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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상의 오지랖] 2020년에 등장한 ‘대통령 불경죄’ 논란…‘문팬’이 부담스러워진 민주당
문재인대통령 “경기 어떤가” 질문에 한 시장상인 “거지 같다”
해당 상인에 대해 강성 친문지지자들 신상털기 등 융단폭격
대통령에 대한 불경죄로 여긴듯…그 행동에 다양한 뒷말들
민주당, 총선 중도층 표심 이탈 분위기에 당황한 표정 역력
임미리 교수 신상털기 등 핵심지지층 행동에도 경계 시선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

‘톰소여의 모험’을 쓴 미국 소설가인 마크 트웨인(1835년~1910년)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어린나이에도 인쇄공을 하며 살림에 힘을 보태야 했다. 정규교육은 그러니 꿈을 꿀 수 없었다. 마크 트웨인의 트레이드마크는 그래서 ‘독학’이 됐다. 보이는대로 책을 섭렵했고, 스스로 공부했다. 작가 타이틀을 얻기전엔 한때 신문기자로 일했고, 종군기자로도 활동했다. 해학과 풍자, 유머가 그의 소설의 핵심코드가 된 것은 아마 그런 젊은시절 고생에 대한 반대급부성의 희망가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마크 트웨인은 유독 명언을 많이 남긴 인물이었다는 점이다. 인생에 있어 쓰라림을 누구보다 많이 경험했고 거기에서 적잖은 시사점을 느꼈기에, 후학들을 위해 작가로서의 명언으로 남기고 싶었나보다.

그의 명언 중 떠오르는 게 있다. “화가 날 때는 백(100)까지 세라. 최악일 때는 욕설을 퍼부어라”와 “인간은 얼굴을 붉히기도 하며, 혹은 붉힐 필요가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는 게 바로 그것이다. 전자는 화가 치밀어오를때는 100까지 세는 신중함을 갖되 머리끝까지 치솟아 도저히 누를 수 없을때 그제서야 욕을 하라는 뜻일게다. 이는 욕을 하라는 게 아니라, 그만큼 화를 자제해야 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후자는 사람만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고 사람만이 그 부끄러움을 통해 인간다움을 재설계할 수 있다는 뜻일게다. 부끄러움을 가져야 실수의 확률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기자의 해석이 틀릴 수 있을 것이다. 선대들이 남긴 명언을 일률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최소한 마크 트웨인의 이 두 말은 인간만이 욕을 하거나 이를 자제할 수 있고, 인간만이 분노의 표출 후의 자기절제의 미덕을 보일 수 있다는 뜻으로 기자는 받아들인다. 마크 트웨인의 명언을 왜 꺼내들었을까.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던 한 시장 상인이 “경기가 좀 어떤가”라는 대통령의 질문에 “거지 같아요”라고 답해 친문(親文)지지자들에게 뭇매를 맞았단다. 대통령 앞에서 ‘거지 같다’는 말을 운운한 상인을 향해 강성 친문지지자들이 십자포화성의 비판은 물론 신상털기까지 했다고 한다. 웃어야 할 일인지, 울어야 할 일인지 헷갈린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지난 9일 충남 아산의 한 전통시장을 들렀다.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장사에 고전하고 있을 시장 상인들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다. 문 대통령은 한 반찬가게를 찾았고, 상인에게 인사를 건네며 “(경기가) 좀 어떠세요”라고 질문했다. 그랬더니 그 상인은 “거지 같아요. 너무 장사 안돼요”라고 했다. 그리곤 “어떻게 된 거예요. 점점…. 경기가 너무 안좋아요”라고 덧붙였다. 이 대화가 담긴 동영상은 한 지상파 방송이 회사 유튜브 계정에 공개했다. 사건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친문지지자들은 그 상인의 “거지 같아요”라는 말에 분노하며 십자포화를 날렸다. 대통령 앞에서 그런 단어를 쓴 자체가 너무 불손했다는 것이다. 이른바 ‘불경죄’로 여긴 것이다.

이에 친문지지자들은 이와 연결된 인터넷 주소, 영상 캡처 사진 등을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게시판에 퍼 날랐다고 한다. 친문 지지자들은 그 상인을 자신들의 집중 공격 타깃으로 삼은 것이다. 상인에 대한 인신공격성 댓글도 쏟아냈다. “어리석은 아줌씨가 마음이 고약하여 잃을 게 많아 보인다”, “손님 없는 당신 안타까워 들르신 곳. 이 집은 나도 안간다” 등의 화풀이성 내지 조롱성 글들을 집중적으로 올린 것이다. 특히 “이 집은 평생 안간다”며 영상 캡처를 올린 소셜미디어에는 631명이 마음에 든다며 ‘♡(하트)’를 눌렀단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남대문 시장을 방문, 한 상인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

해당 상인의 신상도 낱낱이 털렸다고 한다. 그 상인이 운영하는 반찬가게 상호명도 공개됐고, 주소와 휴대폰 번호도 가감없이 온라인상에 노출됐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친문지자자라는 집단이 한 개인에 대해 ‘온라인 테러’를 행한 것이다. 조선일보는 이에 그 상인을 취재했는데, 상인은 “며칠 전부터 ‘발신자번호 표시 제한’으로 하루 4~5통의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고, 보이스피싱일지 몰라 전화를 받지 않았는데 밤 11시에도 전화가 오더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런 일이 알려지자 정치권 안팎에선 당장 뜨거운 공방 소재로 변했다.

심재철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1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이 문제를 거론했다. 이날 원내대책회의는 미래통합당이 출범한지 하루만에 이뤄진 회의였다. 미래통합당은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전진당)을 비롯한 보수통합 세력이 합친 것이다. 심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이 방문한 아산시장에서 대통령에게 “거지 같다. 장사가 안된다”는 발언을 한 반찬가게 사장에 대한 친문 지지층의 신상털이를 겨냥해 “대통령의 잘못된 정책으로 먹고 살기 힘든데 지지층이 상인에게 욕을 하는 적반하장이 벌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의 오만과 문빠들의 이성 상실을 바라보는 국민 마음에 정권 심판론이 불타고 있다”고 했다. 친문 지지층의 지나친 행태를 꼬집으면서 문재인정부의 실정과 함께 정권심판론의 불을 더욱 붙인 것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것은 전형적인 NL 코드다. 걔들에게는 시민사회에는 낯설게 느껴지는 개인숭배 모드가 있다. 옛날 임종석도 ‘의장’이 아니라 ‘의장님’이라 불렸다. 행사장엔 가마 타고 입장하고. 사이비종교 교주라고 할까나”라고 꼬집었다. 운동권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일부 친문지지자들이 지나친 숭배 행태를 보인 것이라고 규정한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아산 반찬가게에서와는 180도 다른 상황이 지난주 한 꽃집에서 전개됐다는 것이다.

지난주 문 대통령은 서울 남대문시장의 한 꽃집을 방문했다. 이때 그 꽃집 주인은 “대통령님이 잘해주셔서 마음은 편해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꽃다발을 전했다. 이 꽃집은 문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서 크게 칭찬을 받았다. 소셜미디어에는 ‘사장님 마음이 꽃향기’라는 찬사(?)가 이어졌고, 꽃을 사러 직접 방문하는 친문지지자도 적잖았다고 한다.

이 두 사례를 보면 친문지지자들의 ‘극과극’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문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발언과 행동을 보이면 칭찬하고, 그렇지 않으면 비난하는 흐름이 확연했던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이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하며 김남국 변호사의 서울 강서갑 출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

정치권 관계자는 “문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 세력을 뜻하는 이른바 ‘문팬’들은 문 대통령에 우호적인 이는 ‘아군’, 그렇지 않으면 ‘적군’으로 여기는 경향이 짙다”며 “모든 현안을 문 대통령 중심으로 피아구분을 하다보니 많은 뒷말을 남기고 있는 것”으로 봤다.

민주당으로서도 강성 친문지지층의 이같은 행동들이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보고 있지만, 이를 제어할 뚜렷한 수가 없다는 점에서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대통령 광팬’들의 돌발 행동에 경계의 시선이 강해졌다는 뜻이다. 특히 문재인정부 창출의 일등공신이었던 ‘문팬’이 최소한 올해 총선(4월15일)에서 오히려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여권 내부에서 대두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민주당의 임미리 고려대 연구교수의 ‘민주당만 빼고’ 칼럼에 대한 검찰고발과 취하 소동 와중에서도 친문지지층 사이에서는 임 교수에 대한 신상털기가 진행됐고, 이에 비판여론이 상당했다. 일부 민심이 이런 ‘문팬’ 행동에 대해 외면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문팬들이 제거 대상 리스트에 올린 민주당 금태섭 의원을 둘러싼 서울 강서갑 공천 논란도 그 중 하나다. 금 의원은 ‘조국 사태’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향해 비판을 하며 당에 쓴소리를 했고, 이에 친문지지자들 사이에서 눈총을 받았던 이다. 이런 금 의원의 지역구에서 문팬이 밀고 있는 김남국 변호사가 출마 의사를 밝힌 후 갑자기 선거구도가 ‘조국 vs 반(反)조국’ 흐름으로 진행될 조짐을 보이자, 민주당에서도 당황하는 눈치다. 그렇잖아도 지나친 친문지지자들의 돌출행동으로 중도층 표심이 떨어져나가고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이에 대한 경계심을 갖고 있던 민주당으로선 곤혹스런 상황이 보태진 것이다.

민주당 의원 중 하나는 “여당이 핵심지지층만 쫓다가는 중도층을 잃는 우를 범할까 걱정하는 기류가 당내에 팽배해졌다”고 했다.

옛말에 ‘없는 자리에선 나랏님도 욕한다’고 했다. 이는 ‘나랏님을 욕하라’는 게 아니고 그만큼 세상살이가 각박할땐 어느 누구를 향해서도 싫은 소리를 내뱉을 수 있다는 뜻일게다. 하지만 강성 친문지지자들은 이런 불만의 소리를 대통령을 향해 제기하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않고 있다. 이런 흐름들이 여권 전체에 도움이 되는지, 안되는지 민주당으로선 정밀한 주판알 튕기기에 돌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100년도 훨씬 넘는 이전 시대에 살았던 마크 트웨인. 그가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벌어진 ‘대통령 불경죄’ 논란과 그에 따른 정치학적 파생 관계를 들여다 본다면, 뭐라고 말할까.

〈헤럴드경제 기자, 마케팅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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