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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즘> 불산사고, 규제완화만이 능사 아니다
구미 불산(弗酸) 누출사고가 20여일 지났다. 지금까지 작업자 5명이 사망하는 등 수 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지역주민 수 천명이 진료를 받았다. 지금은 괜찮아 보여도 나중에 심장이나 뼈에 이상이 올 수 있다고 하니 주민들 걱정이 태산이다. 피해액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불산이라는 유독물질을 운반차량에서 저장고로 옮기는 과정에서 작업자들이 밸브를 건드려 발생한 이 사고는 우리 사회의 만연한 안전불감증이 불러온 또 하나의 참사로 기록됐다. 적절한 작업감독이 없었을 뿐 아니라 작업자들은 안전 매뉴얼에 따른 작업을 시행하지 않았다. 또 작업복은 물론 작업용 헬멧이나 마스크 같은 안전장구도 일절 착용하지 않았다. 사고에 대비해 확보해둔 방재장비라고는 삽 두자루, 소화기 두개, 흡착포 반상자, 모래 10포대가 전부였다니.

사고를 낸 휴브글로벌이라는 업체는 2009년 6월에도 운반차량에 호스를 연결하다 불산이 누출돼 직원들이 화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대형 참사는 예고돼 있던 셈이다.

뒷수습도 갈팡질팡하면서 사태를 악화시켰다. 유관기관 협조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사고대응 매뉴얼도 부실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부는 사고 발생 2시간이 지나서야 경계경보를 내리고 사고가 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주민을 귀가시켜 위험에 빠뜨리기도 했다.

또 한가지. 규제완화 정책에도 경종을 울렸다.

유독물질을 취급하는 이런 업체에 대한 관리감독과 안전지도 등 사후관리가 엄격히 집행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환경부, 지자체, 지식경제부의 어느 유관기관으로부터도 점검을 받은 적이 없었다.

불산은 사고 가능성과 독성이 높아 정부가 관리하는 69개 사고대비 물질 중 하나다. 하지만 휴브글로벌은 임직원 4명(실제 7명)에 불과한 소규모 사업장이란 이유로 관리대상에서 제외됐다. 더욱이 3년 전 불산누출 사고가 났을 때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이 정부 들어 일부 지방환경청의 화학물질 전담부서가 폐지되고 신규 화학물질의 유해성 심사 면제대상을 늘렸다. 또 유독물 수입 변경신고 요건을 완화하는 등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줬다.

현행 행정규제기본법에는 규제를 신설 또는 강화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규제개혁위원회의 사전심사를 받도록 돼 있다. 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뿐 아니라 어떤 부처에는 별도로 규제완화위원회가 존재한다. 규제를 규제하기 위한 이중삼중의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는 것이다.

‘전봇대 뽑기’로 대표되는 이 정부의 이런 반(反)규제, 친(親)기업 정책이 혹여 멀쩡한 안전장치 마저 뽑아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규제완화가 기업부담을 경감시키고 관료의 부패를 막는 등의 정(+)의 효과가 있는 반면 이같은 참사를 유발하기도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화학물질 취급업체 관리감독 강화와 위반시 엄격한 처벌, 비상대응 안전매뉴얼 보완 등의 사후대책이 예상된다. 하지만 이보다 더 근본적으로 규제를 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 결론적으로 환경이나 건강, 산업안전 같은 것들을 위한 규제는 오히려 강화하는 게 타당하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기업의 발목이 아니라 목이라도 단단히 움켜쥐어야 한다. 기업 경쟁력이 국민의 안전과 대체될 성질의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시장원리만이 지배적 통치관념이 돼선 결코 안된다.

<조문술 산업부 차장/freihei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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