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박일한의 住土피아]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84㎡의 역사

전용면적 84㎡.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집 크기다. 일반적으로 방 셋에 거실이 있고, 화장실은 두 개인 구조다. 70~80년대 공급된 건 화장실이 한 개였고, 요즘 분양하는 건 서비스 면적이 늘면서 방 넷도 나온다.

올해 전국에서 거래된 아파트의 3분의1이 이 크기다. 올 1월부터 11월까지 전국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41만4397건이었는데, 이중 13만7955건이 84㎡였다. 정확히 33.3%다.

사실 대한민국 국민의 30% 정도가 이 정도 크기에 산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전체 주택(1763만채) 중 61%에 해당하는 1083만채가 '아파트'다. 이 가운데 472만채가 전용면적 60~84㎡다. 아파트 외 연립과 단독주택의 60~84㎡까지 합하면 632만채나 된다.

왜 우리나라 국민이 가장 많이 주거하는 집이 85㎡도 아니고 84㎡가 됐을까. 90㎡이나 100㎡일 수는 없었을까.

제도의 영향이 가장 크다. 정부는 85㎡ 미만을 법으로 ‘국민주택’으로 정해 각종 혜택을 준다. 국민주택기금을 지원해 저리로 대출하고, 거주자에게 취득세, 재산세 등 각종 세금을 감면한다. 청약도 대상이나 거래 규제 등에서 훨씬 자유롭다. 주택사업을 하는 건설사 입장에서도, 분양받는 국민 입장에서도 굳이 85㎡를 넘지 않는 게 여러모로 유리하다. 최근 분양하는 아파트의 상당수가 84.99㎡인 이유는 이 때문이다. 가장 규제를 덜 받는 가장 큰 주택이니 여러모로 유리하다.

국민주택 기준은 왜 85㎡가 됐을까? 기원은 1977년으로 올라간다. 당시 건설부(현 국토교통부)는 현 주택법의 전신인 ‘주택건설촉진법’을 개정하면서 정부가 집중 지원할 ‘기준 주택’을 새로 정했다. 1인당 거주에 필요한 적정 주거면적을 5평으로 판단하고, 그 시기 평균 가구원수인 5를 곱하니 25평이 나왔다.

문제는 당시에도 법적으론 미터법을 썼다는 사실이다. 일반 국민이나 언론 등에선 집 크기를 ‘평’으로 썼지만, 법적으로는 'm'로 표기했다. 25평을 ㎡로 환산하면 82.5㎡다. 당시 정부는 소수점 둘째자리까지 기준으로 삼는 건 번거로우니, 5나 10처럼 기억하기 좋은 숫자로 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82.62㎡에서 가까운 85㎡를 선택했다는 게 당시 실무를 맡았던 정부 관계자의 전언이다.

정부는 1978년부터 시행된 ‘청약제도’에서 85㎡를 국민주택 규모로 규정해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당시(1975년) 기준 전국엔 473만채의 주택이 있었고, 10~14평(30~46㎡, 130만채)과 15~19평(47~62㎡, 116만채)이 전체 주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이후 85㎡ 중심으로 아파트 공급이 본격적으로 늘어났고, 아파트가 주된 주거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현재와 같은 거주 형태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국민주택 기준을 작게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1~2인 가구 중심으로 가구가 분화하면서 가구당 평균 가구원수가 2018년 기준 2.4명으로 줄어든 만큼 5명을 기준으로 삼아 지원하던 과거와 달라졌다는 의미에서다.

84㎡ 미만에 사는 국민이라고 모두가 정부가 지원해야할 대상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84㎡ 중엔 강남에 30억원이 넘는 것도 생겼고, 59㎡도 비싼 지역에선 10억원이 넘는다. 단순히 크기로 국민주택 규모를 규정해 각종 혜택을 주는 게 바람직하냐는 주장이 꽤 설득력 있게 들리는 대목이다.

그런데 생각할꺼리는 더 있다. 국제적 비교를 보면 한국 주거 여건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OECD 회원국들의 삶의 질을 비교하는 ‘베터라이프인덱스(Better Life Index)’가 있다. 이중 주거 부문에서 한국은 1인당 방 수가 1.5개(2019년 기준)로 OECD 평균(1.8개)에도 못미친다. 미국(2.4개), 영국(1.9개)은 물론 일본(1.9개)이나 독일(1.8개), 프랑스(1.8개) 등 보다도 못하다.

가구원수가 줄었다고 반드시 작은 공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경제 상황에 따라 더 넓은 개인 공간에 수요는 더 늘어날 수 있다. 아무래도 84㎡의 전성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같다.

박일한 기자/jumpcut@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