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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광장 - 함영훈> 유머 넘치는 정치가 그립다
정조대왕·다산의 정치 혁신
안정적 치세엔 웃음도 한몫
대선주자마다 ‘행복국가’ 공약
정색·진담만큼 유머도 필요



내 어머니는 엄했다. 언행에 실수를 하거나 이웃 어른들에게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을 때 눈 흘기는 건 기본이고, 형제 남매가 다투면 묻거나 따지지 않고 쌍벌 회초리를 들었다. 부엌에서 자식 이름을 두 번 이상 불러서 대답하지 않으면 벌건 불씨 붙은 부지깽이를 들고 쏜살같이 사랑방으로 달려와 호통쳤다. 7남매 키우기 비결인 듯, 큰 애는 우물 물 긷기, 둘째는 주방 보조, 작은 아이는 방청소를 시키는 등 가사를 딸 아들 구분 없이 엄정 배분했다.

자식은 부모에 대해 나쁜 기억만 오래 남기는 게 무슨 ‘법칙’도 아닌데, 내 기억 중에는 어머니의 엄한 표정이 많다. 하지만 찬찬히 되짚어보면 좋은 일도 많은데 말이다. 위압적 환경 속에서만 청소년기를 보냈다면 아마 나는 기가 죽었거나 엇나간 청소년기를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에겐 다른 면이 있었고 이는 ‘철혈’정책을 상쇄시키고 자식들을 웃게 했다. 그것은 다정다감함이라기보다는 ‘유머’였다.

주말에 자식은 공부를 핑계로 TV를 보다가 발자국소리에 흠씬 놀라 플러그를 뺀 뒤 공부하는 척 하다보면, 밭일 하시던 어머니는 문을 빼꼼히 열고 “아들래미야~, 니 소 노릇 좀 해줄래”하셨고, 1년에 한 번 들을까 말까한 부드러운 목소리에 감동받은 자식은 어머니가 뒤를 미는 쟁기를 끌고 밭을 갈았다. “팔 소가 없으니 니 팔아 니 대학 보내야겠다”는 어머니의 예능감에 픽 웃으며 일했던 기억이 난다.

겨울엔 식구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을 일이 많았는데, 가을부터 소금물에 담궈둔 침시를 꺼내먹으며 노변정담을 나눌 때, 초등학교 중퇴가 학력의 전부이신 어머니는 위트가 번득이는 시(詩)를 지어 낭송하기도 하셨다.

“눈 밑에 보리가 엎드려 있네./ 춥고 밟혀도 참아래이./ 눈 녹으면 벌떡 일어나 설란다.”

“산아, 깍재이(갈퀴)로 잔등 긁어주니 시원하재?/ 검부재기(검불) 태워 우리 식구 잔등 따뜻해지니/ 피장파장이다.”

나는 유머를 즐긴다. 엄한 집안교육에 경직될 뻔한 나의 정서를 보다 인간답게 빚어준 어머니의 또 다른 DNA는 ‘웃자고 사는 세상, 정색과 진담은 언행 총량의 절반이면 족하다’는 내 신념으로 발전했다.

제가(齊家)의 확장인 치국(治國)에도 유머는 통했던 모양이다. 정조대왕과 다산 정약용의 정치, 서민경제, 과학기술 혁신이 국민과 신진정치세력에 설득력을 얻게 된 데는 특유의 실천 의지뿐만 아니라 유머감각도 한몫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예능감은 사람들을 기분좋게 하니까.

둘의 의태어, 의성어 한자놀이가 흥미롭다. 정조가 “보리 뿌리 맥근맥근(麥根麥根)”이라 하자, 다산은 “오동 열매 동실동실(桐實桐實)”이라고 응수했고, 다시 정조가 “아침 까치 조작조작(朝鵲朝鵲)”하니 다산은 “낮 송아지 오독오독(午犢午犢)”이라 화답했다고 한다.

다른 날엔 정조가 세 글자 합으로 한 글자가 만들어진 사례, 즉 晶(맑을 정), 磊(돌 쌓일 뢰), 轟(수레 모는 소리 굉), 벌레 충(蟲), 빽빽히 들어설 삼(森), 간사할 간(姦) 등 스무글자 가까이 댄 뒤 “더 없지?”라고 자랑하자, 다산이 한 글자 빠졌다고 역공을 펼치면서 임금을 궁지에 몰기도 했다.

나라를 다스릴 적임자라고 주장하는 대선후보들이 저마다 행복한 나라 만들겠다고 이런 저런 얘기들을 늘어놓고 있다. 숱한 공약, 많은 의견이 오가며, 나는 이래서 옳고, 너는 그래서 그르다는 공방도 점입가경이다. 그런데 유머가 없다.

과연 국민은 그들의 숱한 언행 중 몇 %나 머리와 가슴에 담을까.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3인의 후보는 진담, 정색 잠시 접고 제발 국민 좀 웃겨 달라. 국민이 웃을 일을 만드는 것도 중요한 배려이다. 끝으로, 신하 다산이 주군 정조를 궁지에 몰았던 문제의 정답은 三(석 삼)자이다. 대선주자 3인이 진정한 행복의 구성 요건을 아는지, 앞으로 그들의 유머 감각을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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