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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칼럼 - 정덕상> ‘버럭 원맨쇼’ 이런게 대정부 질문인가
공천쇄신을 명분으로 초선 의원 비율이 49.3%나 된다는데, 얼굴만 바뀌었지질문 내용과 방식은 똑같다. 의원들의 진지한 표정이 되레 웃음이 난다‘. 총리 나와라, 장관 나와라’ 하면 앞에서 했던 질문을 되풀이하는 풍경은‘ 봉숭아학당’을 보는 느낌이다.


1995년 10월 18일 국회 본회의장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뒤흔들어놓은 진앙지였다. 신한은행 예금 계좌번호 302-38-001672.

당시 민주당 소속 박계동 의원은 대정부질문에서 노태우 비자금의 단서를 폭로했다. 세상은 발칵 뒤집혔다.

대기업 총수 등 40여명에게 받아 조성한 비자금이 4100억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해 11월 16일 노 전 대통령은 구속수감됐다. 언론은 헬기까지 띄워 검찰 출두와 수감을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파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두환ㆍ노태우 정권의 부정축재는 물론 12ㆍ12 쿠데타, 5ㆍ18 광주학살사건의 진상규명 요구가 거세지면서 5ㆍ18 특별법 제정이 이어졌다. ‘성공한 쿠데타는 기소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렸던 검찰은 입장을 바꿔 두 전직 대통령에게 군형법상 반란ㆍ내란 수괴, 내란목적 살인, 상관살해, 뇌물수수 등 10여 가지 죄목을 적용했다. 그리고 1997년 4월 17일 최종심에서 전 전 대통령은 무기징역에 추징금 2205억원, 노 전 대통령은 징역 15년에 추징금 2628억원이 선고됐다.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이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 암울한 군사정변을 한꺼번에 청산하는 역사가 대정부질문에서 시작된 것이다.

19대 국회 첫 대정부질문이 한창이다. 국회법 122조 2항에 근거해 외교·행정·경제·사회·통일·문화 등 국정 전반을 대상으로 문제점을 제기하고, 해결책과 대안을 제시하며, 국민 궁금증을 해소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견제 역할을 한다는 게 국회 대정부질문의 취지다.

17년 전 역사적인 ‘비자금 폭로’ 같은 파괴력과 무게감 있는 질문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직업상 봐야 하는 기자도 짜증이 난다. 공천쇄신을 명분으로 초선의원 비율이 49.3%나 된다는데, 얼굴만 바뀌었지 질문 내용과 방식은 똑같다. 의원들의 진지한 표정이 되레 웃음이 난다. ‘총리 나와라, 장관 나와라’ 하면서 앞에서 했던 질문을 되풀이하는 풍경은 ‘청기 내리고 백기 올리고’ 또는 ‘봉숭아학당’을 보는 느낌이다. 코미디는 시간 죽이는 재미라도 있다. 기자만 그럴까. 질문이 똑같으니 했던 답변 또 하는 총리ㆍ장관들도 진이 빠진다고 한다. 정치 공세 또는 ‘카더라’ 식 주장, 자신의 업적 홍보, 소리 지르기에 “알아보겠다”는 식의 뻔한 답변을 하느라 며칠씩 국회에 발목이 잡히는 동안 결재서류는 산더미처럼 쌓인다.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것은 본연의 임무이고 권한이지만, 이 정도면 시간낭비다. 오는 15일부터 22개 정부기관 중 16개 부처의 세종시 이전이 개시되는데 걱정이 앞선다. 국무총리실이 조사한 결과, 1년에 국회에 불려가는 횟수가 4만번이라고 한다. 지금 같은 관행이 바뀌지 않으면 행정공백과 엄청난 비효율이 불가피하다. 국회가 세종시로 이전하는 게 바람직할 수도 있다.

정치개혁? 쉬운 것부터 하는 게 좋다. 그래야 신뢰도 간다. 대정부질문도 ‘교섭단체별 집중질의제’ ‘사전 서면질의제’ 같은 장치를 마련해볼 만하다. 같은 당 의원끼리 질문을 조율해서 시간낭비를 막고, 장관들에게 실속 있는 답변을 듣자는 것이다. 적어도 “어디어디에 왜 다리를 안 만드나”라는 쓸데없는 면피성 질문은 미리 걸러낼 수 있다.

의원들조차 풍선 바람 빠지듯, 회의장에서 새나가는데 관중이 흥미를 가질 리 없다. 그럼 룰을 바꾸든지, 폐지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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