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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강화,자연의 이름없는 것들에 보내는 찬가
[헤럴드경제=이영란 선임기자]이 작가의 눈(眼)은 남다르다. 남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들풀이며 시멘트 담벼락 사이를 뚫고나온 연약한 초록 줄기에 주목한다. 그리곤 이들을 화폭으로 불러와 섬세하게 되살려낸다.

오는 5월 30일부터 6월 4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 1층에서 개인전을 갖는 화가 이강화(51.세종대 회화과 교수)의 눈에는 화려한 장미, 양란 같은 꽃은 별반 들어오지 않는다. 대신 엉겅퀴, 도라지, 개망초, 나팔꽃, 강아지풀, 버들잎이 그를 사로잡는다.

“제게는 엉겅퀴, 도라지가 더 강하게 와 닿습니다. 사람들이 별반 눈길을 주지 않는 작고 소박한 것들에 깃든 생명력에 더 고무되기 때문이지요. 원색의 화폭에 조촐한 꽃들을 그려넣는 작업은 늘 설렙니다”. 그래서일까? 선홍빛 배경을 뒤로 흰 목련을 그려넣은 작품의 화제(畵題)는 ‘설렘’이다.

허황되고 거창한 이상(理想) 보다 이 땅의 가장 낮고 하찮은 것들, 자연의 들숨과 날숨이 이강화에겐 더 숭고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발로 그림을 그린다. 자연의 몸짓에서 답을 찾기 위해 자연을 걷고, 누비고, 성찰한다. 그리곤 교감한 것들에 그의 에너지를 담아 형상화한다. 


파리 유학을 마치고 1994년 귀국한 이강화는 창녕-우포 늪지를 대담한 필치로 담아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후 늪 주위 들풀에 주목하게 됐다. 고향인 인천과 강화 영월 평창 하동 김포를 오가며 들풀을 그려왔다. 그런데 독특한 점은 들풀을 도시의 퇴색한 담벼락, 버려진 철판과 문짝, 녹슨 삽에 어우러지도록 한다는 점이다. 자연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자신의 직관에 의해 포착된 떨림을 독특하게 재해석해 ‘이강화식 서늘하고 세밀한 풍경’을 구축하고 있는 것.

기법 또한 독특하다. 수성안료에 아크릴을 덮고 미디움을 써서 중후한 색상이 밑에서 배어나오게 한 뒤, 들풀은 유화물감으로 그린다. 물과 기름은 섞이지 않는 법인데 이 둘을 능숙하게 혼합해 사용한다. 


“오래 하다 보면 기술은 터득하게 된다. 문제는 자연의 숭고한 결이 얼마나 더 진솔하게 담기느냐에 있다”는 그는 누군가가 오랫동안 썼을 법한 대문이며 작은 소반에 들풀을 그려넣음으로써 자연의 결을, 연약한 것들이 지닌 강인한 생명력을 더욱 도드라지게 하고 있다. 낡은 오브제를 작업실로 옮겨와 1~2년쯤 놓고 바라보다가, 영감이 떠오르면 밑작업을 한 뒤 그 위에 들풀을 그려넣는다.

그는 들풀이야말로 ’드로잉의 스승’이라고 말한다. 들풀에는 선적인 요소들이 듬뿍 들어 있어 ‘드로잉적 선’을 말없이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그 어떤 스승보다 너그럽고 완벽한 스승이니 그 역시 마음을 다잡고, ‘갈 때까지 가보자;는 심정으로 그리게 된다는 것이다. 


신작들은 여백의 개념을 도입해 팽팽한 긴장감과 에너지가 감지된다. 서양화이지만 유려한 선과 여백의 미까지 더해져 동양화의 맛을 전해준다.

어느새 32회째인 이번 개인전에 작가는 가로 6m에 이르는 작품 등 대작을 중심으로 25점을 내건다. 부드럽고 섬세한 선과 면, 어둠과 밝음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그의 그림은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없다. 미술비평가 주성열 씨는 "꽃과 야생초의 심상으로 상황을 구성하는 작가의 실존적 투사는 온갖 시련과 상처를 희망으로 피워내는 지향성을 지닌다"고 평했다.

인천에서 태어난 이강화는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거쳐 프랑스 파리 국립8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프랑스 독일 중국 에콰도르 등에서 꾸준히 개인전을 열어왔다. 02)736-1020

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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