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시계
실시간 뉴스
  • 세상을 보는 삐딱함, 양정웅 연출의 연극 ‘로맨티스트 죽이기’
연출가 양정웅(44)이 처음 최루탄 냄새를 맡았던 건 1988년. 데모를 나가려다 최루탄의 강렬함에 다시 발걸음을 돌렸고 연극에 전념했다. 그런 경험 때문이었을까. 그가 이번에 준비한 연극 ‘로맨티스트 죽이기’는 가지지 않은 자, 패자의 입장에서 세상과 역사를 거꾸로 보고싶은 소망이 담긴 작품이다.

삼국유사 프로젝트의 대미를 장식하는 이 작품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비형랑과 도화녀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했다. 양정웅 연출은 비형에게 죽임을 당하는 길달의 로맨티시즘과 이상주의를 강조했다. 그는 “비틀고 삐딱하게 보는데서부터 세상을 보는 비판의식이 시작된다”며 “선악의 문제로 답을 내고 싶은 건 아니지만 신라시대의 고전을 우리 관점으로 치환하고 싶었다”고 했다.

물질주의가 팽배한 신라, 진평왕과 비형, 임종, 도화 등 기득권층이 부귀영화를 누리고 비형의 친구 길달은 모두가 함께 잘 사는 행복한 세상을 꿈꾸지만 결국 비형에게 죽임을 당한다.

조선시대 조광조, 구한말 김옥균, 노무현 대통령도 로맨티스트이자 이상주의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 양정웅 연출의 생각. 그는 “자신이 가진 이상을 펼치지 못하고 세상을 뜨고 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추앙받는 이들이 로맨티스트가 아닌가 한다”고 했다.

삼국유사에 개인적인 관심이 컸다는 그가 처음 생각했던 것은 의자왕의 두 아들 부여융과 부여풍 이야기였지만, 지난 1월 워크샵을 통해 신화와 판타지로 초점을 맞췄다. 비형랑과 도화녀 설화는 도깨비로 묘사된 길달과 설명없이 건너뛰는 전개가 연출가와 작가의 상상력을 더욱 크게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이런 점들이 매력적이었다.

스스로를 “어렸을 때부터 이소룡, 성룡과 함께 자란 액션 매니아”라고 짧게 칭한 양정웅 연출은 “비형이 여우로 변해 도망가는 길달을 죽였다는 한 마디에서 액션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는 전작들과 비슷하게 이번 작품에서도 아크로바틱한 동작, 무술, 무용 등 몸짓을 많이 강조했다. 그에게 춤과 몸짓은 연극성으로 녹아든 제의와도 같다.

배우들에게 무술을 가르치는 사람은 이국호 무술감독. 그 몸짓을 따라가야 하는 배우들은 보통 12시간씩 연습한다.

남자배우 15명이 무대 위에서 활극을 펼치는 ‘로맨티스트 죽이기’에선 원작의 비형랑의 어머니 도화녀는 사라지고 남자 도화만 남았다. “현실과 이상의 대립, 정치적 문제에서 성적 개입을 배제시키고 싶었던 것”이 이유였다. 도화는 길달과 플라토닉한 사랑을 꿈꾸는 그가 창조한 제 2의 도화다.

결말은 원작과 같다. 현실을 탐닉하는 비형랑의 현실주의는 길달의 이상주의를 무너뜨린다. 헌데 그가 죽는 순간 흘러나오는 노래는 공교롭게도 반전운동의 상징, 가수 밥 딜런의 ‘노킹 온 헤븐스 도어(Knocking On Heaven’s Door)’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를 좋아한다는 양정웅 연출, 진정한 로맨티스트는 연극으로 다수의 행복을 이야기하는 그가 아닐까.

연극 ‘로맨티스트 죽이기’는 오는 24일부터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된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corp.com

맞춤 정보
    당신을 위한 추천 정보
      많이 본 정보
      오늘의 인기정보
        이슈 & 토픽
          비즈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