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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예타’ 둑 무너지면 선심성 개발공약 남발해도 속수무책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예비타당성 조사(예타)제도 완화 움직임이 심히 우려스럽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예타 결과 심사권을 국회에 부여하고 정부에 재조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한 게 대표적이다. 양 의원은 예타제도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국가예산심사권 행사라고 그 이유를 내세웠다. 그러면서 ‘지역 균형발전, 긴급한 경제·사회적 대응 등 정책적 관점에서 타당성이 결여된 경우’ 재조사를 하겠다는 것인데 그렇지가 않다. 가령 지역 균형발전을 이유로 재조사를 하자고 하면 예타 면제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업이라도 정부는 거부할 방법이 없다. 한 마디로 예타제도 자체가 무력화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27일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예타 개편 관련 법안들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들 개정 법안에는 SOC 예타 면제 기준을 현행 50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상향조정, 접경지역 관련 예타 면제 대상 확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공공기관 프로젝트파이낸싱(PF) 해외 사업, 보건의료기관 설립, 지방의료원 신·증축사업에 대한 예타 면제 등도 논의됐다. 이렇게 되면 웬만한 지역사업은 예타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면 제도의 존재이유는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국가재정의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는 예타의 근본 취지는 어떠한 경우에도 훼손되어선 안 된다. 나랏빚이 1000조원을 넘나드는 작금의 상황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이 제도는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도입됐다. IMF 외환위기 직후 예산 낭비를 방지하고 재정 운용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실제 예타는 그동안 정치권의 무분별한 선심성 지역개발 공약을 억제하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이 돼왔다. 하지만 국회법 개정안을 포함해 발의된 관련 법안들이 통과되면 예타는 정치적 입김에 좌우될 가능성이 한결 커진다. 예타의 둑이 무너지면 재정의 누수는 걷잡을 수 없고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 몫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현 정부 들어 예타가 면제된 사업 규모가 확대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 60조원, 박근혜 정부 때 24조원이던 규모가 현 정부 들어는 지난 2월 말까지 98조원에 달했다. 그나마 정치적 판단에 따라 특별법을 제정해 예타를 면제한 부산 가덕도 신공항 사업비 28조원을 제외한 게 그 정도다. 더욱이 내년에는 차기 대선과 지방선거가 맞물려 있다. 각종 선심성 지역 개발 공약이 쏟아져 나올 게 불 보듯 뻔하다. 예타 기능이 완화되거나 무력화되면 속수무책 감당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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