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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책>게이머들의 무의식과 꿈을 담은 ‘지옥설계도’
[헤럴드경제=이윤미 기자]“8년 동안 ‘게임 폐인’으로 살았는데 게임 속에서 접하고 느꼈던 게이머들의 말 못할 무의식과 꿈, 희망을 전달해보려 했다.”

소설가 이인화(47ㆍ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가 소설 ‘지옥설계도’로 8년 만에 돌아왔다.

미국 크루인터랙티브에서 조만간 출시될 웹 전략 게임 ‘인페르노 나인’의 원작 소설이다.

디지털 시대의 스토리텔링 구현에 관심을 갖고 연구해온 이 교수는 지난 13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 작품을 쓰면서 드물게 작가로서 희열을 느꼈다”고 말했다.

장르는 스릴러ㆍ추리ㆍ판타지ㆍSF가 복합된 형식.

이야기는 대구의 한 호텔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사건에서 시작된다. 한때 정예요원이었으나 퇴출 직전에 내몰린 담당수사관 김호는 현장에서 정교한 조작의 흔적을 간파한다. 김호는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보통 사람보다 10배 이상의 지능을 가진 강화인간과 범국가적 조직 공생당이 배후에 있음을 알게 된다. 공생당 의장인 이유진의 피살을 시작으로 강화인간들에 대한 연쇄 공격에서 위험을 감지한 안준경은 살인범에 대한 단서를 찾기 위해 이유진이 만들어낸 최면 세계 ‘인페르노 나인(지옥 9층)’으로 내려간다. 쓰러진 강화인간들을 각성시키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선 ‘지옥의 설계도’를 찾아야 한다.

이 교수는 추리기법을 통해 현실 세계의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동시에, 최면으로 구현된 가상의 인페르노 나인에서 살인사건의 단서를 찾으며 두 세계를 절묘하게 교차시킨다. 현대의 추리극과 중세의 전쟁 드라마를 오가며 김호에게 주어진 15시간과 안준경이 살아간 150년의 시간을 대비시키는 등 실험적 서술 방식을 선보인다.

이 교수는 이 소설이 전혀 새로운 방식의 소설이라고 자신한다. 거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소설가 이인화 기자간담회.                                                                                                 이상섭 기자/babtong@heraldcorp.com

이화여대 디지털미디어학부에서 개발한 디지털 스토리텔링 저작 지원 도구인 ‘스토리헬퍼(Story helper)’가 제공하는 기존의 수만 가지 콘텐츠와의 일치도가 55% 이하이기 때문이다. 독자들의 머릿속에 기억된 수많은 이야기 플롯을 벗어난다는 얘기다.

가령 최근 영화 ‘데이브’를 표절했다는 의혹이 인 영화 ‘광해’의 경우, 둘의 일치도는 75%로 서사 패턴이 비슷하다. 그렇지만 이건 얌전한 수준이다. 영화 ‘아바타’는 ‘늑대와 춤을’과 87% 일치한다. 영화 ‘최종병기 활’과 ‘아포칼립스토’의 일치도는 79%다.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서사 패턴은 제한적이지만 이야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창작의 힘을 결정하는 새로움은 플롯이기보다 햄릿, 맥베스 같은 불멸의 개성적인 캐릭터이거나 독창적인 디테일, 인생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에 근거해 ‘지옥설계도’의 새로움을 찾자면, 플롯에 있다.

‘지옥설계도’는 소설로 끝나지 않는다. ‘인페르노 나인’ 게임 속에서 지옥 세계와 전쟁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다. ‘게임 폐인’을 자처하는 그는 한때 42시간 동안 게임을 한 적이 있다. 8년 전 ‘바츠 해방전쟁’에 참전했을 때다. 지금도 하루 최소 3시간 게임을 한다. 이 소설에는 그때의 경험이 녹아 있다. 그는 진정한 진보와 선함은 집단 지능이 숨 쉬는 가상 세계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게이머들의 내면, 꿈꿨던 욕망이 현실화됐을 때 어떻게 될까’에서 소설은 시작되고, 길은 열려 있다. 소설은 그가 꿈꾸는 행성 규모의 멀티버스 세계로의 초대다.

*스토리헬퍼란?

스토리헬퍼가 작동하는 방식은 이렇다. 로그인하면 모티브 모드, 클래식 모드 등이 뜨면서 어떤 스토리를 하고 싶은지 묻는다. 원하는 모드를 고른 뒤 주인공 이름, 시대적 상황을 바꾸고 쓰거나 디테일을 수정해 비슷하게 쓸 수 있다. 이 정도로 만족하지 않고 상위 모드인 조합 모드를 통해 갈등 곡선을 높이거나 낮추고, 모티프를 변경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추가할 수 있다.

작가가 이야기 구조를 짜나가면서 어떤 사건을 집어넣으면 “이런 사건은 안 됩니다. 다른 방향을 찾아보십시오”라는 식으로 조언해준다.

이인화 교수는 “영화와 애니메이션 창작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소설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사건을 구상하면서 이 스토리헬퍼의 도움을 받았다. 55% 이상 일치도를 보이는 게 한 개라도 있으면 버리고, 이하로 나올 때만 택했다. 사건의 방향이 맞는지 시뮬레이션을 해보며 쓰고 고치는 과정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meelee@heraldcorp.comㆍ사진=이상섭 기자/bab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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