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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무하듯 흘려간 붓놀림 어느새 산이 되다
정년퇴임 앞둔 한진만 화백
40년 화업 담은 30여점 전시


“지구상에 산(山)을 그리는 작가는 너무나 많죠. 그런데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건 제게 별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산의 기운을, 내재된 혼과 에너지를 그리려 합니다. 검필(劍筆)법으로 산을 그리는 것도 그 때문이죠.”

내년 2월 홍익대를 정년퇴임하는 한국화가 한진만(64) 교수가 40년 화업을 정리하는 전시를 서울 인사동 선화랑(대표 원혜경)에서 15일부터 연다. 그의 이번 전시에는 검필법으로 그린 대작 산 그림 30여점이 내걸린다.

그의 산수화는 마치 검도를 하듯 붓을 절도있게 운용하는 검필법을 통해 제작된다. 검필법은 중국 당대의 천재화가 오도자가 창안한 필법. 한진만은 산의 묵직한 형상과 차분한 여백이 동시에 표현되는 검필법에 매료돼 이 기법을 즐겨 구사해왔다. 대학시절부터 검도를 익힌 것도 그 때문이다. 홍익대 설립 이래 검도부에 동양화 전공생이 발을 들여놓은 건 한진만이 처음이었다. 마치 정신을 곧게 세우고 검을 휘두르듯이 붓을 운용하고 싶어서였다. 때문에 그의 그림에선 검필(劍筆)의 힘이 느껴진다. 

한진만 화백은 산의 묵직한 형상과 차분한 여백이 동시에 표현되는 검필법을 구사해왔다.

홍익대에서 지금까지 1000여명의 후학을 길러내며 현대한국화의 맥을 잇는 데 구심점 역할을 해온 한 교수는 마이산, 청량산, 금강산 등 국내 명산들은 물론이고, 고산병으로 생사를 넘으면서 히말라야의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밟았다. 직접 사생을 통해 산의 영험한 기운과 생명력을 화폭에 담기 위해서였다. 그리곤 이번에 ‘천산(天山)’이라는 부제 아래 산의 에너지가 융숭깊게 담긴 신작을 발표한다.

그의 작품은 ‘선(禪)을 위한 선(線)’을 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진만의 붓은 화면의 넓은 공간을 채우면서, 동시에 비워간다. 붓 끝에 검은 먹을 듬뿍 입혀 흰 종이 위를 검무를 추듯 반복하여 지나면 형상이 생긴다. 여백도 형성된다. 바로 채움과 비움이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다. 이는 선(禪)불교에서 말하는 비움(공허)이자 곧 완성(완결)이다.

13년 전 강원도 춘천 북산면의 산 속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방학이면 두문불출하고 그림을 그려온 그는 “내년부터는 자유인이니까 더 많은 곳을 가보려 한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사막 무스탕 같은 곳을 다니면서 또다른 방식으로 자연을 담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히말라야가 세계의 하늘이긴 하지만 산 형태만으론 한국의 암산(巖山)에 비해 매력이 덜하다. 예전에는 한국적인 것만 그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으나 에베레스트를 오르다 보니 ‘지구는 어차피 하나인데 굳이 나눌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대상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그리려 한다”고 덧붙였다.

정년퇴임에 발맞춰 제자 250여명이 은사의 40년 화업을 정리한 화집도 펴냈다. 전시는 30일까지. (02)734-0458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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