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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란 선임기자의 art & 아트> 유행가처럼 삶을 위로하거나…괴물이 된 神 고발하거나
현대사회를 보는 두 개의 시선
배영환 ‘유행가…’展

깨진 병으로 만든 샹들리에
소외된 이들 욕망·상처 대변


김기라 ‘공동善…’展

신화·성상 이미지 콜라주
공동선의 억압성 드러내


여기 현대사회와 현대인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이 있다. 배영환(43)과 김기라(38). 남다른 조형언어를 지닌 작가들이다.

미래 한국현대미술을 이끌 주역으로 손꼽히며 인간에 대한 속 깊은 애정을 차분하면서도 시니컬하게 드러내 온 두 작가가 동시에 작품전을 열고 있다.

▶배영환 ‘유행가-엘리제를 위하여’전= 깨진 소주병과 버려진 가구, 알약, 본드. 하위문화를 대변하는 이 같은 재료로 우리 사회의 소외된 이들의 삶을 조명해 온 배영환이 서울 태평로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초대전을 연다.

지난 1일 개막돼 오는 5월 20일까지 계속될 전시에 배영환은 작고 초라한 존재이나 내면에는 저마다 존귀함을 지닌 이들을 어루만지는 회화, 사진, 조각, 설치 영상을 내놓았다. 제목의‘유행가-엘리제…’는 팍팍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친숙한 유행가처럼 위무하겠다는 뜻에서 붙여졌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영화 ‘하녀’에서 주인공 전도연이 매달려 죽는 거대한 샹들리에가 눈에 들어온다. 우아한 샹들리에는 그런데 깨진 소주병, 맥주병을 철사로 꼬아 만든 것이다. ‘불면증-디오니소스의 노래’라는 이 작품은 상류사회 진입을 꿈꾸는 주인공의 가눌 길 없는 욕망과 상처를 더할 나위 없이 잘 대변한다.

배영환은 이처럼 유리병 조각들로 샹들리에며 유행가 악보를 만든다. 누군가 쓰다 버린 자개장과 나무판자로 진짜 같은 일련의 기타(‘ 불광동 첫사랑’등)도 만든다. 압도적인 수공적 표현으로 밑바닥 삶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 그런데 그는 저들의 비루한 삶 또한 귀한 것임을 보여준다. 전시에는 초기작에서부터 사유의 깊이를 더한 사회참여적 미술, 그리고 최근의 대규모 설치작업까지 총 30여점이 나왔다.

물질성을 강조하던 작가의 작업은 요즘 들어 정신세계를 추구한 작업으로 선회했다. 춤과 소리의 세계, 현실 저 너머 세계를 다룬 작업들은 삶의 추상영역을 탐구하고 있다. 

작가 배영환, 작가 김기라
“추상명사는 있는데 왜 추상동사는 없느냐”며 ‘추상동사’라는 신조어를 만든 작가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끝없이 추는 ‘댄스 포 고스트 댄스’, 전국 서른 곳 사찰의 종소리를 채집한 설치작품 ‘걱정-서울 오후 5:30’등을 통해 ‘공감과 위로’라는 유행가의 정서를 보다 심화시키며, 예술적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다. 


▶김기라 ‘공동 선(善), 모든 산에 오르라’전=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끝없이 생성돼 온 신화 속 인물과 종교적 성상을 해체, 조합해 엉뚱한 괴물을 창출해 온 김기라 작가가 개인전을 꾸몄다. 그런데 ’모든 산에 오르라’고 외친다. 대체 무슨 뜻일까?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내 두산갤러리에서 지난 1일부터 오는 29일까지 초대전을 갖는 김기라는 ‘공동선은 있는가’라고 질문한다.

인류가 무수한 문명을 이어오며 공동선을 내세웠지만 그것이 결국은 더욱 인간을 옥죄지 않았느냐고 반문하는 것. 이에 작가는 최근 8년간 세계 10여개국을 다니며 수집한 500여권의 문화, 역사, 인류사 서적 속의 신화와 성상 이미지를 일일이 찢어붙이며 ’스펙터(괴물)’ 연작을 제작했다. 수많은 영웅과 신, 성인을 콜라주했더니 듣도 보도 못한 괴물이 탄생한 것이다.

’스펙터’에선 동ㆍ서양이 만나고, 왕과 신이 한몸에서 만난다. 이를테면 양의 등을 밟고 사냥용 창을 든 아프리카 원시부족민이 한쪽 발과 다리를 이뤘고, 또 다른 다리와 몸통은 신(神)으로 변한 그리스 신화 속 남성의 것이다. 머리엔 아홉마리 뱀의 머리를 가진 히드라 두상이 얹혀졌다. 한 점의 작품에 인간 문명의 역사와 인간의 내면이 켜켜이 중첩된 셈이다. 


깨진 소주병으로 만든 배영환의 샹들리에 작품 ‘불면증-디오니소스의 노래’(사진 위쪽). 영화 ‘하녀’에서 전도연이 매달려 죽는 장면에도 등장했다. 세계 각국에서 수집한 신화, 역사서의 사진을 콜라주해 만든 김기라의 ‘망령-괴물(스펙터-몬스터)’. 신의 형상을 짜깁기하니 뜻밖에도 괴물이 됐다.

김기라의 ‘스펙터’ 속 괴물은 난폭하기보다 우스꽝스럽고 익살스럽다. 서사적이면서도 동시에 지극히 희극적이다. 바로 이 같은 다면성이 김기라 작업의 매력이요, 저력이다.

오일스틱으로 빠르게 그린 김기라의 괴물 드로잉과 각국의 기기묘묘한 오브제를 모은 방대한 설치작업은 ’모든 산에 오르고 있는’ 작가의 끈질긴 여정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당신도 스스로를 옥죄는 공동 선에 끌려다니지 말고, 모든 산을 뚜벅뚜벅 힘차게 올라보지 않겠느냐고 작가는 속삭이고 있다.

이영란 선임기자/yr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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