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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부끄러움은 소중한 감정이다

최근 대법원장의 거짓말 논란이나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정책 변화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은 부끄러움이다. 대법원장은 진실을 가리는 사법부의 수장이기에 그의 행동이나 말은 사법부 전체를 대표한다는 상징성이 있다. 진실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사법부 전체가 국민에게 심각하게 부끄러워할 일이다.

요사이 가장 중요한 주택 정책 역시 부끄러워해야 할 일 중 하나다. 지금까지 정부 여당은 집값 상승이 공급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투기성 자금이 부동산으로 흘러가서 부동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다주택자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서울, 부산시장선거가 다가오자 갑자기 그동안의 정책에 대한 반성이나 설명 없이 대규모 공급대책을 발표했다. 지난 정책들로 인해 청년층이 겪게 된 좌절감과 빈부격차에 대한 일언반구 없이 대규모 공급 정책을 발표하니 역시 심히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임에 틀림이 없다.

감정 연구의 대가인 미국의 심리학자 폴 에크먼은 인간은 6가지 기본 감정 ‘공포·분노·슬픔·기쁨·혐오·놀람’을 타고난다고 주장했다. 이를 ‘보편 감정’이라고도 한다. 동양에서도 ‘7정(情)’이라고 해,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의 감정으로 분류했는데, 기본적으로는 동서양의 감정이 보편적인 듯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약간의 차이가 있다. ‘부끄러움’은 동서양 공통으로 중요하게 느끼는 또 하나의 복잡한 감정 현상이다. 서양에서의 부끄러움은 ‘죄책감(guilt)’에서 비롯되는 것이 많은 반면, 동양에서는 ‘수치심(shame)’에서 비롯되는 것이 많은 듯하다. 연구에 의하면, 죄책감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상대방이 손해를 봤을 때 나타나지만 수치심은 상대방이 자신의 충고를 거부했을 때 나타난다고 한다. 죄책감이란 양심과 같은 자신의 내적 기준 때문에 갖는 일종의 자책, 옳고 그름에 대한 우려에 가까우며, 수치심은 자신의 부도덕한 행동에 대해 인간관계 속 타인의 시선 때문에 갖는 느낌이다. 동양에서의 ‘부끄러움’은 수치심으로 느끼는 부끄러움이기에 좀 더 인간관계에서의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작금의 여러 상황은 우리가 소중히 간직해오던 인간관계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맹자는 인간의 근본 중 하나로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들며 부끄러움을 잃으면 인간이 아닌 동물이라고 했다. ‘후안무치(厚顔無恥)’ 역시 얼굴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으로, 염치나 부끄러움은 우리가 가진 소중한 감정이다. 물론 부끄러움과 수치심도 지나치면 역효과를 가져온다. 정신분석학자 에릭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에 의하면 성장기 시절의 부끄러움은 문화적 균형을 맞추는 방법이며 사회적 정당성에 대한 인식을 생기게 하기도 하지만, 지나치면 자율성이 떨어지고 자기통제로 힘들어진다고 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적절한 부끄러움은 사회가 유지되고 질서와 도덕이 작동하게 한다. 질서를 어기거나 다른 이를 불편하게 해도 부끄러움을 모른다면 사회가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인간은 부끄러워할 줄 알기에 잘못을 하더라도 반성할 수 있으며,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부끄러움은 비록 부정적인 감정인 동시에 소중한 감정이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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