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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읽기] 최태원이 마주한 ‘별의 순간’

‘정계의 킹메이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퍼뜨려 유행어가 된 ‘별의 순간’은 재계에도 유용하다. 운명적·결정적 순간을 포착해 시대의 표상이 된 인물들에 적용할 만하다.

지난달 20주기를 맞은 정주영 현대 회장은 조선업에 도전한 1970년대에 운명적 순간을 맞았다. 조선소는커녕 대형 선박 건조 실적이 전무한 상황에서도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의 처남으로부터 26만t급 2척을 수주하고, 영국의 바클레이스은행에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내밀어 차관을 얻은 일화는 유명하다. 특유의 “이 봐 해봤어?” 정신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고 한국 조선·중공업·자동차산업의 기틀을 다졌다.

작년 별세한 이건희 삼성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1993년 프랑크푸르트선언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불량은 암적 존재”라며 무선전화 15만대를 불태운 ‘애니콜 화형식’은 오늘날 세계 스마트폰시장을 제패하는 혁신의 횃불이 됐다. “21세기엔 1명의 천재가 10만명, 20만명을 먹여살린다”는 ‘천재론’은 반도체 세계 1위의 초석이 됐다.

현존하는 재계 인물 가운데선 누가 ‘별의 순간’을 마주할까? 필자의 시야에는 얼마 전 대한상의 회장에 취임한 최태원 SK 회장이 보인다. 요즘 재계를 관통하는 화두는 단연 ‘ESG경영’이다. 친환경(Environment)과 사회적 책임(Social), 투명한 지배구조(Governance)를 바탕으로 기업 가치를 높이고 지속 가능 발전을 추구한다. 한 마디로 ‘착한 기업’이어야 살아남는 시대다. 최 회장은 ESG경영에서 스토리와 성과가 쌓여 있고 향후 펼칠 활약이 기대된다. 먼저 스토리. 외환위기 당시 그룹경영을 승계하게 된 최 회장은 생존경쟁에 내몰려 돈만 좇는 욕망의 화신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다 운명처럼 자신과 정반대의 여인과 만나 사랑에 빠져 기업의 사회적 가치에 눈을 떴다는 얘기. 2014년에는 영어의 몸으로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을 출간했다.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겸비한 사회적 기업을 우리 사회 양극화를 해결할 열쇠로 보고 여기에 매진하겠다는 옥중 참회록이다.

지난 10여년간 사회적 가치에 천착해온 최 회장은 지금 유행하는 ESG를 눈으로 보고, 만지고, 즐기는 단계까지 진화시켰다. 사회적 기업들의 성장판인 소셜밸류커넥트(SOVAC),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회계숫자로 측정하는 더블보텀라인(DBL), 단기 재무적 성과보다는 사회문제 해결을 통한 성장과 미래 비전을 중시하는 ‘파이낸셜 스토리’ 등이 대표적이다. SK하이닉스가 최근 1조5000억 규모의 녹색·사회적 채권을 발행하는 등 대대적 투자에 나선 것도 돋보인다.

최 회장의 상의회장 취임은 ‘SK’라는 담을 넘어 재계 전반으로 ‘착한 경영’이 확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BTS의 팬클럽 ‘아미’가 다른 팬을 불러오는 선순환으로 세계적 팬덤을 형성했듯이 사회적 가치를 필생의 과업으로 삼은 최 회장의 진정성이 우리 사회에 울림을 준다면 친기업 정서가 꽃필 수도 있다. 때맞춰 재산의 절반인 5조원을 뚝 떼어내 사회환원을 선언한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젊은 층의 팬덤이 두터운 ‘택진이 형’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등이 회장단에 합류했으니 기대감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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