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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여성이 제목에 쓰이지 않을 때
[헤럴드경제DB]

“이제야?” 지난 13일 발표된 검찰 중간 간부 인사를 접하고 의아했다. 서울중앙지검 차장검사에 처음으로 여성을 발탁했다는 대목에서다.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의 수사를 진두지휘하는 차장검사는 핵심 요직이자 최고위직 승진의 길목으로 꼽힌다. 검찰 역사 70년 만에, 여검사가 처음 임용된 1982년부터 따져도 36년 만에 ‘중앙의 요직’에 여성이 앉았다. 지금껏 여성 검사장은 단 2명이라도 배출됐지만 중앙지검 차장검사는 없었다.

‘여성의 약진’, ‘여풍(女風)’…. 검찰 인사를 다루는 기사 제목의 키워드는 단연 여성이다. 법무부 공안기획과장, 법무부 검찰과 부부장검사 등 ‘여성 1호’가 다수 배출돼서다. 검사 600여 명이 이동하는 와중에 그게 제일 새롭고, 별나고, 특이한 현상이었던 셈이다. 법무부는 보도자료 한 꼭지를 할애해 ‘우수 여성 검사 발탁 내역’을 소개했다. 사실상 인권과 성범죄, 조직 내 성평등을 담당해야 법무부와 대검찰청에 진입할 수 있었던 여검사에게 공안, 인사, 과학수사 등을 맡기겠다는 건 분명 유의미한 결정이다. 한데 여성 1호란 말은 동전의 앞면이다. 뒷면은 조직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자리에 여검사가 얼마나 긴 시간 배제되어왔는지를 보여준다.

검찰 고위직에 오른 여성이 드문 건 과거 여검사의 수가 극히 적었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법무부 성희롱ㆍ성범죄 대책위원회가 전수조사한 결과 여검사 85%가 근무평정, 업무 배치, 부서 배치에서 불리하다고 답한 까닭은 그뿐만이 아닐 거다. 상사에게서 “넌 남자 검사의 0.5”, “여자니까 성폭력 사건이나 담당해”라는 폭언을 들었다는 일부 여검사들의 고백이 충격을 준다.

선명한 폭력보다 무서운 건 손에 잡히지 않는 차별이다. 검찰은 공안ㆍ특수ㆍ강력 등 주요 인지 부서에서 일해야 승진에 유리하다지만 여검사들은 상대적으로 그런 부서에 적게 배치된다. 4월 기준 여검사 비율이 30%를 넘겼는데 전국 지검 내 인지 부서에서 일하는 여검사는 16.9%, 서울중앙지검에선 겨우 9.7%다. 인사와 승진에 유달리 민감한 조직에서 자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저평가 받는다는 불안감, 두께를 알 수 없는 ‘유리천장’이다.

부장급 이상 남자검사들은 종종 “검찰은 여성이 버티기 힘든 조직”이라고 말한다. 밤과 휴일을 반납해야 하는 업무 과중, 잦은 회식과 군대식 상명하복 문화 등이 근거로 뒤따른다. 검사 출신 한 여성 변호사는 “검찰의 업무 부담이 과도해서 사회의 불평등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똑같이 아이가 있어도 남검사들은 가정에 소홀한 것이 양해되는 반면, 여검사는 일이 아무리 많아도 어느 정도는 가정을 돌봐야 할 것 같은 부담을 느낀다”고 부연했다. 인사권을 가진 쪽에서도 밤낮없이 ‘막 부려먹어도’ 덜 부담스러운 남검사를 부하로 선호한다는 거다. 즉 여성이 이 조직에서 공정하게 중용된다면, 검찰이 가정을 버리지 않아도 성실히 일할 수 있는 환경으로 거듭났거나, 일하는 엄마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사회의 문화ㆍ인프라가 마련됐다는 신호로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여성이 어느 정도면 충분할까? 미국의 첫 여성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답은 한결같았다고 한다. 대법관 9명 가운데 “전부.” 덧붙인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충격받아요. 남자만 9명일 때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잖아요?”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는 미러링(mirroring)이다.

기자의 시각에서 답하자면 ‘여성을 제목에 쓰지 않아도 될 때’다. 검사장 승진 인사의 상당수가 여성이거나 중앙지검 차장검사의 절반에 여성을 발탁해도 특별한 일이 아니어서 다른 제목 거리를 찾아야 할 때 검찰 조직이 충분히 평등해졌다고 비로소 말할 수 있겠다. 약진(躍進), 빠르게 발전하고 진보한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건 그런 순간 아닐까. 가깝게 느껴지진 않는다. 아직 여성 1호 검찰총장도, 고등검사장도, 서울중앙지검장도 나오지 않았다.
 
ye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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