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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깨비 장군’ 氣 이어 의병활동…호남 지킨 자부심
장흥마씨 충정공 종가
복원중인 전라병영성과 군이 지원한 탱크

강진군내 장흥쪽 병영면에 가면 3만평 규모의 문화재 구역 내에 탱크가 세워진, 조선육군 군사령부 중 하나인 전라병영성이 있다. 1895년 폐영되기 직전 성 안에 6000명 가량이 살았을 정도로 성의 규모가 크다. 강력한 전라 수군의 감시망을 용케 피해 상륙한 왜구 등을 섬멸하는 육군지휘부이다. 복원중에 휑한 느낌 때문이었는지, 군이 탱크 한대를 배치해 눈길을 끈다.

이 전라병영성은 ‘도깨비 장군’이라 불리던 장흥마씨 마천목장군이 1417년 사령관으로 있을때 지었다. 마천목이 전라병마절도사로 조선의 남서부 국방을 지휘할때 지었다. 그는 용맹함에서나 지혜에서나 특별한 에너지면에서 ‘도깨비 장군’이라 불린다. 곡성 섬진강에서 고기를 잡아 부모를 봉양하던 마천목이 어살(물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둘러친 장치)을 만들기 위해 돌을 주워왔는데 도깨비가 변한 돌인지라 도깨비들이 돌려달라했다. 마 장군은 돌을 돌려받으려면 섬진강 어살을 만들라는 조건을 제시해 도깨비들이 뚝딱 어살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섬진강에 바위들이 쌓인 보와 어살이 남아있다.

장흥마씨가 곡성 장군봉 아래에 세거하기전, 마씨의 원조는 고조선의 영향권, 동이족의 나라로 고증되고 있는 은나라 군자 마완이다. 마완의 아들 마장이 지역 군왕의 폭정을 피해, 기자 세력과 함께 동쪽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가문에서 모시는 공식 시조는 온조왕을 도와 백제를 개국한 공신 마려인데, 마사량현(장흥)을 식읍으로 받아 장흥마씨 시조가 된다. 1000년 가량 지난 후 고려 개성판윤 마혁인이 장흥마씨를 중흥시켰고 그의 11세손 마천목(1358~1431)이 충정공 종가를 열었다. 그는 고려말 이성계와 친한 정지 장군의 발탁으로 무인이 되어 이방원을 도와 조선 개국에 참여하고 태종의 왕권강화, 제도정비에 공헌하며 좌명공신에 녹훈됐다. 전라병영성 총대장을 마친후엔 병조판서로서 북방6진 설치를 주장하고, 문치국가의 기틀이 됐던 집현전 대제학에 올랐다.

마혁인의 17세손 마성훈(1533~1601)은 임진왜란 의병장으로 고경명 부대에 합류해 활동했고, 종형제 중 륜, 응훈, 운종, 온종, 창종 등은 진주 남강전투에서 공을 세웠다.

마천목공신녹권은 국가 보물 제1469호로 지정됐다. 전라병영성과 진지, 전함 판옥선 등을 발전시키면서 남부지방을 지켰다는 점, 6진 개척, 임진왜란 의병활동 등은 곡성 장흥마씨의 자부심이다. 함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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