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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톡톡 튀는 새 감성,도시와 현대인을 표현하다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 톡톡 튀는 새로운 감성으로 빚어낸 조각과 설치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직 덜 여물었지만 오늘 이 시대와 사회, 그 속의 현대인의 내면을 다룬 작품들은 신선한 조형감각을 펼쳐보인다.
오는 2013년 2월 수원대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는 4학년생들의 졸업작품전이 서울 종로구 공평동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 1층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19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회에는 강용구 고웅 김옥찬 김예은 박찬솔 윤나리 안소현 이민지 이소향 이현주 장지영 차민지 등 조소과 졸업반 학생들이 일제히 참여했다.

강용구는 실물 크기의 피아노를 전시장에 들여놓았다. ‘유나이티드’라는 타이틀의 이 피아노 오브제 작품은 얼핏 보면 여느 피아노랑 똑같다. “뭐가 작품이란 거야?”라고 의아해하며 피아노에 가까이 다가가면 색다른 피아노 건반이 눈에 들어온다. 실제 피아노 건반의 3배 이상으로 뻥튀겨진 피아노 건반은 사람의 손가락 모양으로 이뤄졌다. 흰 건반은 백인의 손가락을, 검은 건반은 흑인의 손가락을 상징한다. 그리고 이 피아노를 치게 될 관객은 필시 노란 피부색을 지닌 황인종이다. 

강용구는 관객이 피아노 의자에 앉아 피아노 건반을 두들기도록 했다. 관객의 참여에 의해 완성되는 작품인 셈이다. 관람객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면 그 음에 따라 높고 낮은 소리가 연주되며 음악이 된다. 백인, 흑인, 동양인이 모두 어우러져 즐거운 하모니를 이루는 세상을 강용구는 피아노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 있다.

안소현은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인 현대의 도시를 설치작품으로 표현했다. 가로, 세로 4cm의 정육면체는 유리와 거울로 이뤄져 있다. 이 큐브는 인간이 살고 있는 아파트, 또는 삶의 대부분을 보내는 사무실 공간을 가리킨다. 작은 큐브 속에 존재하는 인간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는 이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컴퓨터에 앉아 열심히 인터넷 작업을 한다.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는 이도 있고, 하루 일을 끝내고 큐브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바삐 발걸음을 옮기는 이도 있다. 

작은 큐브들은 켜켜이 쌓여져 도시를 이룬다. 그 도시에 강렬한 불빛이 비쳐지자 벽에는 커다란 도시의 그림자가 만들어진다. 거울에 비친 불빛은 반사돼 건너편 벽에 또다른 모습을 드리운다. 작은 세포처럼 이뤄진 도시에서, 현대인들은 마치 기계인간처럼 하루 24시간을 거의 똑같은 라이프 스타일을 반복하며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안소현은 보여준다. 

윤나리는 작고 가느다란 나무 이쑤시개 5만여개로 커다란 나무꽃을 만들었다. 작은 이쑤시개를 일일이 본드로 이어붙인 뒤 광택을 살짝 가미한 작품은 그 촘촘한 디테일이 시선을 잡아끈다. 또 어묵 등의 요리를 만들 때 쓰이는 나무꼬치 수만개를 이어서 역시 커다란 꽃과 날카로운 입체작품도 만들었다. 모두 3점으로 이뤄진 연작의 타이틀은 ‘세이프 펜스’이다.

윤나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을 가늘디 가는 선으로 이뤄진 이쑤시개와 꼬치에 대입했다. 그리곤 서로 정이 그리워 인연을 맺어가면서도 한편으론 상처받기 싫어 미리 경계의 울타리를 치는 성향을 예리한 집적을 통해 표현했다. 윤나리는 "강아지도 겁이 많은 강아지들이 오히려 더 사납지 않던가요? 겁많고 소심한 이들이 따뜻한 정을 원하면서도 칸막이 뒤에 숨거나 미리 경계부터 하는 예가 많아, 그 점을 표현해봤습니다"고 했다. 소통을 원하면서도 저지선을 치는 현대 젊은이들의 이중성을 형상화한 작품은 예리함과 양감을 동시에 품고 있다.

이민지는 도시를 다양한 기법으로 형상화했다. 우선 한국의 수도 서울의 이런저런 상징들을 모아 움직이는 조각, 즉 키네틱 아트를 시도했다. 광화문의 세종대왕 조각상과 해치.명동성당, 남산타워, 창경궁을 마치 퍼레이드하듯 일렬로 납작하게 조각해 늘어놓은 뒤 이를 기계장치로 움직이게 했다. 

그 옆에는 지난 여름방학 때 다녀온 뉴욕의 도시풍경을 표현한 벽면설치작품 두점이 자리하고 있다. 타임스퀘어를 중심으로 한 강렬한 원색의 작품은 뉴욕을 프리즘처럼 삼각형태로 압축했고, 흑백톤의 어두운 뉴욕 야경은 납작한 압축형으로 표현됐다. 매일매일 세종대왕 조각이며 남산타워을 마주치고, 맥도날드와 코카콜라를 먹고 마시며 살아가는 도시인의 건조한 일상을 (인간은 부재하나) 압축화된 도시풍경을 통해 역설적으로 다룬 작업이다. 

이현주는 전시장에 초대형 아이폰을 설치했다. 아이폰의 화면에는 한옥의 문창살이 설치돼 있다. 영락없는 한국인의 아이폰이다. 그런데 작게 뚫린 문창살 틈새로 이쪽을 응시하는 두개의 눈동자가 번득인다. ‘엿보다’다라는 타이틀은 그래서 붙여졌구나 하고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그리곤 그 눈동자들 위로 서울의 아침과 낮, 그리고 밤 풍경이 쉴새없이 오버랩된다. 잠자는 순간을 빼곤 휴대폰을 진종일 쥐고 사는 한국인들은 휴대폰을 통해 서로서로 소통하면서도, 서로의 감춰진 심사를 엿보는 건 아닌지 묻고 있는 작품이다. 또 나 아닌 타인의 삶을 은연중 들여다보려 하는 세태를 이현주는 아이폰 설치작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장지영은 나치의 주역 히틀러와 불세출의 섹스심볼 마릴린 몬로를 다룬 작품을 내놓았다. 한때 유럽을 좌지우지하며 권력을 휘들렀던 독재자 히틀러는 어인 일인지 분홍빛 제복을 입고, 두손을 얌전히 모은채 서있다. 너무 상냥하고 다소곳해 권력의 화신이 맞나 할 정도다. 그의 얼굴은 4분의 1만 남아있을 뿐 박제된 모습이다. 

마릴린 몬로는 지하철 통풍구 위에서 햐얀 플레어스커트 자락을 움켜쥔 채 아슬아슬한 포즈를 취하던 모습이 그대로 재현됐다. 하지만 세계가 인정하는 섹시스타의 얼굴과 몸은 간데 없고, 가느다란 철골 뼈대만 남았다. 한시대를 풍미했던 권력자도, 미의 화신도 결국은 세월 속에서 영원할 수 없음을 장지영은 색다른 입체조각을 통해 우리 앞에 드러내고 있다. 

이밖에 고웅 김예은 김옥찬 박찬솔 이소향 차민지 등도 저마다 땀흘려 제작한 작품으로 관람객과 만나고 있다. 이들 새내기 예비작가들의 작품 지도는 문인수 수원대 미대 학장, 심영철 조소과 학과장, 김희경교수, 이종안교수 등이 맡았다.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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