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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부 오씨 한글로 정리한 ‘음식보’ 갖가지 음식·술...‘호남의 디미방’
나주 풍산홍씨 창애공파 종가
나주 풍산홍씨 종택에 전해오는 석애집.

호국정신과 가정문화 계승을 두 축으로 하는 나주 풍산홍씨 창애공파 종가는 호남의 음식문화를 이끌어온 곳이다. 호남에 ‘음식보’가 있고, 영남에 ‘디미방’이 있는 것이다.

13세기 고려 고종때 국학 연구원(직학)을 지낸 홍지경 이후 6세 홍이가 남평현령으로 나주와 인연을 맺었다.

이 종가가 이끈 가정문화의 결실은 18세기초 홍수원(1702~1745)때 꽃핀다. 그의 부인 진원오씨가 조선후기 양반가 음식 조리법을 한글로 정리한 ‘음식보(飮食譜)’를 남겼다. 이 책에는 ‘음식보 오복제 합부’라는 표제에 한글로 귀거래사, 음식보, 오복제, 정월 초에 하는 윷놀이 점괘, 조상의 기일 등이 기록돼 있다.

갖가지 음식 제조법은 물론 12가지 술의 제조법, 집안 초상 때 갖춰 입는 5가지 복식 등을 담고 있어 민속학 가치가 높은 자료라고 한다.

오씨부인은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아들들이 사서삼경을 소리내어 읽으면, 다른 방에서 듣고도 누가 어느 대목을 잘못 읽었는지 지적할 정도로 학문에도 조예가 있었다고 전한다. 아들 석애 홍봉주는 문과 급제하고 벼슬은 동부승지에 오르고 석애문집을 남겼다.

오씨부인의 손자(홍봉주의 양아들) 익진의 부인 행주기씨는 노사 기정진의 고모다. 홍씨 후손들이 장성의 월봉 기대승의 학문적 성과가 찬란한 기씨 학당으로 공부하러 갔다고 한다.

앞서 풍산홍씨 3세 홍유는 충열왕 때 문과 급제해 벼슬은 대제학에 올랐고, 5세 홍구는 고려 말 용기순위사 우령중랑장을 역임하고 경기도 고양에 정착했다.

7세 홍수의 나주 입향이후, 9세 홍한의(1482~1549)는 뛰어난 문학으로 건원릉참봉에 제수됐고 학포 양팽손과 도의로 교유했으며 나주 남평 도천(도래마을)에 입향했다.

그의 손자 홍민언(1537~1626)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경명 장군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금산으로 진격하다 남하해 남원 운봉 전투에 참전했다. 남평 지석강 전투에서는 왜적을 제압하고 포로를 탈환하는 전공을 세웠다고 호남절의록에 기록됐다.

홍민언의 둘째 아들인 12세 홍시정 벼슬길을 받았지만 나가지 않고 창애종가를 열었다. 창애유집이 전해진다. 22세 홍규식(1871~1945)은 송사 기우만과 함께 구한말 의병 창의에 참여했다. 창애종가는 2000여점의 고문집과 고문서 등을 보존하고 있다. 함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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