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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더스칼럼] 명분없는 기업규제법

최근 정부·여당이 경제민주화를 명분으로 ‘경제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을 올해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밀어붙이면서 거센 논란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정강정책에 있는 경제민주화와 모순되지 않는다며 원론적 찬성을 밝히고 뒤늦게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노동법 개정을 제안하는 등 어정쩡한 입장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법 개정을 미루거나 방향을 바꿀 수 없고 노동법 개정은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면서 친노동·반기업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경제3법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 총수의 전횡과 재벌 일가의 부당한 사익편취 방지, 소액주주들의 이익보호를 입법 취지로 내세운다. 그러나 경제계는 코로나19로 안 그래도 어려운 상황인 기업을 지원하지 못할망정 기업을 옥죄기만 하는 경제3법을 사실상 ‘기업규제법’이라며 경제단체들이 공동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경제민주화를 위한 공정경제법이라고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해외에도 유례 없는 급진적이고 과격한 기업규제나 반시장적인 요소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상법개정안 중 가장 논란이 되는 감사위원의 분리선임과 다중대표소송제는 경영을 간섭하려는 투기자본의 대문을 열어주는 법안이다. 공정거래법의 전속고발권 폐지는 소송남발을 불러 상시적 경영불안을 초래하고, 금융그룹감독법 역시 금융계열사들이 계속 지배구조에 신경을 쏟게 한다. 게다가 정부는 블랙컨슈머 등에 의한 소송남발로 회복하기 어려운 경영손실을 발생시킬 수 있는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확대 도입하고,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가입을 허용하는 노조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21대 국회가 들어서면서 이런 입법들이 쏟아지는 것은 여당이 압도적 의석 수 우위를 바탕으로 이른바 ‘경제민주화’ 입법과제들을 밀어붙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지금 한국의 정치권이 경제적 문제의 해법을 경제민주화에서 찾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경제양극화가 경제권력의 불평등에서 초래됐다고 보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지만 현재 거론되는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들은 잘나가는 자는 누르고 뺏어서 뒷다리를 잡는 규제로 양극화를 해소하기는커녕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경제민주화에서 민주주의는 기회의 균등을 통한 절차의 정당성을 추구하는 것이고, 시장경제는 경쟁을 통한 효율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지향점이 근원적으로 다름을 인식해야 한다. 이런 점을 무시하고 둘을 억지로 묶는 경제민주화는 절차의 정당성과 효율성을 모두 포기하자는 것이다. 그런데도 여야가 합심해 경제민주화라는 미명 아래 기업규제법을 밀어붙이려는 것은 엄청나게 변화한 기업들의 경쟁환경과 지배구조를 간과했거나 진정으로 한국 경제를 위하기보다는 표를 의식한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 재확산으로 인한 글로벌 경제위기 가능성 때문에 선진국들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업규제를 계속 없애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오히려 정부와 국회가 기업의 숨통을 조이는 규제를 양산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실체는 없으면서 뭔가 따뜻하고 위안을 주는 듯한 경제민주화란 달콤한 구호로 더는 국민을 호도하지 말고 저성장과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를 살리는 데 매진해야 한다. 기업규제법 대신 시장의 힘을 키워주는 과감한 노동개혁과 규제개혁으로 기업이 스스로 고용과 투자에 나설 수 있는 친시장·친기업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강명헌 단국대 명예교수·전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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