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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혜경이 6년 만에 펴낸 새 소설집 ‘너 없는 그 자리’(문학동네)는 일상의 작은 균열에 눈 밝은 작가의 예민한 촉수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2006년 ‘세계의 문학’에 실린 ‘한갓되이 풀잎만’을 비롯, 2010년까지 9편의 단편을 엮은 이번 작품집은 소통의 부재가 어디서 기인하는지 조용히 응시한다.

‘당신, 잘 지내요?’로 시작하는 표제작 ‘너 없는 그 자리’는 사랑하는 이에게 쓴 도달하지 않은 편지글이다. 어느 휴일 텅빈 회사 화장실에서 울고 나온 여자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남자, 차에 손가락이 끼어 다친 여자를 병원까지 데려다 준 남자에 대해 여자의 감정은 끝없이 상승한다. 단순한 호의일 수 있는 일을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넘겨짚고 연인 사이로 자가발전시켜 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길거리에서 아프리카에 있다던 남자를 발견하고 그제야 진실에 눈뜬다. 거울 속에 비치던 상이 사라진 것이다.

‘한갓되이 풀잎만’의 주인공 역시 M의 단순한 인사치레 정도를 자신에 대한 호의로 여긴다. 상대방이 좋아 한다는 영화를 몇 번이고 보면서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M의 일상적 눈길에도 깊은 애정을 느낀다. 그러다 누군가의 입을 통해 M이 약혼을 앞두고 있으며, 스토킹을 당해 괴로워하고 있다는 얘길 듣는다.

‘북촌’ 역시 애초 자신을 남자로 느끼지 않는 여자애에 대한 나의 환상 이야기다.

이런 소통의 부재, 어긋남은 상대방에서 연유한 게 아니라는 데 작가의 문제의식이 엿보인다. 흔히 나와 너의 소통부재의 원인은 쌍방향적이지만, 소설은 나의 착각에서 비롯된다. 나의 상상과 공상 속에서 키운 가상의 상대를 대상으로 한 사랑, 내가 나를 속였다는 게 맞다.

작가는 우리가 실체라고 믿고 있는 게 진짜인지 아지랑이인지 아프게 각인시킨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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