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찬바람이 불 무렵의 일이다. 그해 4월 MBC 광우병 보도의 중심에 있던 기자 중 한 명인 A 씨는 저명한 의사들을 앞에 두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0.00001%라도 걸릴 확률이 있으면 그걸 없다고 할 수 있냐” “그러고도 당신들이 의사냐”고 했다.
MBC의 보도에 과장, 왜곡이 있었다는 언론보도와 의학계 반응으로 궁지에 몰린 그는 이렇게 저항했다. 말을 마친 뒤에도 씩씩거리며 그 자리 내내 ‘전투모드’를 유지했다. 동석한 매스컴, 의학 관계자들은 다른 의미로 말문을 열지 못 했다. 자승자박. 이 똑똑한 기자가 설마 자신의 논리로 스스로 과장, 왜곡을 실토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의 논리는 국민의 건강과 관련이 있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에 관한 것이라면 통계상 유의미 하지 않은 수치일지라도 침소봉대 해도 면죄라는 주장이다. 교통사고가 나 사람이 인명사고가 날 수 있으니 모든 자전거를 퇴출하자는 소리와 같다. 어쨌든 A씨는 현장에선 상대방의 반박을 틀어막았으니 그 으름장은 잘 써먹은 ‘만능 화법’이었다고나 해야 할까.
‘만능 화법’ 하니 달변인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이 떠오른다. 최근 불출마 선언을 하면서 주목을 받았던 그는 2016년 시절에는 강용석 변호사와 JTBC ‘썰전’에 고정출연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양자토론을 벌이는 이 방송에서 이 의원은 특이한 패턴의 화법으로 역공을 자주 펼쳤다.
“저도 B는 문제없다고 생각 안 해요. 그러나 이를 개인 C의 문제로만 봐야 하느냐. 저는 꼭 그렇게 볼 문제만은 아니라고 봐요. 애초에 이런 시스템을 만든 게 누굽니까. 바로 D 아닙니까.”
무슨 사안이든 직접적 원인 너머 다른 곳에서 더 큰 책임소재를 찾는 방식이다. 예를 들자면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연예인 E, 성폭력 의혹의 연예인 F 사건에서 실제 원인과 가해자를 지목하는 것을 넘어 사회 병폐를 야기한 사회 제도와 정치 권력에게 무거운 책임을 지우는 것이다.
이 화법도 네티즌 사이에서는 무적 논리니, 무적 화법이라며 회자됐었다. 말 바꾸기와 책임회피가 일상인 정치인의 화법으로는 유용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 의원은 정작 의정활동 중에는 이 화법을 그다지 구사하지 않았다. 아이러니다. 논객이 아닌 정치인으로 정도를 걸으려던 노력으로 평가하고 싶다.
이런 화법들의 공통점은 잠시만 한눈 팔아도 기괴하고 궁색한 ‘남 탓’, ‘핑계’로 화하기 쉽다는 것이다. 강해서 ‘만능’ ‘무적’이란 표현이 붙은 게 아닌 것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2019년 한 해도 우리는 만능 화법을 목도해 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9월 청문회 때부터 구속 기로의 지금까지 제기된 각종 의혹과 혐의에 대해 온갖 스킬의 무적 화법으로 방어해 왔다. “나는 몰랐다”며 가족과 다른 인사에게 잘못과 책임을 떠넘겨 왔다.
가족의 사모펀드 불법투자 의혹, 딸과 아들의 입시비리 의혹에 이어 유재수 전 부시장 감찰무마 의혹,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까지 터졌다. 죄로 인식 못 하는 불감증이 있었는지 몰라도 이걸 다 누명으로 볼 수 있을까. “(감찰 중단의) 정무적 최종 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또 한번 신비로운 화법도 선보였다. 그의 만능 화법은 어떤 결말을 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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