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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70 시니어모델 연습 현장]내 나이 일흔에 낸 용기…“인생이 무대위 워킹 같더라”
시니어모델 김영희 씨가 한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평범한 주부로 30년…꿈 찾아 도전 “하늘 걷는 기분”
-연습실 6070 수십명,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 후끈
-“100세시대 늦게라도 용기 내 좋아하는 일 찾아보세요”

[헤럴드경제=정세희 기자] 서울 강남구의 코리아시니어모델 연습실. 음악에 맞춰 워킹을 하는 김영희(62) 씨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자신감있는 표정, 경쾌한 발 놀림, 자연스러운 손동작…. 한눈에 봐도 전문 모델 같았다. 올해 나이 예순 둘에 그는 모델의 꿈을 이뤘다. 연습을 마치고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그는 “무대에 서면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지난 6일 오후 만난 김 씨는 목사인 남편을 도우며 평범한 주부로 30여년을 살았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그에게 사람들이 “모델 일을 해보라”고 권유했을 때 한번 해볼까 하다가도 부끄럽고 남우세스럽다고만 생각했다. “사람들이 흉이라도 볼까 옷도 수수하게 입고 끼를 억누르고 살았다”던 그가 애써 외면하던 꿈을 꺼낸 것은 딸 덕분이었다. 딸이 어느 날 “엄마 진짜 그냥 그렇게 묻혀 살기에는 너무 아까워. 모델 에이전시에 사진이라도 내겠다”고 한 것이다. 딸이 건드린 열정은 점점 더 커졌다. 작년에 한 방송에서 시니어 모델이 워킹 하는 것을 보고 “저거다. 나도 해봐야겠다” 용기가 생긴 것이다. 김 씨는 올해 초부터 학원을 다니면서 모델로서의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그에게 믿을 수 없는 에너지를 선사했다. 30여년 집안일만 했던 그는 알고 보니 무대 체질이었다. 그는 “무대에 서면 긴장은 되지만 드레스를 입고 포즈를 취하면 천상을 걷는 느낌”이라고 웃었다.

모델 일의 매력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인생과 워킹의 닮은 점이 무엇인지 아느냐”고 운을 뗐다. “인생도 워킹처럼 점 하나 찍고 목표 향해 걸어 다니다가 끝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동안은 자식과 남편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나의 행복을 위해 워킹하고 싶다.”

서울 강남구 코리아시니어모델 연습실에서 워킹을 하고 있는 6070대 모델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이날 학원에서는 김 씨처럼 시니어모델의 꿈을 키우고 있는 수십 명의 6070대가 워킹 연습을 하고 있었다. 워킹, 자세, 표정 등을 배우고 나면 행사나 광고, 영화 등에 출연할 수 있다. 연습하는 이들의 표정에서 한결같이 행복감이 묻어났다. 뒤늦게 하고 싶은 일을 도전하게 된 이들에게 연습을 하는 1분1초가 귀중했다. 김소영 코리아 시니어학원 원장은 “늦게 시작했지만 열정만큼은 젊은이들 못지 않다. 용기 내어 도전하는 분들에게 오히려 에너지를 받는다”고 말했다. 

시니어모델 김종신(70ㆍ여)시는 30여년을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모델 일에 도전하게 됐다. 그동안 무대에 섰던 사진을 보여주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며느리의 권유로 모델 일을 하게 됐다는 김종신(70ㆍ여) 씨는 “전업주부로만 45년을 살았다가 아이들 다 키우고 할 일이 없었다”면서 “요즘 장수시대 아니냐. 100세를 살기 위해선 재미가 있어야 한다. 이 곳에 오면 지루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 씨는 쉬는 시간 의자에 앉아있을 때도 허리를 꼿꼿하게 유지했다. 모델 연습을 하면서 바른 자세가 몸에 익은 듯했다. 

시니어모델 이상홍(67) 와 강희중(74) 씨.[정세희 기자/say@heraldcorp.com]

건강은 덤이었다. 실제 헬스, 요가 등 운동을 챙겨 하면서 건강은 덤으로 얻은 이들이 많았다. 올해 74세 강희중 씨는 “헬스클럽을 오래 다녀서 몸이 짱짱하다”면서 “더 늙기 전에 건강도 챙기고 꿈도 챙기니 좋지”라면서 사진을 보여줬다. 40대라고 해도 믿을 만큼 건강한 근육이었다.

이상홍(67) 씨는 34년을 회사 대표로 지내다가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됐다. 불현듯 ‘이대로 늙으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새로운 일을 찾던 그는 평상시 패션에 관심이 많아 모델 일을 떠올리게 됐다고 했다. 그는 학원에서도 돋보이는 패션 리더였다. 노랑색 티셔츠에 화려한 무늬의 바지를 멋스럽게 소화했다. 빈티지한 목걸이에 선글라스까지 챙겼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직접 쇼핑을 하며 구매한 것들이다. 멋쟁이로 사는 비법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장난감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동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 게 도움이 된 것 같다. 젊게 생각하고 젊게 행동하는 게 비법”이라고 답했다.

“남은 인생 신나게 무대 위를 누비고 싶다”는 이들에게 나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늦었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고, 용기를 내서 배운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김 씨는 자신이 집 밖에 모르던 ‘평범한 주부’였다는 것을 강조했다.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것은 자신처럼 평범한 사람들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제가 모델 일 하는 것을 보고 누군가가 ‘아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용기를 얻고 영감을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궁극적으로 모델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고 싶다.”

sa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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