정은
 
연주자와 배우 경계 허문 ‘그레이트 코멧’
연주와 연기 겸하는 어려움 ‘첩첩산중’
하루 12시간씩 연습…“죽기 전 생각날 작품”
연주자와 배우의 경계를 허문 ‘그레이트 코멧’에서 연주와 연기를 겸하는 로빙 뮤지션 김지유 고예일과 배우 이정은은 이 작품을 “죽기 전에도 생각날 작품”이라며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도전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해묵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연주 악보’를 받아든 순간, ‘멘붕’(멘탈 붕괴)이었다고 한다. “연주자의 악보와 보컬의 악보가 전혀 다르더라고요.” 연주와 노래는 서로 다른 음과 리듬으로 조화를 이뤄야 했다. “이게 가능할 거라고는 1도 생각하지 않았어요.”(김지유)

27년차 비올리스트 김지유는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자 또다시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내 ‘동공 지진’까지 느껴졌다. “그런데 안무에 연기까지 하라니…” (김지유)

기상천외한 뮤지컬이었다. 엄격히 구분됐던 오케스트라와 뮤지컬 배우들이 한 무대에서 춤을 추고, 노래를 하고, 연기를 했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도 없었다. 연주자와 배우들은 무대 뒤에서, 객석에서 튀어나왔다. 국내 초연 중인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5월 30일까지·유니버설아트센터).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원작으로 각색한 이 작품은 지금껏 본 적 없는 새로운 형태와 무대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오케스트라 피트를 벗어난 ‘로빙 뮤지션’(무대와 객석 사이를 돌아다니며 연주하는 뮤지션) 김지유(35) 고예일(33), 바이올린 연주를 겸하는 뮤지컬 배우 이정은(28)을 만났다.

첫 연습은 지난해 6월. 모두에게 난생 처음인 경험이다. 그때만 해도 ‘사태 파악’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김지유는 “노래와 안무는 아예 생각도 못 했다”고 한다.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안무는 다 보이니 어쩔 수 없어도, 노래는 사람들한테 묻어가면 안되냐”고 물었다. 다시 떠올리는 기억도 아찔했던 것 같다. 목소리도 조금 떨렸다. “마이크까지 다 채웠거든요.”(김지유) 바이올리니스트 고예일도 말을 보탰다. “연주에 집중하고 노래는 슬쩍 넘어가 보자 했어요. 그런데 이게 웬걸. 그게 더 어렵더라고요. 차라리 악보대로 써있는 걸 하는게 낫지, 어려운 걸 안 부르고 쉬운 것만 부르는게 더 힘들어요.”(고예일) “틀리면 얼굴 표정에서 티가 나거든요.”(김지유) “저희는 요령이 없어 숨을 줄도 몰랐던 거예요.”(고예일)

전공자들 사이에 낀 뮤지컬 배우 이정은에게도 ‘그레이트 코멧’은 ‘산 넘어 산’이었다. 초등학교 때 바이올린을 배웠지만, 전공자가 아닌 만큼 부담이 컸다. “오디션 때 ‘7~8년 정도 배웠는데 10년 쉬어서 연주가 만신창이입니다’, 그렇게 말씀드렸어요.(웃음)” 작품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은 고예일을 포함한 전공자 두 사람과 이정은 뿐이다. “폐를 끼쳐선 안된다”는 생각에 연습 첫날 악보를 통째로 외워갔다. 굳은 손가락을 풀기 위해 매일 6~8시간씩 연습했다고 한다. “스즈키, 시노자키, 흐리말리, 카이저…. 오래전 배운 책을 죄다 꺼내 연주해봤어요.”(이정은) “사실 저희(연주자)는 어떤 판일지 몰라 일단 연습 첫날 상황 파악을 해보자 했어요. 근데 다 외워왔다고 하더라고요. 우리 이제 큰일났다 싶었죠.(웃음)”(고예일) “(전공자가 아니니) 연주하다 틀리면 무조건 저인 거잖아요. 그러니 다 외울 수밖에 없었어요.”(이정은)

“매일 아침 10시까지 연습실로 향해 밤 10시에 퇴근”하며 연습에 연습을 더했다. 마지막 리허설까지도 부담과 압박을 짊어졌던 세 사람(고예일 김지유 이정은(왼쪽부터))은 공연이 시작되자 전혀 다른 얼굴이 됐다. 막상 무대에 오르자 완벽한 액터 뮤지션이 돼 매회 최고의 공연을 보여주고 있다. 박해묵 기자

애초 지난해 9월 개막 예정이던 작품은 코로나19로 기약 없이 늦춰졌다. 그 덕에 연습 시간은 벌었다. 정해진 연습 시간(오후 2시~6시)도 말뿐이었다. “매일 아침 10시까지 연습실로 향해 밤 10시에 퇴근”(김지유)했다. 연기를 겸하는 연주자, 연주를 겸하는 배우들이 서로를 도왔다. “배우와 로빙 뮤지션이 서로 섞여 있어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지 않다면 상상이 안 가요.”(고예일) 연습 과정에서 원작과는 달라진 장면(‘발라가’ 신)도 있다. 원작에선 비올리스트가 피치카토(현을 손가락으로 퉁겨 연주하는 주법)로 연주를 하고, 엉덩이를 흔들며 키스신까지 이어지는 연기를 맡는다. 애초 김지유가 해야 하는 이 장면은 배우 이정은이 하게 됐다. “전 정말…. 기절할 뻔했어요. (웃음) 바이올린이 하기엔 어려운 연주였는데 정은이가 너무 잘했어요.”(김지유) 이정은의 조력자는 김지유였다. “너무 부담이 커서 잠깐 미뤄진 동안엔 꿈까지 꿨어요. (지유) 언니한테 레슨 한 번만 해달라고, 계속 쫓아다니며 봐달라고 했어요. 정말 의지를 많이 했어요.”(이정은) “지금은 골반이 그렇게 흔들릴 수가 없어요. 이게 사람 골반인가 싶어요.(웃음)”(김지유)

자세를 바로잡는 것조차 어려움이었다. 여덟 살에 연주를 시작해 한 길을 걸어온 김지유는 모든 순간이 난관이었다. “오페라 신에선 귀족 옷을 입고 귀족처럼 걸어야 하는데 악기를 오래 하다 보니 등이 굽었더라고요. 나중에 영상을 보니 예일이는 연기도 잘하고 자세도 좋은데 저는 소매치기 같더라고요.(웃음)” 혼자만 낙오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영혼을 갈아넣었다’. 연습으로 쌓아온 날들은 배신하지 않았다. 로빙 뮤지션들의 연기와 춤은 나날이 뻔뻔해졌고, 배우들의 연주는 하루가 다르게 늘었다. “아직 100% 극복하진 못했다”지만,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춤이라는 걸 춰본 적이 없는” 김지유는 ‘무대 체질’이었다. 연습실에선 어깨의 움직임조차 어색해 “살면서 한 번도 졸라본 적이 없냐”는 말까지 들었지만, 공연 첫날부터 달라졌다고 두 동생은 입을 모은다.

“예일 언니는 처음부터 안무를 잘했어요. 춤도 춰보고 놀아본 티가 나는데, 지유 언니는 몸을 써본 적이 없어 어디서부터 설명해줘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고요.”(이정은) 모두가 난감했던 시기를 넘기니 끈끈한 동지애가 생겼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 지금 세 사람은 서로의 자랑이 됐다. “지유 언니가 연주할 때 진짜 멋있거든요. 그래서 연주할 때처럼 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이제 진짜 배우가 됐어요. 너무 멋있어요.”(이정은)

고예일은 이미 ‘웃는 남자’, ‘미드나잇’에서 ‘액터 뮤지션’으로 활동한 만큼 이번 경험이 뮤지컬 배우로서 더 큰 꿈을 키우게 했다. “저도 정통 클래식을 해오면서 춤을 출 일도 없고, 엔터테인먼트적인 모습을 끌어낼 일이 없어 엄청 어색했어요. 내가 이런 걸 할 수 있을까 싶었고요.”(고예일) “응? 전혀 어색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웃음)”(김지유) “지금은 연주를 하면서도 연기를 겸하는 액터 뮤지션으로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이에요. 기회가 오면 꾸준히 이어가고 싶어요.”(고예일)

지난 3월부터 이어온 공연에 한창인 세 사람은 “지금도 객석으로 등장하는 장면에선 매일 떨린다”며 “따뜻한 눈빛을 보내주는 관객들 덕분에 늘 힘이 된다”고 말했다. 박해묵 기자

많게는 하루에 두 번, 일주일에 아홉번씩 무대에 오른다. 더블 캐스팅도 없이 오롯이 혼자 책임져야 하는 무대. 세 사람은 여러모로 “죽기 전에 생각날 공연”이라고 했다.

“노련하게 몸을 쓰는 방법을 몰라”(고예일) 무릎과 허리가 남아나질 않았고, 체력 소모가 심해 초콜릿을 달고 산다. “친구들과 엄마는 연습 기간 내내 하지 말라고 할 정도였어요. 그만큼 제겐 큰 도전이었고, 이걸 하는 지금이 너무나 신기해요.”(김지유) 지금도 객석으로 등장할 준비를 할 때면 심장이 뛴다고 한다. “매일 너무 떨려요.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며 안무를 해요. 시선을 외면할 땐 상처받기도 하지만, 많은 분들이 따뜻한 눈빛을 보내주세요. 그게 늘 힘이 돼요.”(김지유) 이정은에게도 이 작품은 “기적이고, 행운”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문득 오늘이 마지막 공연이라고 생각하면 덜컥 눈물이 차오르더라고요. 체력적으로 힘들 땐, 일부러 마지막 생각을 해요.”(고예일) 벌써부터 ‘막공’의 아쉬움이 다가온다고 한다. 그 마음을 원동력 삼아 세 사람은 다시 무대로 향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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