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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길용의 화식열전]리먼 붕괴 10년...그 때 미국 닮아가는 한국
제조업 노후, 주택금융만 활황
구조조정ㆍ신산업 혁신은 없어
위기극복 양적완화 활용도 달라
빚을 새로운 빛으로 전환 못시켜

[헤럴드경제=홍길용 기자] “낮은 금리로 집값이 올랐다. 은행들의 대출기준은 느슨했다. 수 백 만 명이 집을 사기 위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빚을 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급상승했다” 최근 미국 컨설팅회사 맥킨지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직전을 이렇게 요약했다.

저금리에 늘어나는 은행 대출, 치솟는 집값, GDP 대비 94%를 넘은 가계부채 비율, 그리고 떨어진 제조업 경쟁력. 금융과 주택만 호황인 2018년 대한민국 경제다.


▶舊 제조업의 한계=이른바 닷컴 버블 후 미국 경제는 성장동력을 잃어갔다. 제조업 경쟁력은 신흥국에 밀렸고, 중국산 저가 제품을 바탕으로 소비만 팽창했다. 한때 미국 경제의 상징이었던 자동차 ‘빅3’는 ‘러스티 벨트(rusty belt)’로 전락했다. 투자은행(IB)을 내세운 금융을 제외하면 비금융에서는 소프트웨어와 항공, 방산 정도가 글로벌 경쟁우위였다. 사람들은 주택에만 집중했고, 빚이 급증했다.

2008년 이후 한국 경제도 성장동력을 잃어갔다. 글로벌 소비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제조업 경쟁력은 중국 등에 맹추격을 당했고, 특히 조선과 철강이 심각했다. 소형차 중심의 자동차 산업도 저유가에서 성장한 스포츠유틸리티(SUV) 시장 확장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며 부진의 늪에 빠졌다. 유일한 경쟁우위는 가전, 휴대폰, 반도체 등 IT 뿐이었다. 저금리에서 돈은 부동산으로만 몰렸다.

▶금융위기를 산업의 기회로=2009년 이후 미국은 돈을 풀어 위기극복에 나선다. 약달러로 수출업체들의 경쟁력을 개선시켰고, 셰일가스(shale gas) 혁명으로 새로운 에너지 질서를 주도했다. 무엇보다 스마트폰과 SNS로 상징되는 모바일 혁명을 이끌었다. 천문학적 자금이 모바일 산업으로 밀려들었고,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등 모바일 5인방, ’FAANG‘이 미국 증시의 최상단에 올랐다.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소비위축에 고유가 시대까지 저물면서 대한민국의 조선, 철강 업체들이 잇따라 경영난에 빠진다. 세계적으로 금융기관의 건전성 규제가 강화되면서 민간 금융기관은 기업부실을 국책금융기관으로 몽땅 넘긴다. 하지만 국책은행들은 이들의 구조조정은 이루지 못한 채 천문학적 연명자금만 공급한다. 경제성장률이 3% 아래로 떨어진다.


▶‘위험한 선택’ 부동산=2014년 정부는 구조조정 대신 저금리와 부동산을 동원한 경기부양 카드를 내놓는다. 금융 및 건축 규제를 풀고 ‘빚이라도 내서 집을 사라’고 권한다. 한국은행도 단군이래 초저금리로 호응한다.

정세은 충남대 교수는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당시와 지금의 한국 상황은 꽤 비슷할 수 있다”면서 “우리만 보면 10년 전보다 구조적인 문제는 더 심각한 듯 하다”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금융기관의 건전성이 강조되면서 위험은 상대적으로 크지만 생산적인 곳으로는 자금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고, 비교적 안전하게 돈을 벌 수 있는 가계대출만 늘어났다”면서 “경기가 좋을 때는 과열시키고, 나쁠 때는 더 침체시키는 경기순행적(procyclical) 금융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더 강화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빛’이 된 ‘빚’...‘짐’이 된 ‘빚’=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빚’의 위기였다. 그런데 빚의 위기를 극복한 것도 역시 ‘빚’ 이이었다.

미국의 양적완화(QE)는 엄청난 달러를 시장에 공급했다. 늘어난 달러는 빚으로 바뀌어 투자은행(IB)들을 거쳐 기업들에 흘러갔다. 국제결제은행(BIS) 통계를 맥킨지가 분석한 결과를 보면 전세계 2000년 64조달러(GDP 대비 198%)이던 전세계 부채는 2017년 상반기 169조원(236%)로 높아졌다. 하지만 나라마다 빚의 활용법은 달랐다.

금융위기 진앙지인 미국과 유럽 선진국은 GDP 대비 가계부채 줄어든 반면 호주, 노르웨이, 캐나다. 한국, 스웨덴 등 금융위기 무풍지대에서는 오히려 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 후자들에서는 공통적으로 집값 급상승이 나타났다. 신흥국도 주로 후자에 속했다.

금융권 대출보다는 회사채를 통한 기업에의 자금공급이 늘었다. 2007년부터 2017년 상반기까지 비금융회사채 발행액 연평균복합(CAGR) 증가율을 보면 미국 7.8%. 서유럽 8.6%, 중국 39.9%, 신흥국 14%. 기타 선진국 7.9%다. 세계평균은 10.5%다. 신흥국 수치가 높은 것은 유독 그림자금융이 발달한 중국 탓이다. 선진국들에서는 사모펀드(PEF)와 헤지펀드 등의 기업에 대한 투자가 활발했다. 미국에서는 비우량등급의 회사채가 인기 투자상품으로 부상할 정도였다.

▶안전해진 은행, 위축된 경제=은행들의 수익성은 낮아졌다. 금융위기 직전 15%까지 치솟았던 선진국 은행의 자기자본수익율(ROE)는 5% 안팎으로 낮아졌다. 주당순자산비율(PER)도 1.5배에서 1배 남짓으로 떨어졌다. 신흥국 은행들은 이 수치가 20%에서 13%대로, 2배에서 1배 이하로 하락했다. 건전성 규제가 강화된 만큼 수익성이 약화된 까닭이다. 예전처럼 대출이나 대출관련 금융상품으로 큰 돈을 벌수 없어서다. 다만 신흥국은 좀 더 적극적인 대출이 이뤄져 내리막의 기울기가 상대적으로 덜 가팔랐던 것으로 풀이된다.

김용기 아주대 교수는 “가계대출을 통해 은행들의 수익성은 높아졌지만 실물경제에 대한 지원 기능이 현격하게 떨어졌다”면서 “기업은 남의 돈을 빌려서 해야만 재빨리 생산량을 늘리고 투자와 고용도 확대할 수 있는데, 자기자본을 통해서만 투자하다보면 안정적이고 축소지향적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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