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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세계 기상천외한 소리 탐사…음향발자국을 기록하다
요즘 유행하는 스터디카페는 대부분 백색소음기를 설치해놓고 있다. 너무 조용하면 타인에게 피해를 줄까봐 신경이 쓰여 오히려 집중이 떨어지기 때문에 적정한 소음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교통소음, 층간 소음 등 각종 소음에 시달리면서 누구나 소리 없는 쾌적한 환경을 원하지만 완전한 침묵은 오히려 불안과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연구다. 음향학계의 권위자인 트레버 콕스에 따르면, 금속성 울림같은 ‘흠’으로 여겨지는 소리도 매혹적일 수 있다.

그는 저서 ‘지상 최고의 사운드’(세종)에서, “수십년 동안 소리에 대해 집중적으로 탐구했지만 나는 여전히 뭔가를 놓치고 있었다. 원하지 않는 소음을 제거하느라 바빠서 소리 그 자체를 듣는 것을 잊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라디오 프로그램을 취재하러 지하 하수도에 들어갔다가 종유석의 복잡한 모양이 만들어내는 불가사의한 소리에 반한 그는 이후 소리의 매력에 이끌려 전세계의 기상천외한 소리 탐사에 나서게 된다.

인공의 소리 가운데 가장 조화롭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클래식음악의 전당인 보스턴 심포니홀의 비밀은 잔향 시간에 있다. 잔향은 오케스트라의 연주 소리를 증폭시키고, 다음 음을 매끄럽게 연결시켜 화려하고 풍부한 음색을 자아내는데, 이 홀의 잔향시간은 약 1.9초~2초다. 반면 지금은 에이버리 피셔홀로 바뀐, 과거 뉴욕링컨 센터 내 필하모닉홀은 “음향적 재난”으로 불릴 만큼 최악으로 꼽힌다. 당초 설계안이 객석을 늘리라는 여론에 밀려 수정된 데 따른 결과다. 바람직한 잔향 정도는 음악에 따라 다르다. 궁중에서 연주된 하이든이나 모차르트의 실내악은 잔향 시간이 1.5초 정도로 짧고 좁은 공간에서 연주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베를리오즈나 차이코프스키, 베토벤 같은 낭만주의 음악은 2초 정도가 적당하다.

반향 효과가 뛰어난 공간은 인도의 타지마할과 골 굼바즈, 스코틀랜드의 해밀턴 묘 등 묘와 능이다. 널찍한 실내와 단단한 돌 벽을 갖춘 해밀턴 묘의 경우 사람의 말소리가 가장 잘 들리는 중간 주파수대 잔향시간은 9초에 달한다. 이는 첫번째 단어가 사라지는 데 9초가 걸린다는 얘기로, 뒷 단어가 엉켜 이곳에서 대화를 하는 건 불가능하다.

자연의 소리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기에 오늘날 ASMR(자율감각쾌락반응)로 흔히 활용되는데, 가령 귀뚜라미 울음은 아름답다는 이유로 과거, 유행에 민감한 이들은 옷 속에 귀뚜라미를 숨기고 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개울이 천천히 부드럽게 재잘대며 흐르는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안정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책에는 빈 라덴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음향을 활용한 얘기를 비롯, 뒤로 돌리면 사탄의 메시지가 들린다는 레드 제플린의 명곡 ‘천국의 계단’과 존 케이지가 작곡한 침묵 속의 곡 ‘4분33초’, 범죄 예방을 위해 사용된 경음악, 작게 말할수록 더 크게 들리는 속삭이는 회랑, 완전한 침묵을 경험할 수 있는 샐퍼드대의 무향실 등 흥미로운 사례가 풍부하다.

저자는 인공적인 소리 역시 자연의 소리 만큼 중요함을 강조하며, 말없이 산책하며 도시나 교외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는 ‘사운드워크’, 거북한 소리를 줄이고 바람직한 소리를 듣는 방법 등 더 좋은 청자가 되는 길로 우리를 이끈다. 음향발자국을 기록하는 일이 역사를 보존하는 것과 같다는 울림 또한 길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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